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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8. (金曜日) “암송暗誦, 최선의 교육”

2023.9.8. (金曜日) “암송暗誦, 최선의 교육”


우리 사회의 희망은 교육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교육에는 수동적인 교육과 능동적인 교육이 있다. 수동적인 교육은 부모나 학교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를 배우는 터전이다. 이 교육의 선생은 부모, 형제, 학교의 교사들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인생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습득하고, 학교 교사들을 통해, 그 시각을 수정하거나 견고하게 다진다. 어린아이들은 주어진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세상을 관조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선을 획득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살고 있은 사람은, 적절한 시점에, 수동적인 교육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조그만 무대 위에서 외부가 요구하는대로 춤추고 있는 꼭두각시란 사실을 깨닫는다.

일생을 학교와 교육에 투신해온 내가, 우여곡절 끝에, 사람의 변화를 획기적으로 이끌 수 있는 교육의 대상과, 그 대상을 위한 정교한 교육방식을 경험을 통해 마련하였다. 대상은 초등학고 4학년에서 중학교2학년까지다. 한국에서는 대입이 아이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대학입시를 없애지 않는 한, 정상적인 교육을 하기가 불가능한다.

아이들에게 13세 혹은 14세는 그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지노선이다. 아이들의 뇌는 소위 편재화偏在化를 통해 죄반구는 신체 오른편의 감각과 운동, 특히 이성적인 일을 담당하고 우반구는 신체 왼편의 감각과 운동, 그리고 비언어적인 감정, 직관과 같은 일을 맡는다. 요즘 탐독하고 있는 이언 맥길크리스의 마그넘 오푸스 The Matter with Things는 이 편재화가 인간 개인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신체훈련을 지난 10년동안 진행한 태권도 아이들을 운이 좋게 만났다. 사범님이 이 아이들의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교육을 시켜왔다. 이 아이들이 신체운동을 통해, 정신적으로 무장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교육실험을 실패했을 것이다.

이들의 뇌가 편재화되기 전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깨우시키 위한 나의 교육 방법은 영시 암송暗誦과 즉흥 글쓰기다. 오늘 유튜브에 지난 10월 태풍 태권도 아이들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Mowing이란 시를 암송하고 ‘노동’이란 주제로 즉흥 글쓰기를 실시하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영상을 올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Mowing (풀베기)를 번역하고 해설해주고, 농부의 노동勞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다. 이 수업방식으로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천재성을 각자 발견하길 바랄 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14행 소넷트sonnet 형식을 빌어 ‘풀베기’라는 시를 썼다. 그가 1913년에 출간한<소년의 의지> 시집에 실린 시다. 그는 오랫동안 뉴햄프셔 주 데리 농장에 손과 발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며,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경험한 농부로 살았다. 그는 1914년 친구 시드니 콕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풀베기>를 자기 삶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라고 자평하였다. 다음은 프로스의 ‘풀베기’ 원문, 번역, 그리고 해설이다.

(원문)

Mowing

Robert Frost

from A Boy’s Will (1913)

There was never a sound beside the wood but one,

And that was my long scythe whispering to the ground.

What was it it whispered? I knew not well myself;

Perhaps it was something about the heat of the sun,

Something, perhaps, about the lack of sound?

And that was why it whispered and did not speak.

It was no dream of the gift of idle hours,

Or easy gold at the hand of fay or elf:

Anything more than the truth would have seemed too weak

To the earnest love that laid the swale in rows,

Not without feeble-pointed spikes of flowers

Pale orchises, and scared a bright green snake.

The fact is the sweetest dream that labor knows.

My long scythe whispered and left the hay to make.

(번역)

풀베기

로버트 프로스트

숲에서 나는 소리는 결코 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의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습니다.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 걸일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태양의 열에 관한 어떤 것이거나.

아마도 소리의 부재에 관한 어떤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 속삭였나 봅니다.

그것은 게으른 시간이 선물한 꿈이 아닙니다.

혹은 요정들이 손쉽게 만든 금도 아닙니다.

진실이상의 어떤 것도 그것을 표현하기에 너무 약합니다.

줄지어 선 늪지에 누워 있는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기엔),

연약한 꽃봉우리, 즉 창백한 난초를 (표현하기엔)

그리고 질겁한 번쩍이는 녹색 뱀을 (표현하기엔)

사실은 노동이 아는 가장 달콤함 꿈입니다.

저의 긴 낫은 속삭였고, 그것은 건초를 남겼습니다.

(해설)

숲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인가? 바람 소리인가 아니면 태양광선의 소리인가? 시인은 그 소리는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긴 낫이 풀을 벨 때, 나는 소리라고 말한다. 낫은 마치 인간처럼, 땅에 대로 속삭인다. 낫은 농부들이 사용하는 농기구다. 농부가 손으로 쥐는 긴 나무막대가 있고 그 끝에는 밖은 무디고 안은 날카로운 날이 부착되어있다. 농부는 낫을 가지고 풀을 효과적으로 자르기 위해, 땅과 평행이 되게 움직인다. 낫을 함부로 휘두르면 큰 사고가 난다. 시인은 낫이 풀을 낳은 땅에 속삭이고whisper 있다고 말한다. '속삭이다‘라는 단어는 낫의 움직임이 위험이라기보다는 부드럽고 정교하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왜 낫은 땅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가? 낫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태양열 때문에 생긴 망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한 여름에 이렇게 조용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 침묵은 큰 낫에서 나오는 소리만큼이나 신비한다. 그가 낫의 속삭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주위가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주위가 시끄럽다면, 그는 속삭임이 아니라, 상대방과 명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분명히 말을 건냈을 것이다. 시인이 사용한 ‘소리의 부재’는 엘리야가 시내산 동굴에서 들은 ‘콜 더마나 다까’, 즉 ‘섬세한 침묵의 소리’와 같다. 소리는 침묵이 낳은 자식일 수 밖에 없다. 그는 농부의 노동이 ‘게으른 시간이 선물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풀베기’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쉬운 일과 같지만, 일년내내 집중해야하는 신체, 정신, 그리고 영혼을 헌신해야하는 일이다. 풀베기는 또한 요정의 갑자기 나타나 선물해 주는 ‘손쉬운 금’도 아니다. 그가 시를 쓰는 시작詩作은 노동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작을 ‘풀베기’와 비유하면서 세상에 관한 망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작은 ‘진실’이란 단어를 통해 표현하기에도 너무 약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진실’이상이다. 이 진실은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말한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나는 진리를 위해 순교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한다. 빌라도는 예수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그에게 ‘진리는 무엇인가?’라고 묻지만, 예수는 침묵한다. 진리는 말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작을 농부가 한 여름에 풀베기라는 노동하여 저 습지에 누워있는 풀들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철학이나 신학에서 말하는 ‘진리’안에 담기는 너무 약하고 부족하다. 자신이 길가에서 발견한 연약한 꽃봉우리를 간직한 창백한 난초, 그리고 농부의 낫소리에 놀라 소스라치게 도망가는 녹색 뱀의 모습과 심정을 누가 글로 담을 수 있는가?

프로스트의 시는 고상한 신에 관한 이야기나 피안 세계에 대한 진리가 아니다. 풀베기와 같은 일상, 세속적인 것에 대한 애씀이다. 그는 일상의 모든 것을 시작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그 일이 바로 신적이란 사실을 알길 바랄 뿐이다.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구절 tat tvam asi 처럼, ‘당신이 그것이며, 당신 지금-여기에서 하는 노동이 신이고 우주다’.

시인은 마지막 두행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건낸다. 시를 쓴다는 것을 농부의 풀베기와 같은 노동만이 아는 가장 달콤한 꿈이다. 이제 농부의 긴 낫이 속삭인다. 노동을 통해 밭 위에 진열된 건초가 그 대가다. 시인에게 진리는 저 누워있는 건초다. 농부가 긴 낫과 하나가 되어, 건초를 남겼듯이, 시인은 노동을 통해 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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