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3.4.19.(水曜日) “처방전處方箋”

2023.4.19.(水曜日) “처방전處方箋”

인생은 자신이 되어야만 할, 그리고 될 수 있는 이상적인 자신이 되기 위한 마라톤이다. 신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녔다. 우리는 인생 초반에 부모와 선생으로부터 완주할 수 있는 근력을 훈련받는다. 이 훈련이 가정교육이며 학교 교육이다. 교육이란, 외부의 정보를 습득하여,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는 코스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짜 인생은, 우리가 인생의 3/4지점에, 나이 50-70대에 도달하면, 시작된다.

인생이란 마라톤의 42.195km에서 30km지점은 과거의 배움을 넘어서는 초인적인 내적인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지점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과거에 견뎌냈던 고통, 역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내를 습득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마라토너들이 이 마의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그의 뇌로부터 고통을 잊게 해주는 도파민을 스스로 생성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도파민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른다. 이 순간 그에게 필요한 것은 평소에 사용하던 힘이 아니라 초인적인 힘이다. 도파민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나오는 힘이다.

우리의 내부에서 나오는 힘은 믿을 만하다. 외부의 힘을 믿는 인생은 이리저리 표류하는 부초와 같이 살다 사라진다. 그런 자에게는, 5막인줄 알았던 인생이 3막으로 갑자기 끝난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행복한 사람은 이상적인 자신을 매일 아침 발견하고, 그 자신에 눈을 고정하고 정진한다. 그에겐 매 순간이 일생이 되고 한 발걸음이 목표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은 준전시 상황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다”라고 말했다. 고통과 역경은 우리의 인격을 조각하고 도전은 우리의 가치를 마련해주고, 역경의 극복은 자족하는 삶, 행복한 삶을 획득하기 위한 유일한 처방전이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는 일생을 마감하면서 절친인 시칠리아의 행정장관이 루킬리우스에게 삶의 철학들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인생의 역경을 맞이하여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고통과 역경은 인생의 불가피하다. 인생이 고해다. 병이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배신당하고,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과 마주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들은 인생에서 예외가 아니라 다반사다. 불가피한 역경에 대해 불평이나 낙담은 상황을 더 악화시켜 우리를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버릴 것이다.

이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두 가지 처방전이 있다. 첫 번째는 심리적인 처방전이고 두 번째는 신체적인 처방전이다. 첫 번째는 묵상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만히 상상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세네카는 우리에게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그날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깊이 묵상해보라고 권유한다. ‘프레메디타치오 말로룸’ (premeditatio malorum)이란 라틴어 문구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기’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비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구가하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다.

그것은 마치 왕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기습공격을 상상하려 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왕이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여겨, 그런 공격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쟁에서 패할 것이다. 만일 미리 준비한다면, 기습공격이 와도, 그는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그런 자의 실력을 측정하는 관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미래의 어려움을 준비하여 대처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어려움이 자신에게 다가올 줄 몰랐다고 변명한다. 만일 우리가 매일 아침, 15분에서 20분 정도를 할애하여 그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하는 ‘전략적 묵상’을 자신의 삶의 중요한 일과로 만든다면, 그(녀)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가 된다.

두 번째 마음가짐은,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몰입하는 유연성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심적인 활동이 분명,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 유연성이 바로 ‘오락과 놀이’다. 철학자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바로 ‘놀이’였다. 소크라테스는 종종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놀았고, 에피쿠로스는 ‘정원’에서 친구들과 소박한 와인과 치즈를 즐겼으며 세네카는 정원 가꾸기를 꼭 필요한 일과로 여겼다. 오락과 놀이를 통해 우리는 마음을 친절하게 만들고, 이 친절을 통해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절제를 키울 수 있다.

내 삶을 떠마치는 수련이지 놀이는 아침 산책이다. 반려견 세 마리와 야산에 오른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는 자연은, 지금이 태어난 순간이며, 지금이 죽음의 시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야산의 나무와 풀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자리에서 뿌리를 지구의 중심에 내리고 하늘은 저 높은 곳을 향한다. 아래와 위를 동시에 추구하며, 쓸쓸하지만 늠름하게 서 있다. 이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순간에 자신에게 몰입하고 자신을 다른 나무나 풀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산에 오른 반려견들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금에 집중하고, 몰입한다. 내가 그들을 언제나 사진에 담아도, 인생샷이다. 남의 눈치를 보는 인간의 어색한 사진과는 다르다.

역경이 불가피하고, 미래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전략적으로 묵상’하고, 오락과 놀이를 통해 마음을 유연하게 준비한다면, 우리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처방전을 복용한 셈이다. 만일 그런 역경과 고통이 한동안 닥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운에 감사하고 고요를 즐기며 동시에 다가올 위험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 관계가 끊어지고, 직업을 잃으며,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죽음의 위협이 다가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준비해온 인생의 회복력에 대한 시험으로 여길 것이다.

세네카는 “고통이 없는 삶은 죽은 바다다”라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역경을 원하지 않았지만, 말할 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불행이나 저주로 생각하지 않고 기회로 여겼다. 그들은 한 인간의 최선을 인생의 역경이 주조한 예술작품이라고 여겼다. 역경은 한 개인이 지닌 내적인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우는 총성이다. 불이 금을 주조하듯이, 불행은 용감한 인간을 조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매일 아침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전략적 묵상’을 실행하는가? 당신은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운동, 산책, 독서와 같은 자신만의 오락을 즐기는가? 당신은 이 처방전 두 봉지를 오늘 복용하였는가?

사진

아내와 내가 구조했던 베티가 2년전에 입양되어 갔다가, 견주의 허락으로 우리집에서 2주간 머물렀다. 샤갈, 벨라, 예쁜이를 산책시키고, 베티를 다시 데리고 야산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산책중인 반려견 베티>





Kommentar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