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8. (日曜日) “경의驚異”
오늘은 욥기공부 마지막 시간이다. 4년전 페북도반 김광선대표를 만나, 그의 영웅적인 투병과정을 보고 감격하여 약속하였다. 언젠가 김대표님과 같이 암투병하는 분들을 위해 욥기를 원전에서 번역하여 고통을 이해하는 안내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에 작년 10월 9일 한글날에 욥기공부를 시작했다. 맨처음에는 30명정도 참여했느나, 지금은 10명이 남아 공부한다.
지난주 공부에서, 우리는 욥이 그의 세 친구들과, 엘리후의 논쟁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야훼는 푹풍우 가운데, 갑자기 그리고 웅장하게 등장하여 욥에게 “내가 세상에 기초를 놓았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질문한다. 인간이 내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은, 답이 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질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의 질문은 도저히 대답할 수 있는 수수께끼다. 이 질문을 과학적인 정보를 더해, 되묻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138억년전에 빅뱅을 일으켜, 시간과 공간으로 우주를 만들었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다. 그 때에는 아직 우리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계도 었고 당연히 태양과 지구도 존재하지 않았고, 생명과 무생물이란 개념과 명칭조차 없는 맨 처음이었다.
욥은, 자신도 잘 모르는 교리로 무장한 욥의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었지만, 신의 질문에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 세상, 자연에는 도저히 알 수 없고, 인간의 과학적 탐구를 영원히 요구하는 무한한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과학은 자신이 정한 대상에 대해 일부는 아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고백이다. 생명이 어떻게 지구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영원한 의문이고 알수없음이다. 생물처럼 있음은 없음을 전제해야하지만, 없음이 있음으로 이항하는 과정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우주가 창조할 때 등장하는 두명의 혼돈 괴물들을 등장시키며 질문한다. 베헤못Behemoth과 리워야단Leviathan이다. 베헤못은 고대이집트어에서 물소를 의미하는 단어 파-하-무pahamw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물소를 보고 너무 놀라, 우주의 창조한 괴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리워야단은 ‘꼬리를 말다’라는 셈족어 어근 l-w-d에서 유래하여, 꼬리를 돌돌 만 최초의 혼돈을 상징하는 괴물이다. 그는 마치 단테 신곡 인페르노에 나오는 미노스처럼, 꼬리로 죄인들을 말아 지옥에 배치하는 자와 유사하다. 욥은 야훼신의 질문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는다.
욥은 신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그 반응은 <욥기> 40장 3-5절과 <욥기> 42장 1-6절에 등장한다. <욥기> 40장 3-5절은, <욥기> 42장 맨 앞으로 이동되어야, 문맥상 글이 통한다. 욥기를 마지막으로 정리한 편집자가 실수로 40장 3-5절을, 앞에 배치하였다. 다음은 욥의 대답이다. 아니 대답이라가보다는 체념이며 각성이다. 먼저 40장 3-5절이다:
40장
3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וַיַּ֖עַן אִיֹּ֥וב אֶת־יְהוָ֗ה וַיֹּאמַֽר׃
4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당신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내 손을 입 위에 가져갔습니다.
הֵ֣ן קַ֭לֹּתִי מָ֣ה אֲשִׁיבֶ֑ךָּ יָ֝דִ֗י שַׂ֣מְתִּי לְמֹו־פִֽי׃
5 이 전에 말을 했었지만, 이제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אַחַ֣ת דִּ֭בַּרְתִּי וְלֹ֣א אֶֽעֱנֶ֑ה וּ֝שְׁתַּ֗יִם וְלֹ֣א אֹוסִֽיף׃ פ
욥은 자신의 옳음, 신앞에서 떳떳한 의로움인 쩨덱tzedeq과 인간 앞에서 떳떳한 정의로움인 미쉬파트mishpath를 주장해왔지만. 그 주장은 야훼신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심리학자 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신의 그림자인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등장시키고 이들이 만든 우주 전체, 자연, 기후, 동물, 식물을 열거하자 욥은 도저히 반응할 수가 없었다. 욥은 자신을 ‘깔로티’ 즉 ‘저는 먼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먼지란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욥은 자신이 세상을 좀 아는 자로 여러 말로 동료들을 제압하였으나, 이젠 입이 열 개라도 말할 수 없었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의 반응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의 손은 입위에 가져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손을 입위에 가져가는 행위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 등장한 궁중예절이다. 왕중왕인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는 노루즈라는 신년축제때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방백들로부터 조공과 함께 알현謁見을 받는다. 외국의 왕들이 다리우스에게 하는 알현모습이 오늘날 페르세폴리스 궁전 아파다나에 남아있다. 다리우스대왕 뒤로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가 서있다. 제단 위 다리우스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의 제단 두 개가 있다. 한 신하가 다리우스 대왕 앞으로 다가와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에 손을 갖다 댄다. 이 행위를 그리스어로 “프로스퀴네시스Proskynesisπροσκύνησις”라고 부른다.
욥이 손을 입에다 대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이후 욥의 각성은 <욥기> 42장 1-6에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42장
1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וַיַּ֖עַן אִיֹּ֥וב אֶת־יְהוָ֗ה וַיֹּאמַֽר׃
2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깨닫습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당신의 계획은 결코 좌절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제가 깨닫습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ידעת כי כל תוכל ולא יבצר ממך מזמה׃
3 “깨달음없이 (나의) 뜻을 흐리는 자가 누구냐?”(라고 당신은 말하십니다) 분명히 저는 나름대로 말했지만, 당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깨닫기에는 너무 경이驚異로운 일들입니다.
מִ֤י זֶ֨ה ׀ מַעְלִ֥ים עֵצָ֗ה בְּֽלִ֫י דָ֥עַת לָכֵ֣ן הִ֭גַּדְתִּי וְלֹ֣א אָבִ֑ין נִפְלָאֹ֥ות מִ֝מֶּ֗נִּי וְלֹ֣א אֵדָֽע׃
4 당신은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שְֽׁמַֽע־נָ֭א וְאָנֹכִ֣י אֲדַבֵּ֑ר אֶ֝שְׁאָלְךָ֗ וְהֹודִיעֵֽנִי׃
5 (지금까지는) 당신에 대해 귀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당신을 나의 두 눈으로 봅니다.
לְשֵֽׁמַע־אֹ֥זֶן שְׁמַעְתִּ֑יךָ וְ֝עַתָּ֗ה עֵינִ֥י רָאָֽתְךָ׃
6 그러므로 저는 자신을 부인하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עַל־כֵּ֭ן אֶמְאַ֣ס וְנִחַ֑מְתִּי עַל־עָפָ֥ר וָאֵֽפֶר׃ פ
욥이 야훼가 만든 우주의 이치를 알기에는 자신의 지식이 미천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42장3절에 등장하는 히브리 단어 ‘니플로쓰 נִפְלָאֹ֥ות’는 작년에 나사가 올린 제임스웹 만원경으로 관찰한 천체의 모습과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으로는 도무지 가름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다. 욥은 42장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까지는) 당신에 대해 귀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당신을 나의 두 눈으로 봅니다.” 이전까지는 남들이 말하는 이야기로 신을 알려고 하였으나. 이제는 개안이 되어, 자신이 보는 모든 세계가 신의 지문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제 깨어난 자가 된 것이다. 깨어난 자, 개안된 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자다.
사진
<아침산책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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