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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6. (火曜日) “내가 죽던 날On the day I die”

2024.1.16. (火曜日) “내가 죽던 날On the day I die”

     

내가 야산에 나뭇가지로 그려놓은 직사각형은 나의 무덤이다.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면 전나무와 소나무들이 내 시선의 중심으로 모아진다.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를 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무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이곳에서 눈을 감으면, 어제의 내가, 죽고 오늘의 나로 다시 태어나 하루를 살기 시작한다. 인간은 매일 죽고 산다. 잠은 일종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동물이라면 예외없이 잠을 잔다. 숨이란 생명이 붙어 있을 때, 잠시 수면에 들지만, 그 숨이 떠나면, 영원한 잠인 죽음으로 돌아가, 자신이 원래 왔던 흙이 된다. 진정한 귀향이며 귀근이다. 인간은 산다는 것은 동시에 죽는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오늘, 생명존중운동을 함께 하는 대표님의 모친 문상을 갔다. 그 분에 이 사실을 주위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나도 다른 목적으로 그분을 만나기로 하는 장소로 갔는데, 그 곳이 바로 장례식장이었다. 삶과 죽음의 초월한 분이 할 수 있는 태도다. 인간은 영원한 시간 안에서 정해진 순간을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 human이란 영어단어는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humus에서 파생하였다. 인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담’Adam도 ‘붉은 흙’을 의미하는 ‘아다마’adamah에서 파생하였다. 인간은 원래 흙이지만, 그 안에 ‘숨’이란 영혼이 깃들면, 생명을 지닌 존재가 된다. 이 숨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죽은 다는 것은, 숨을 쉬지 않아, 몸과 정신을 유지하는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결국 흙으로 변하고 만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님의 몸을 통해, 숨을 지닌 존재도 태어난다. 나는 이번 생엔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이지만, 다음 생에, 다른 동물로 혹은 다른 식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이 다음 삶엔 그 인간이 인간이란 동물로 태어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소나무로 태어날지, 혹은 아침 산책마다 보는 고라니로 태어날지 모른다.

     

장례식이 좋은 점은, 막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죽음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 문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상기한다는 말은 이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간절하게 살겠다는 의지도 함께 포함되어있다. 수피 시인 루미(1207-1273)의 시는 <내가 죽던 날>이 생각났다. 죽음을 오히려 자신이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 합일이라고 노래한다. 그 분 어머님의 명복을 빌며, 루미시를 번역해 보았다.

     

On the day I die

Rumi

제가 죽은 날

루미

     

On the day I die, when I'm being carried

toward the grave, don't weep. Don't say,

제가 죽은 날, 제가

무덤으로 옮겨질 때, 울지 마세요. 다음과 같이 말하지 마세요.

     

He's gone! He's gone. Death has nothing

to do with going away. The sun sets and

“그가 떠났어. 그가 떠났어.” 죽음은

떠나는 것과 상관없습니다. 태양이 지고

     

the moon sets, but they're not gone.

Death is a coming together. The tomb

     

달이 진다고 해서, 그들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다시 함께 오는 것입니다. 무덤은

     

looks like a prison, but it's really

release into union. The human seed goes

감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합일을 위한 해방입니다. 인간이란 씨앗은

     

down in the ground like a bucket into

the well where Joseph is. It grows and

땅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요셉을 건져올리기 위해, 우물로

내려가는 두레박과 같습니다. 그것이 자라나

     

comes up full of some unimagined beauty.

Your mouth closes here and immediately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을 발산하여 올라옵니다.

당신의 입은 여기서 다물고, 즉시

     

opens with a shout of joy there.

기쁨의 외침을 위해 거기에서 입을 엽니다.

     

사진

<나를 바라보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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