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11. (金曜日, 1395th) “걷기”
반려견들은 내 건강을 지켜주는 걷기 선생들이다. 내가 그나마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나를 매일 훈련시켜주고, 자연을 관찰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걷기는 다른 것을 관찰하게 만들어주고, 그 관찰로 생각을 어제보다 조금 깊이 파준다. 관찰과 사유는 반려견이 준 신의 선물이다. 인간과 개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늑대-개의 등장은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를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기와 일치한다. 인류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호모 사피엔스는 30만년전에 북아프리카에 처음 출현하였다. 이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남부롬 하강하여, 시내반도를 거쳐, 10만년전쯤, 오늘날 중동을 지나 유럽으로 이주해왔다. 당시 유럽에는 데니소바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 특히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들이 굳건히 자리를 잡아, 이 로운 이주 유인원인 호모 사피엔스는 혼자 힘으로 정착할 수 없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네안데르탈인들은 원숭이나 고릴라와 같은 짐승이 아니었다. 이들은 음악을 즐기고 오음계 피리를 제작한 문화를 구가할 수 있는 유인원들이었다. 이 음악은 감정의 언어다. 정교한 사회구조, 도구와 무기제작, 사냥 전략을 짤 수 있는 정교한 능력에서 나온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와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유인원들이었다.
음악은 MIT 언어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가 주장한 것처럼, 아무런 기능이 없는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이주해왔을 때, 이들은 이 두 유인원들로부터 음악이라는 감각을 배웠을지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들과 성관계를 맺을 정로도 가까웠다. 유럽인들, 아시아, 북미와 남미인들이 걸리는 천식과 피부병은 네안데르탈인들이 남겨준 유전적인 흔적이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은 이런 병이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호모 사피엔스는 맘모스와 같은 큰 동물을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긴 창을 개발하고 서로 협력하여 이 짐승들을 절벽으로 내모는 전략을 짜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요즘도 혁신은 타존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묘수다. 호모 사피엔스와 늑대와의 만남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으나, 아마도,어 떤 호모 사피엔스가 우연히 자신의 거주지에 찾아온 임신한 암늑대가 낳은 늑대 새끼들을 키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어미 늑대와 새끼 늑대들은 다른 늑대처럼 생존을 위해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이 늑대들은 인간들과 몇 세대를 지나면서, 처음에는 늑대-개로, 후에는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개가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늑대들이 그들의 잠자리를 지켜주어 밤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이들과 함께 협업하여 사냥하였다. 4만여년전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에게 친절親切을 보인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었고 늑대-개는 이젠 인간들과 함께 거주하는 개가 되었다. 이들의 동반은 인류 최초의 그림은 3만4천년전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중서부에 위치한 쇼베동굴에 남아있다. 어린아이와 늑대-개가 거의 400m나 함께 걸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당시 부드러운 석회에 찍혀있는 이들의 발자국은, 인간과 개의 위대한 동반이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내가 반려견들과 아침에 걷는 산책도 나의 하루를 구별해주는 의례다. 태풍 하눈이 우리 동네까지 올라와 굵은 빗줄기를 하염없이 내린다. 날이 궃으면, 산책이 더 신난다. 우리는 오랫만에 설악면으로 갔다. 이곳은 내가 7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산책을 감행하던 순례지다. 몸 전체를 덮는 우비雨備를 차려입고 그 순례지로 달려갔다. 집에서 20km나 떨어져 있어 30분을 달려갔다.
많은 비가 내려, 오히려 사람이 하나도 없다. 평상시 같으면 오리들과 손님들로 북적이는 장소다. 우리는 산책길로 이어지는 철 대문을 지나 북한강 지류 옆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다. 땅이 질퍽하다. 비가 얕은 물구덩이에 떨어진다. 매순간 빗방울들을 완벽한 원을 만든다.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그리길 시도했던 낙수보다 완벽한 예술작품들이 매 순간 등장했다 사라진다.
길가 밤나무들은 강한 빗줄기에 못 이겨, 약한 밤송이를 떨어뜨린다. 며칠 전에 낙하한 밤송이들 벌써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고 방금 떨어진 밤송이들은 아직도 자신만만한 초록색과 수많은 가시를 간직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우리를 맞이하는 밤송이들의 행렬이다.
오늘은 우리가 지난 7년동안 순레헸던 그 장소로 갔다. 집으로부터 20km나 떨어진 장소다. 그 산책코스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논이 등장한다. 산책코스는 가로-세로 40m 정도 되는 논 마지지가 5개로 구성되어있다. 청평호수 지류를 따라 늘어선 논마지기를 따라 걷기 시작 한다. 여느 때처럼 왼손으론 샤갈과 벨라의 리드줄을 잡았다. 예쁜이는 리드 줄로 인도하지 않아도 잘 따라 온다. 반려견들은 한발 한발 옮기면서, 각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걷고 있다. 이 태풍을 지나 성큼 다가올 가을을 이들처럼 의연하게 걷고 싶다. 나는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가? 나는 지금 그 길 위에서 거침없이 걷고 있는가?
사진
<설악면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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