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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1.(木曜日) “선입견先入見”

2023.6.1.(木曜日) “선입견先入見”

진리는 저 멀리, 이데아 세계나 성령이나 각성을 통해 한거번에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나를 조금씩 개선 시키는 모든 활동이다. 좋은 책을 읽고, 이전에 지녔던 선입견이라는 무식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리는 일상에서 나의 발견과 발굴을 기다리는 숨겨진 보물이다.

예수는 서른살까지 평범한 팔레스타인 청년이었다. 동박박사가 찾아왔다는 그의 탄생이야기는,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에는 없다. 예수는 부친의 가계를 이어받아 목수로 생계를 연명하던 차에, 요단강에서 새로운 의례를 행하는 예언자에 관한 소식을 듣는다. 그는 사람들을 요단강 강물에 온몸을 잠수하고 바로 나오게 만드는 세례의식을 베풀었다. 물은 성서에서 정결이나 질서의 상징이 아니라, 혼돈과 과거의 상징이다. 세례를 받는 자가, 온전히 물에 잠겨, 거의 숨을 쉬지 못한 정도가 되면, 그는 임사체험을 한다. 물을 통한 임사체험은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세례가 그의 오래된 육체와 정신을 상징적으로 유기하는 의식이라면, 40일 금식은, 실제로, 육체와 정신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살하여 영적으로 새롭게 깨어난 인간으로 만드는 혹독한 통과의례다.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 40일간 고독을 몸에 습득하는 금식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수는 ‘회개하라, 천국이 이미 와있다’라고 선포하였다. ‘회개하라’라는 말은, 인간이 모두 자신이 원래 되어야한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 존재로 살라는 정중한 부탁이며 촉구다.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천국이고,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예수는 이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과거에 살던 인간, 남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살던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예수를 어릴 때부터 알던 어릴 적 친구들이나 그의 고향 지인들은, 예수가 선포하는 말에 좀처럼 방응하지 않는다. 예수를, 현재의 예수로, 신적인 예수로 볼 수 없다. 이들은 그를 어릴 때부터 알던 떠돌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다. 더욱이 예수가 당시 유명한 현자처럼 예루살렘이, 아테네, 로마로 유학할 형편이 되는 유력한 집안의 자식도 아니었다.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언자를 어려서부터 알아, 그가 말하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를 평가한다. 이 선입견이 그들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로 전락시키고, 그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장님으로 둔갑시킨다. 오히려, 그를 이전에 알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가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유대 지식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인 회당으로 가서 가르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능력에 놀란다. 그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지식인들과는 달리, 40일 금식이라는 육체와 정신수련을 통해, 자신의 미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신적인 자신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예수의 놀라운 설교를 들은, 동향사람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과거에 자신에 알던, 목수로 연명하던 노동자로만 본다. 그들은 <마태복음> 13장 55-56절에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들은 예수의 지혜와 능력을 시기하고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러자 예수는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Οὐκ ἔστιν προφήτης ἄτιμος εἰ μὴ ἐν τῇ πατρίδι καὶ ἐν τῇ οἰκίᾳ αὐτοῦ..”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금-여기의 예수를 있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다. (58절: καὶ οὐκ ἐποίησεν ἐκεῖ δυνάμεις πολλὰς διὰ τὴν ἀπιστίαν αὐτῶν.)

예수는 예언자豫言者다. 예언자를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나비’의 의미는 ‘누군가의 말을 들은 사람’이란 뜻이다.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나바’naba의 수동분사형이다. 예언자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프로페테스προφήτης’도 ‘외부의 어떤 자를 대신하여’(프로) ‘말하는 사람’(페테스)다. 예언자는 자신이 무심코 떠올린 생각을 입을 통해 외부로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심령에 숨어있는 양심의 소리를 외부로 선명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는 ‘미래 일을 예측하여 말하는 점쟁이’가 아니라 신의 음성을 듣고, 그 말을 가감 없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자다. 이 역할에 어울리는 한국어 번역은 예언자라기 보다는 대언자, 영어로 표현하자면 spokesperson이다. 대변인은 상관의 말을 정확하게 용감하게 전달하는 자다. 수피시인 루미의 말을 빌리자면, 대언자는 피리를 수놓은 지공이다. 지공을 통해, 신의 숨결을 온전하게 통과시키면 된다.

사람들은, 대언자가 전하는 진리보다, 진리는 전하는 통로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자신의 사적이며 이기적인 내용을 첨가하여, 말씀을 왜곡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예언자가 말하는 신의 말씀보다는, 그 말을 담는 사람에 현혹되기 일쑤다. <도마복음서> 로기온 31은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딜렘마와 거절에 대해 말한다. 다음은, 로기온 31의 그리스어 원문과 콥트어 원문이다.

(그리스어)

31.1 λέγει ις· οὐκ ἔσ̣τιν δεκτὸς προφ̣ή̣ τ̣ης ἐ̣ν̣ τ̣ῇ̣ π̣ρ̣ι ̣δ̣ι ̣ αὐτ̣[ο]ῦ,

31.2 ο̣ὐ̣δὲ ἰατρὸςποιεῖ θ̣εραπείας εἰς τοὺς γ̣{ε̣}ινώσ̣κ̣ο̣ντας αὐτό(ν).

31.1 Jesus said, ‘A prophet is not acceptable in his own homeland,

31.2 nor does a doctor provide treatments for those who know him.’

(콥트어)

31.1 ⲡⲉϫⲉ ⲓ̅ⲥ̅ ⲙⲛ̄ ⲡⲣⲟⲫⲏⲧⲏⲥ ϣⲏⲡ⳿ ϩⲙ̄ ⲡⲉϥϯⲙⲉ

페제 예수스 먼-프로페테스 쉐프 험-페프-티메

예수가 말했다: 어떤 예언자도 자신의 마을에서 수용되지 못한다.

31.2 ⲙⲁⲣⲉ ⲥⲟⲉⲓⲛ ⲣ̄ⲑⲉⲣⲁⲡⲉⲩⲉ ⲛ̄ⲛⲉⲧ⳿ⲥⲟⲟⲩⲛ ⲙ̄ⲙⲟϥ⳿

마-레-소에인 러-쎄라페우에 언-네트-소운 엄-모프

의사는 자신을 아는 자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하는 사람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말도 미리 판단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신의 마을에서 수용되지 못한다. 나를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람에게, 내 생명과 연관된 수술과 치료를 맡길 수 없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전하려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전달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준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친척, 혹은 친구이며, 나를 개선시키는 교육은, 내가 매일 조금씩 습관적으로 하는 구별된 스케줄이다. 시골로 이사와 친구가 된 분이 한분 계시다. 그리스 아테네 대학에서 유학하시며 신약과 초기 동방기독교를 전공하신 김현수 교수님이시다. 그는 가평군 조종면에서 그리스 음식점 깔로께리(가평군 조종면 조종새싹로 57 깔로께리)를 운영하신다. 어찌나 음식이 맛있던지,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가서 친분을 나눈다. 교수님께서 그리스 델피를 다녀오시면서 선물 하나를 주셨다. 미노스 섬에서 발견된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c다. 크레타 섬에서 발견된 기원전 1700년경 아직 판독되지 않는 크레타 성각문자가 새겨진 유물의 레플리카다. 아직 판독되지 않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김교수님의 우정을 통해, 시골의 일상이 더 즐거워지면 좋겠다.

사진

<선물로 받는 크레터섬 파이스토스 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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