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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30. (土曜日) “산소山所”

2023.9.30. (土曜日) “산소山所”

9월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완연한 가을이나, 어제 저녁 저 하늘 높이 구름에 가려져있는 달을 보았다. 조각가 최인수교수님이 보내준, 드뷔시의 ‘달빛’(https://www.youtube.com/watch?v=Ch2mrPm1JnM)피아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추석을 자신이 지난 일년동한 해온 일들을 가만히 보는 절기다. 만물은 추수의 계절이 되어 성숙하면, 자신만의 다른 특별한 개성을 드러낸다. 저 높은 하늘에서 낙하한 밤송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쳤다고 셀 수 없는 창으로 무장하고, 두꺼운 껍질을 십자로 활복한 후, 다람쥐에게 기꺼이 먹이가 되었다. 저 밤송이는 저 고귀한 임무를 위해, 일 년을 밤나무 가지에서 버틴 것이다.

산소는 우리가 일년동안 밤송이처럼, 해야할 임무를 완수했는지 묵상하는 장소다. 우리는 그제 일산에 있는 부모님 댁을 방문하였다. 독일에 사는 막내동생은 지난 8월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부모님과 3주나 지냈다. 어제 수학자인 둘째 동생이, 오늘 양주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가 성묘省墓한다고 알려주었다. 아버님은 93세이시고 삼촌들은 모두 80대이시다. 코로나로 지난 3년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오늘 달래고 싶으신가보다.

일년에 한번 산소에 가는 행위는 순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라는 인연을 통해 이 지구에, 이 시점에 태어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영원히 살것처럼, 세상의 욕심을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땅으로 내려간다. 그 사라지는 정도가 너무 빨라, 촌각寸刻이며 순간旬刊이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말한 것처럼, ‘헛되고 헛도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외쳤다. 이 문장에서 ‘헛도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벨hebel’인데, 그 본래 의미는 수증기水蒸氣다. 물이 증발해 자신의 성성한 안개를 잠시 보여준다.

산소는, 감쪽같이 사라질 내 삶에 대한 묵상이다. 산소는, 내가 인생을 통해, 자신이 해야 일을 간절하게 행했는지를 점검하는 검역소다. 천국에 가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죽어야 한다. 자신을 죽일 의지가 없고, 실제로 죽이지 않는 사람에겐 천국이나 극락이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임무를 알고 몰입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없어지는 신비다. 선택받은 예술가, 작가, 운동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순간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여, 역설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활홀경에 진입할 때, 그의 천재성이 슬그머니 등장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유일신종교의 창시자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 이 음성을 들었을 때, 아마도 아브라함의 나이는 130세 정도였고, 이삭의 나이는 30세정도로 추정된다. 이삭은 아버지가 꿈꾼 새로운 세상과 이상을 위해 스스로 헌신하기로 작정한다. 신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자신들을 희생할 장소를 ‘모리야’라고 말하고, 그 산은 이들이 자신을 살해하는 긴 여정을 떠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산들 중 하나’ 즉 ‘산소’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야만하는 궁극의 장소가 산소다. 산山은 내가 일상을 유지하는 사회와 구별된 특별한 장소로, 정성을 들여야만 갈 수 있는 ‘모리야’다. ‘모리야’는 800년후에 다윗의 이스라엘 수도로 세운 예루살렘이 되었다. 예루살렘이란 자신이 인간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완수했을 때, 그에게 충만한 평정심(살렘)을 발견하는 도시(예루)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신들을 온전히 환골탈퇴하기 위해 3일동안 거친 광야를 걸었다.

자신이 가야만하는 궁극적인 장소로, 시간을 구별하여 가는 연습이 인생이다. 그것이 자신의 이치이며 방법이다. 나는 반려견들과 산책을 한 후, 목을 마시게 하기 위해, 계곡에 들린다. 저 산꼭대기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득하게 먼 곳에서 으루를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물이 흘러내린다. 물은 한 번도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 내가 아이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해도, 멈춰서지 않는다. 중간이 바위가 있었도 굽이치며 거물을 내고 이리저리 내려간다.

영원히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은, 언제나 어디를 봐도 영원한 처음이며 영원한 마지막이다. 매 순간, 한번도 취한 적이 없는 종말론적인 모습으로 그렇게 단호하게 흘러내린다. 만일 저 물줄기가 가만히 선다면, 그것은 만물도, 자연도, 아무것도 아니다. 사진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만일 인간의 마음에 한 가지에 고정되어, 자신의 입장이 옳다고 우긴다면, 그 사람은 미쳤거나 죽은 사람이다. 자연은 항상 위에서 태어나 아내로 내려간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고 어길 수 없는 복종이다. 저 위에서 태어난 물이 자신의 산소인 바다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인간도 저 높은 곳에서 생명이라는 신비한 물줄기를 창조되어,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부여받고, 이제 자신의 고향인 땅으로 돌아간다. 그 장소는 가장 낮은 곳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인 산소山所에 마련되어있다. 상승이 하강이고 하강이 상승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버님과 삼촌들을 모시고, 조부모 산소에 가는 날이다. 건강하신 부모님과 반가운 일가친척들을 모두 보고 그들의 사랑에 감사를 표시하는 날이다. 외국에 지내는 딸들이 보고 싶다. 죽음을 생각하는 좋은 날이고 동시에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는 날이다.

사진

<자신의 임무를 마친 밤송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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