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5. (木曜日) “개선改善”
‘잘’ 말하고 ‘잘’ 행동하는 것을 얼마나 힘든 일이지. 하루는 ‘잘’을 훈련하는 도장이다. ‘잘’이란 부사副詞는 뒤따라오는 동사動詞를 꾸며주는 부차적인 품사같지만, 사실은 그 품사의 품격을 정하는 결정사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말을 삼가는 인내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선택으로 이루어진 침묵을 수련해야한다. 이 수련없이,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하나 마나한 지껄임이다. 말은 침묵이 낳은 귀한 자식이다. 행위는 무위의 소산이다. 무위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어제를 기반으로 중독된 욕망의 몸짖을 억압하는 훈련이다. 무위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이며 단호하고 압도적인 행위를 낳는 어머니다.
인간이 자신이 가야 만하는 유일하고 옳은 길로부터 이탈시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탈하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는 객관적인 시선視線이 필요하다. 유혹의 결과를 상상하고, 그 결과를 도출해내는 이성으로, 내 발길을 오늘 마쳐야 할 결승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자신의 몸을 통해 이루기 위해, 어미 거북이가 자신이 태어난 모래사장을 향해, 이정표도 없는 바다를 표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표류는 우주가 탄생할 때, 만들어진 ‘철분鐵分’이 지구의 내핵에서 끌어당기는 철덩어리의 명령에 복종하는 헤엄이다. 어미 거북이의 피에는 목적지를 향한 자성나침반磁性羅針盤이 존재한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나침반의 파르르 떠는 바늘만이 진실하다.
우리는 그 나침반을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선생, 스승, 종교인, 철학자는 절대 아니고 경전, 고전, 혹은 베스트셀러는 더욱더 아니다. 나침반은 연습을 통해 점점 섬세해지는 신의 선물이다. 스승과 경전은 일종의 안내서일 뿐이다. 내가 요가 안내서를 숙지한다고, 요가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요가동작은 99%연습이고 1%이론이다. 내가 스승이나 경전을 통해, 삶에 적용할 때, 나는 진리가 된다.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내 몸에 배어 나오는 향기다.
오늘에 적용되는 나침반을 획득하기 위한 의례가 있다. 샤갈, 벨라, 예쁜이와의 산책이다. 이들은 적어도 나라는 인간이 과거에 안주하지 않도록 아침마다 신비로 가득한 야산으로 인도하는 트레이너들이다. 내가 이들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나를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지상에 태어난 존재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반려인이 된 지 오래다.
마음을 다잡고 오늘을 시작하고 싶었다. 느슨해진 일기쓰기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매일묵상이 아니라, 매일산책을 통해 얻는 삶의 기쁨을 글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일기쓰기의 대가인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이며 <월든 호수> 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1817-1862)의 읽기를 훔쳐보았다. 그는 1937년부터 1961년까지, 하버드대학교 재학시절인 스므살 때부터 죽기 6개월 전까지 일기를 종교적으로 썼다. 그에게 일기쓰기가 종교였다.
소로는 1837년 10월 22일에 일기를 처음으로 쓰기시작하였다. 그의 멘토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그에게 일기쓰는 거룩한 습관을 독려하였다:
“너 지금 뭐하고 있어. 일기 쓰는 거야?”라고 그(에머슨)이 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첫 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다:
고독Solitude
혼자 있는다는 것은, 현재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기피한다. 어떻게 내가 거울로 가득한 로마 황제의 방에서 외로울 수가 있는가? 나는 다락방 하나를 찾았다. 거미들이 방해받지 않고 마루쓰는 법도 없다. 가지런한 판자도 없다. 독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Es ist alles wahr wodurch du besser wirst.(에스 이스트 알레스 바르 보두르흐 두 베서 위르스트)“
소로는 아마도 그리스와 로마 황제들과 철학자들의 글로 가득한 하버드대학 와이드너 도서관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고전들과 경전들조차, 자신이 발견해야 할 다락방에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자신만의 다락방에선, 거미도 없도 청소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구를 가지런히 배열할 필요도 없다. 그가 추구하는 삶을 고독이며, 고독은 그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나침반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첫일기 마지막 문장에서 독일어 명문을 소개한다. 번역하자면 이렇다. “당신을 매일 매일 개선改善시키는 그것만이 진리입니다.”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 과거에 주저앉히는 교리, 이데올로기, 철학, 상식은 거짓이다. 나는 개선시켜 감동을 주어,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사는 지구에게 이로운 일이 진리다. 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변화시킨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산책이고 다른 나라는 일기쓰기다. 산책을 시켜주고 일기쓸 기운을 차리게 해주는 스승이 나의 반려견들이다.
야산은 나의 목적지이고 반려견들은 나의 나침반들이다. 산은 알수없음으로 가득한 위험이다. 입산하면 고라니가 도망가고 멧돼지가 흔적은 남긴 배설물이 보인다. 특히 관종이 자라나 무릎까지 올라와 발을 헛디디기 일수다. 비탈길에 관종 밑에 솟아오른 그루터기를 보지 못해, 왼쪽 다리를 찔렸다. 바지가 찢어지고 상처를 입었지만, 내 신체와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태어난 반려견들과 야산 덕에 하루가 즐겁다.
사진
<벨라-샤갈과 찢어진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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