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3. (金曜日) “감사感謝”
매달 첫 번째 세 번째 토요일은 바쁜 날이다. 바쁘지만 감사한 날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운 좋게 외국에서 공부하여, 그 덕에 가르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책을 내고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삶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꿈에 관해 전해 듣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매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요즘 나의 걱정은 대한민국의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누군가 교육을 경쟁이며 경제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잘못들었나하고 확인해 보았는데, 그 사람이 정색을 하고 그렇게 정말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일 오후 2시-5시에는 부천에서 오는 태풍태권도장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 7-9시에는 예술하는 친구들과 함께 단테 <인페르노>를 공부한다. 아이들에게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에 관한 영시와 메리 올리버의 반려견에 관한 시를 감상하고 암송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시에 등장하는 주제를 잡아, 20분동안 즉흥 글쓰기를 시킨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낭송시키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글의 내용과 발표 태도에 대해 조언한다. 아이들이 제출한 에세이는 다음 수업시간에 코멘트를 달아 돌려 준다.
내가 이 아이들과 3년전에부터 인연을 맺어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젠 그들이 사범님과 함께 지난 9월부터 더코라로 와 수업한다. 12명으로 이 생명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7명이 남았다. 5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얼굴이 밝아지고 태도가 자신만만하며 겸손하고, 영어실력과 작문실력이 늘었다. 우리가 이런 수업을 한다는 소문이 나서 두 명이 새로 조인하였다. 한 명은, 청심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생이고 다른 학생은 국제중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를 설득하여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이다. 특히 이 후자 학생은, 나에게 느닷없이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학생에게 누가 되지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열다섯살 ‘누구’입니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면서 미국교육 9학년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띄운 이유는 선생님의 수업을 다른 아이들처럼 듣고 싶어서입니다. 제 또래의 태권도장 아이들이 너무나 멋진 공부를 하고있더라구요. 저도 그 과정 혹은 다른 과정이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일반 초등학교를 거쳐 국제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8학년 때, '홀로 오롯이 공부에 집중해보자. 주변의 소리와 반응에서 멀어져 나의 길을 걸어가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방식이 너무나도 설레이고 처음엔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무섭고 힘들기도 하더라구요. 지금은 다행히 잘 적응하였습니다! 제가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과 그들의 감정을 관찰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학교문학작품을 통해 Crime and Punishment를 읽었는데 무엇인가 놀라웠습니다. 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부디 기회가 있다면 선생님의 수업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p.s) 부모님 께서도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주 좋아하셨어요. 다음에 뵙게 되면 서가에 꽂힌 선생님의 책들을 들고 갈게요. 총총”
나는 이 학생의 정성스런 메일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태권도장 아이들과 3년동안 공부해왔기 때문에, 그 균형을 깨기 싫어,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반가워요. 태풍학생들과는 지난 2년동안 함께 공부했어요. Robert Frost 시 The Road not taken과 Into My Own을 학생들은 모두 암송했어요. 네가 이 시들을 암송하여, 나한테 녹음파일을 보내면, 그때 참석여부를 고민해 볼게.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에게 이런 메일과 함께 영상 두 개가 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지내셨나요? Robert Frost의 Into My Own과 The Road Not Taken을 외워 낭송한 비디오를 보냅니다. 이 메일이 교수님께 잘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영상을 열어보았다. 이 학생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두 시를 완벽하게 암송하였다. 카메라가 아니라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이 아이의 영상을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이 학생이 조인하여 모두 9명이 영시를 공부한다.
나는 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자로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행복하고, 그 행복을 준 아이들에게 감사感謝하다. 이번 주부터는 영시 두편암송 뿐만 아니라, 한국시를 함께 감상하고 암송하도록 요구하였다. 그 첫 번째 한국시로 구상시인의 ‘시’라는 시를 선택하고, <정글북> 저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시인인 키플링의 If,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The Sweetness of Dogs를 공부하였다. 다음은 구상시의 ‘시’라는 시를 공부할 예정이다. 구상 시인의 ‘시’ 원문이다.
시詩
구상(1919-004)
우리가 평소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아무리 말을 치장해도
그 말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느니
하물며 시의 표상表象이 아무리 현란한들
그 실재實在가 없고서야 어찌 감동을 주랴?
흔히 말과 생각을 다른 것으로 아나
실상 생각과 느낌은 말로써 하느니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렸다.
그리고 이웃집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도
누구나 그 주인보다 더 맛볼 수 있듯이
또한 길섶에 자란 잡초의 짓밟힘에도
가여워 눈물짓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시는 우주적 감각感覺과 그 연민憐憫에서
태어나고 빚어지고 써지는 것이니
시를 소유나 이해利害의 굴레 안에서
찾거나 얻거나 쓰려고 들지 말라!
오오, 말씀의 신령함이여!
구상은 시가, 일상의 사소한 것까지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우주적 감각’과 그것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어진 마음인 ‘연민’에서 탄생한다고 노래한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의 오감으로 느껴, 그것은 마음 판에 새기려는 정성이 감각이며, 그 감각을 통해, 자신의 시선을 확장하여, 외부를 내부로 온전히 수용하여 일체화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자연스러운 습관적인 합일이 연민이다. 아이들이 한국시와 영시 암송을 통해, 우주적인 감각과 인간 최고의 가치인 연민을 가슴속에 새기길 바란다. 수업 후 집에 돌아오니, 벌써 아이들이 감사편지를 문자로 보냈다. 그들 중 네 명의 편지를 올려본다.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준 아이들에게 감사感謝하다.
사진
<수업 아이들의 감사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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