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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3. (土曜日) “단테 <인페르노> 공부를 마치며”

2023.6.3. (土曜日) “단테 <인페르노> 공부를 마치며”

오늘 드디어 단테 신곡 <인페르노> 수업을 마쳤다. 7년만이다. 단테는 인간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 즉 인페르노에 자리를 잡은 자신의 부정적인 그림자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제거할 때,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페르노를 거쳐야, 변화의 공간인 ‘푸르가토리오’라고 불리는 연옥에 도착할 수 있다. 자기개선의 노력을 꾸준히 경주하면, 그 과정의 끝에 ‘파라디소’ 즉 천국이 존재한다. 파라디소는, 외부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서 발견해야 할 심연이다.

나는 2017년부터 단테 신곡을 번역하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한 시중은행의 회장이 되신 분이, 언론인들을 위한 공부를 부탁했다. 나는 이 제안을 수락하고 건명원에서 매주 이들을 위한 단테 지옥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서울 소재 특정 대학을 졸업한 중견 언론인들이었다. 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던 중 교수생활과 건명원 원장직을 사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이기심, 폭력, 사기와 같은 인간 본성을 직시하고, 개인이 각자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지옥일 것이라고 여겼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페르노> 공부를 지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으로 2019년 말에 ‘더코라’를 도산공원 앞에 마련한 후, 수강생들을 모집하여 다시 단테 공부를 이어갔다. <인페르노> 공부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가르치는 자인 내가 그리고 배우는 수강생들을 좀처럼 자신을 심오하게 들여다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페르노’는 그저 자신과 상관이 없는 700년전 이탈리아 문호가 쓴 고전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부터 새로운 멤버를 선발하였다. 나는 이 수업을 예술가들을 위한 수업으로 전환하였다. 나는 인페르노 하부지옥을 이들과 함께 공부해왔다.

드디어 오늘 <인페르노>의 마지막 곡인 제34곡을 공부를 마쳤다. 나는 가능한한 이탈리아 원문에서 시를 번역하고, 해설을 붙었다. 34곡은, 1300년 4월 9일, 오후 7시; 남반구 길을 지나, 아침 7시경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맨 밑바닥 제 9환의 네번째 지역에 도착한다. 제 9환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자를 의도적으로 배신한 배신자들이 형벌을 받는 코퀴투스라는 얼음 호수다.

제9환 제4지역은 지우데카Giudecca라고 불린다. 지우데카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이름이며 동시에 단테의 고향 피렌체에 있는 유대인 거주지역을 이르는 용어다. 단테도 분명,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대한 반감을 ‘지우데카’라는 이름으로 드러낸다. 인간은 시대의 산물이기에 그런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편견이 단테가 인류에 끼친 공헌을 감소시킬 수는 없다.

여기에는 신을 배신한 악마 루시퍼, 예수를 배신한 유다, 그리고 로마 황제 카이사르를 배신한 부르투스와 카시우스가 얼음에 갇혀 형벌을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범죄를 냉정하게 계획하고 자비를 완전히 싫어하는 죄인들이다. 그 이유는 얼음에 잠겼다. 유다는 반역자들은 얼음에 완전히 갇혀 유리에 갇힌 빨대처럼 나타난다. 다른 자들은 눕거나 일어서거나 머리를 먼저 하거나 뒤로 서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도 배제되어 있고 소통할 수 없다. 그들은 절대적인 침묵을 유지한다.

단테 신곡은 번역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다. 단테가 성서, 그리스-로마 문헌, 고대-중세 철학과 신학, 그리고 피렌체 정치사를 절묘하게 엮어, 자신이 알고 있는 백과사전적인 모든 지식을 자신의 철학 멘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으로 정교한 시로 표현하였다. 언젠가 <인페르노>를 원전에서 읽기 쉬운 언어로 번역하여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 물론 유투브에도 인페르노 수업내용을 모두 올릴 예정이다.

단테 <하부지옥> 수업을 마지막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들은 비올라 연주자 이지영선생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선생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글을 올린다. 우리 모두의 마음 상태를 담은 진솔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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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지옥 마지막 공부를 마치고 나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꼭 마음을 글로 전달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의 한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저는 이 문구로 단테가 지금의 내 모습이구나.. 생각하며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수업이 지옥에서 점점 깊이 들어가 말레볼제 즈음 왔을 때

제 일상 생활에서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저의 생각과 인식이 변하던 순간이 왔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아픔이 있는 고등학생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에게 제가 곡을 연주할 때 너는 무엇이느껴지는지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깜깜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암흑속에서 비춰지는 한 줄기 빛으로 느껴져요“

자연스레 제가 배우고 있던 단테 신곡이 떠올랐습니다.

단테가 아닌 베르길리우스의 시선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베르길리우스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저에겐 큰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지금, 단테인 저에게 베르길리우스가 되어주신 교수님께 깊은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지원서에서도 썼듯 교수님의 위대한 개인 시리즈 강연을 우연히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동굴에서 햇빛을 찾는 게 아니라 동굴에서 나와야 햇빛을 볼 수 있다” 는 단순한 그 말씀이

당시 정말 깊은 동굴에 있던 저에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나에게 울림이 있었을까 생각을 했는데

오늘 마지막날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약간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깨달은 것을 말하려 합니다.”

단테 수업, 정말 귀한시간이니

무엇보다 우선순위로 두고 진짜 나를 변화시키는 시간으로 만들자 생각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걸 깨달았습니다.

어두운 숲속에서 더 깊이 헤매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시를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명상을 하는 것.

말씀해주신 좋은 것들을 정말 다 내 습관으로 만드리라 매주 코라에 오면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희미해졌다가 또 다시 시도하며 머리로 생각만 하고 다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일인지, 인페르노 1곡에 “뻣뻣해진 다리가 항상 다른 다리보다 낮게 있었다”는 구절,

먼저 움직이는 내 오른쪽 “지성”의 다리와 그걸 따라가는 내 왼쪽 다리 “자유의지” 가 얼마나

따로 가는지, 같이 가는 것이 정말 힘들구나.. 하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얼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의 어떠한 힘도, 불도 아닌

매번 같은 시간 내가 정해 놓은 장소에서 고민을 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피하지 않는것이 아닐까, 내 안에서 작게 나오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듣고 행하는 것, 손에 닿는 것들을 작게 꾸준히 행하는 것, 그렇게 지옥에서 나와 연옥을 가는 시간, 단테가 쓰지 않은 그 마지막 20시간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또 한번의 쉽지 않은 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변화가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머리와 마음에서 강한 자극이 오는 것이야말로 내 심연과 가까울 수 있다는 것, 제 안의 소리를 좀 더, 자주 듣게 된 것 같습니다

가끔 대화도 하고 명확하게 이야기 할 땐 귀 기울이며 좀 더 대화해보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시를 읽는 것, 시도는 했으나 가끔에 머물렀고

습관으로 만드는 데는 아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계속 걷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저도 아는 것을 이야기 하려말고 스스로 깨우친 것만, 경험한 것으로만 진실된

음악을 연주하며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계속 수련하겠습니다.

제게 베르길리우스가 되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PS. 제가 만들었던 공연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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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스런 이메일을 받고, 이지영선생님과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드린다:

이지영 선생님께,

음악 잘 들었어요. 연주하는 분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을 인식하고 다른 연주자들과 조화를 맞추려는 모습이 천국입니다. 단테는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심리적이며 영적인 변모의 과정을 아름다운 시로 남겼습니다. 인생은 여정입니다. 여정은 길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한 가운데’있습니다. ‘한 가운데’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적당한 지금이자 여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이란 부족과 과잉의 중간이라고 말합니다. 동양의 중용과 같은 개념입니다. 부족과 과잉을 이탈리아어로 malo, 즉 악이라고 말합니다.

선이란 내가 신중하게 내딛는 한 발걸음입니다. 그것을 이탈리아어로 bono, 즉 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bono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두운 숲속’입니다. 무시무시하고 한치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개선의 시작이고 회개의 출발입니다. 그 어두운 숲속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길을 은닉한 장소입니다.

인생의 구루는 자기-자신이어야 합니다. 실제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여, 자신의 원래 위치인 인페르노의 엘리시움으로 돌아갑니다. 인페르노 수업이 이선생님에게 자신을 응시하도록 돕고, 연주자로서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는데 디딤돌이 되었길 기원합니다. 일요일에 진행하는 ‘아방 가르드는 무엇인가’라는 창세기 1-11장 공부에도 시간이 되면 오셔서 함께 정진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이선생님의 인생여정을 응원하고 페이스메이커가 되겠습니다.

2023년 6월 3일

배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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