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30. (金曜日, 181st/365) “극진極盡”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벌써 일년의 반이 지나버렸다. 오늘은 2023년 백여든한번째 날이다. 일년을 일생으로 여기고, 삼백육십오일가운데, 오늘이 며칠째인지 살펴보면, 하루를 건전하게 생활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희망은 날개를 지닌 것으로, 날지 못하는 나에게 완수할 수 없는 거의 불가능이지만, 희망이 가져다주는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지 않고는 오늘이 더욱 힘겨워진다.
일 년의 반환 시점에 다시 연초에 세운 거창하고 버거운 계획들을 다시 복기해본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진 것이 없다. 지난 60년동안 그랬던 것처럼, 좀처럼 변하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 자신이 아른하게 불쌍하지만, 헛된 꿈이라도 다시 꾸고 싶다. 신이 나에게 2023년 시작을 7월 1일로 잡아준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육개월이 지나고 말았다. 마음 깊이 은닉되어 있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 있는 얼을 발휘시키지도 못하고, 덜떨어진 이기심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다 보니, 6개월이 어젯밤 폭우처럼 하염없이 흘러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떻게 남은 2023년 나머지를 살아야 하는가? 이전처럼 유충幼蟲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성충成蟲이 되던지 혹은 천지개벽하는 나비가 되어 훨훨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갈 것인가? 그 하늘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달해야 할 지극한 경지, 극진한 길이 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저 소나무는, 한없는 하늘로 승천하기도 작정했다. 아니 지난봄 농부가 심어 논 벼가 장대와 같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속마음에 품고 있는 생명의 신비를 가을에 인간들을 위해 알알이 맺을 것이다.
7월을 시작하는 내일, 반가운 아이들과 만나는 날이다. 태풍 태권도 아이들과 후에 조인한 학생들과 함께 영시룰 공부한다.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영시 공부를 생명교육Life Education이라 부른다. 내일 특히 고려대에서 셰익스피어를 일생 가르치셨던 김기호교수님께서 이 역사적인 현장을 보시겠다고 오신다. 제주도에서 사시는데, 올라오실 예정이다. 그동안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던 혜인이도 수업에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2년전 당시 10살이었던 혜인이가 단테와 같은 시인이 되겠다고 감동적인 편지를 보낸 그 아이다.
나는 내일 수업을 이렇게 꾸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에 관한 시 Rose Pogonias와 메리 올리버의 시 Praying과 Percy Wakes Me이다. 시는 번역하면 그 의미를 잃지만, 많은 이들에게 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음과 같이 번역을 시도해본다.
Rose Pogonias 즉 ‘야생난초’는 프로스트 1913년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A Boy’s Will에 실렸다. 이 시는 늪이나 습지에 피어나는 야생장미인 로즈 난초로,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로즈 난초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다. 포로스트는 시골생활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자연의 본질을 자신의 말로 표현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이와 매력을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골 길은 야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곳곳에 늪이 여기저기 파여있는 들판이 등장한다. 이곳에는 인간들이 구석에 구축한 문명사회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야생 장미들의 놀이터다. 장미들은 그들을 찾아온 동물들에게 자신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향기를 선물한다. 나도 시골에 산지 12년이 되고, 숲과 야산을 산책해왔기에 프로스트의 묘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절제되어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장미는 자연스런 아름다움과 순결의 상징이다. 장미가 머금은 창백한 연분홍색은 섬세하고 연약하다. 인간이 애써 가꾼 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안개, 바람, 공기, 비와 같은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장미는 아무도 인간의 문명보다 오래되었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인간들이 흔히 영감을 받는 장소, 즉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혹은 백화점이 아니라, 야생동물들만 가끔 지나치는 늪지대 들판에서 영감을 얻는다. 천혜의 자연 그대로 상태이기에 아름답고 마술적이다. 장미는 이 삭막한 세계 안에서도 순수와 선이 존재한다는 은유다.
Rose Pogonias
로즈 난초
A saturated meadow,
Sun-shaped and jewel-small,
A circle scarcely wider
Than the trees around were tall;
Where winds were quite excluded,
And the air was stifling sweet
With the breath of many flowers,-
A temple of the heat.
꽃으로 가득한 초원,
태양 모양의 작은 보석로 가득 찬 초원,
지금이 주변 나무의 키보다
넓지 않는 둥근 땅이었다:
바람이 완전히 배제되어
수 많은 꽃들이 내뿜든 숨결로
공기가 숨막히게 달콤했다.
그곳은 열기로 가득한 신전神殿이다.
(어휘)
*rose pogonias: 북미주 늪지에서 자라는 야생난초로 초여름엔 핑크색꽃이 핀다.
*satuate ‘흠뻑젖다’ To soak or fill so that no more liquid may be absorbed.
The cloth was saturated with water.
*meadow ‘들판’ A tract of grassland, either in its natural state or used as pasture or for growing hay. (<*meh1 ‘낫으로 풀이나 곡식을 자르다’ cf. mowing)
*stifle ‘숨 막히게 하다’ To keep in or hold back; repress:
His lecture stifled my imagination.
*temple ‘신전’ Something regarded as having within it a divine presence.
(<*tem, Greek temnein ‘자르다’; Latin templum 점을 치기 위해 잘려진 장소; contemplation 묵상 ‘점을 치기 위해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는 행위’)
(해설)
프로스트는 숲속으로 들어가 무아를 경험한다. 그곳에서 큰 나무 키보다 넓지않는 둥그런 장소를 발견한다. 마치 태초의 인간이 거주했다는 구별된 장소인 에덴이다. 이곳에선 바람도 불지 않는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있어, 아마도 바람이 저 하늘 위에서 가만히 강림하여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선 자생한 꽃들이 뿜어낸 향기로 가득 차, 공기마져 달콤하다. 신이 입김에서 나오는 열기로 가득한 거룩한 신전이다.
There we bowed us in the burning,
As the sun’s right worship is,
To pick where none could miss them
A thousand orchises;
For though the grass was scattered,
Yet every second spear
Seemed tipped with wings of color,
That tinged the atmosphere.
거기서 우리는 열기 안에서 우리를 구부렸다.
마치 태양에게 어울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그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 장소에서
천 개의 난초 꽃을 가려냈다.
풀이 흩어져 있었지만,
한 잎 걸러 두 번째 잎은
그 끝을 대기의 색으로 물든
색을 머금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어휘)
*bow ‘절하다; 몸을 구부리다’
(<*bheug- To bend; with derivatives referring to bent, pliable, or curved objects)
*worship ‘예배하다; 존경하다’ To regard with ardent or adoring esteem or devotion.
(*wer ‘구부리다’ worth from Old English weorthan, to befall, from Germanic *werthan, to become (< "to turn into"))
*tinge ‘물들다’ To affect slightly, as with a contrasting quality: (Latin tingere)
"The air was blowy and tinged with rain"
We raised a simple prayer
Before we left the spot,
That in the general mowing
That place might be forgot;
Or if not all is favoured,
Obtain such grace of hours,
That none should mow the grass there
While so confused with flowers.
우리는 그 지점을 떠나기 전에
간단한 기도를 올렸다.
대대적인 풀베기를 할 때
그 장소는 잊혀지기를.
혹은 그 호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꽃들과 이렇게 엉켜있는 동안
그 누구도 그곳에서 풀 베기를 하지 않는
시간의 은총을 획득하기를.
(어휘)
grace ‘은총’ Seemingly effortless beauty or charm of movement, form, or proportion. (<*gwerə-2 ‘선호하다’ Latin grātus, pleasing, beloved, agreeable, favorable, thankful)
사진
<열기로 가득한 신전A temple of the heat> (2023년 6월 29일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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