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 (木曜日) “아버지”
(<도마복음서> 로기온 15)
매주목요일 오후에는 <도마복음서> 로기온 하나를 촬영한다. 오늘 촬영할 내용은 로기온 15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는 <마태복음> 23장 9절에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윤리를 부수는 선언을 한다:πατέρα μὴ καλέσητε ὑμῶν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ἷς γάρ ἐστιν ὑμῶν ὁ Πατὴρ ὁ οὐράνιος.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하늘에 계신 분이다.” 우리를 지상에 태어나도록 도와주고 양육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버지나 어머니로 부르지 말하고 경고한다. 그리고는 진정한 부모는 한 분이고, 그 분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람아로 ‘압바’abba즉 ‘아버지’라고 부르고,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한다. 복음서는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선포하지만, <도마복음서> 어록 15에서는 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도마복음서> 어록 15의 원문과 직역, 의역,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콥트어 어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원문)
ⲡⲉϫⲉ ⲓ̅ⲥ̅ ϫⲉ ϩⲟⲧⲁⲛ ⲉⲧⲉⲧⲛ̄ϣⲁⲛⲛⲁⲩ ⲉⲡⲉⲧⲉ ⲙ̄ⲡⲟⲩϫⲡⲟϥ⳿ ⲉⲃⲟⲗ ϩⲛ̄ ⲧⲥϩⲓⲙⲉ
페제 예수스 제 호탄 에테턴-샨-나우 에-페테-엄푸-즈포-프 에볼 헌-트-스히메
ⲡⲉϩⲧ⳿ⲧⲏⲩⲧⲛ̄ ⲉϫⲙ̄ ⲡⲉⲧⲛ̄ϩⲟ ⲛ̄ⲧⲉⲧⲛ̄ⲟⲩⲱϣⲧ ⲛⲁϥ⳿ ⲡⲉⲧⲙ̄ⲙⲁⲩ ⲡⲉ ⲡⲉⲧⲛ̄ⲉⲓⲱⲧ⳿
페흐트-튜턴 에-점-페턴-호 언-테턴-우오슈트 나프 페텀-마우 페 테턴-이오트
(직역)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이 여인으로부터, 잉태되지 않는 자를 볼 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를 숭배하라. 거기있는 자가 너희들의 아버지다.”
(의역)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이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마치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와 나비가 되듯이, 다시 태어난 자를 만난다면, 너희들은, 마치 신에게 하듯이, 얼굴을 땅에 대고 그를 경배하다. 그 존재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 아버지다.”
(어휘)
ⲉⲓⲱⲧ 명사, ‘아버지’
ⲉϫⲙ̄ 전치사, ‘-위에’
ⲙⲁⲩ 부사, ‘거기에’
ⲛⲁⲩ 동사 ‘보다’
ⲟⲩⲱϣⲧ 동사 ‘숭배하다’ (here only)
ⲡⲉϩⲧ 동사 ‘엎드려 절하다’ (here only)
ⲥϩⲓⲙⲉ n.f. ‘여자’
ⲧⲏⲩⲧⲛ̄ 재귀대명사 ‘그들 자신’
ϩⲟ 명사 ‘얼굴’
ϩⲟⲧⲁⲛ 접속사 ‘-할 때
ϫⲡⲟ 동사 ’낳다‘
위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콥트어 어휘의 심층적인 의미를 파악해야한다. 다음은 로기온 15에 나오는 주요 어휘에 대한 설명이다:
(어휘설명)
1. ⲛⲁⲩ
‘보아라’라는 의미를 지닌 ‘나우’ⲛⲁⲩ는 영어의 look이나 behold처럼 자동사로 전치사 ⲉ-를 이용하여, 보려는 대상을 표시한다. 히브리어 hinne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다.
2. ϫⲡⲟ
‘흐포’ϫⲡⲟ는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쇼페’ϣⲱⲡⲉ의 사역형으로 ‘존재하게 만들다’이며 ‘생명을 낳다; 배태하다’라는 뜻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 의미는 로기온 9에 등장하는 밭에 뿌려진 씨앗이 결국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3. ⲡⲉϩⲧ
‘페흐트’는 ‘구부리다; 넘어지다, 절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포흐ⲡⲱϩ’의 대명사형이다. 인간은 ‘얼굴ϩⲟ’는 ‘겉모습’이다. ⲡⲉϩⲧ⳿ⲧⲏⲩⲧⲛ̄ ⲉϫⲙ̄ ⲡⲉⲧⲛ̄ϩⲟ는 ‘당신 스스로 자신의 겉모습에 대항하여 구부리고 땅에 버리라’는 의미다. 이 동사는 신체와 관련된 동사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다면, 그에게 절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스스로, 타인을 향한 외면을 구부려, 자신의 얼굴을 흙이나 모래에 파묻으라는 충고다. 자신의 겉모습을 흙안에 묻고 유기하면, 그 안에 숨겨진 자아가 드러날 것이다. 당신 스스로 창조한 존재를 숭배하라.
4. ⲟⲩⲱϣⲧ
우오슈트ⲟⲩⲱϣⲧ 는 ‘숭배하다; 인사하다; 입맞추다’ 그리고 ‘껴안다; 반기다’라는 의미다.
5. ⲉⲓⲱⲧ
‘아버지’를 의미하는 ‘이오트ⲉⲓⲱⲧ’ 이 아버지는 인간의 육신 아버지가 아니라, 오래된 자아를 유기하고 새로운 자아를 잉태시킨 ‘어떤 것’이다. 로기온 11에서 ‘우리는 하나이며 동시에 우리는 둘이다’라고 말한다, “너희가 하나가 되는 날에 너희는 둘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을 알게 되면 우리는 둘이 되어, 우리 자신을 낳은 아버지가 된다. 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의미설명)
로기온 15는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숨어있는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에 관한 경구다. ‘이 영적인 아버지’는 여인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육체, 이성, 혹은 감정으로부터 태어나지 않는다. 이 아버지는 인간의 진정한 기원인, 태어난 적이 없고 창조된 적이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 아버지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경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되지 않고 태초에 존재한 사랑이는 신적인 심연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아버지는 인간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영적인 자아이며 자기자신이고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꽃인 양심이다.
<마태복음> 23장 9절에서 말하는 ‘지상의 아버지’는 ‘나’라는 역사적인 존계가 존재론적 한계와 궁핍 안에서 만들어진 편견, 변명, 자기주장이다. 혹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이 그에게 부여한 직책과 명성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외부가 정의한 그가,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그들의 장단에 춤을 춘다. 그러나 깨달은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가만히 앉아있는 자기자신을 일깨워, 그분에게만 의지하고 복종한다.
이 유일한 신은 우리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며 나에게 생명을 부여한 분이다. ‘여인’(스히메ⲥϩⲓⲙⲉ)는 남성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 혹은 잠시 생명이 주어져 지상에 살고 있는 상대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는 (프라크리티)는 ‘나’라는 일시적인 존재가 사라지면, 생명을 부여한 원초적인 ‘영’(프푸샤)가 태어난다. 내가 숭배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자기-자신이며, 예수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우리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잉태시키기 위해, 오래된 자아를 살해하는 영적인 자아이며 우리의 인도자다.
사진
<엘리 로타르>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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