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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4. (月曜日) “두도시이야기”

2023.12.4. (月曜日) “두도시이야기”

     

두주전, 지난 11월 23일, LG CTO김병훈 부사장을 만났다. 두달 전 쯤 LG전자 CTO부문의 교육담당자가 연락이 와, 그가 만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LG전자 CTO겸 인공지능연구소장으로 만나야할 사람같았다. 나는 그날 아침 LG전자 서초 R&D 캠퍼스로 갔다.

     

이 곳과 마북지역에 LG전자를 위한 연구자가 삼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나는 인도자를 로비에서 만나 지하 2층에 마련된 널찍한 회의실 책상에 앉았다. 홀로 앉아 밖에 정갈하게 심겨진 소나무를 보았다. 서울 한복판이 일본정원과 같았다.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소나무와 비슷한 사람이 올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윽고 그가 왔다. 몸은 운동으로 수련한 사람처럼 날렵했다.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내 저서 <심연>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하며 인사하였다. 내가 <심연>을 포함한 네 권 책을 쓴 이유를 말했다. 50살에 인생의 분깃점이 와서, 처음에는 제주도에서 살다, 현재의 가평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니, 명상과 반려견 동반 산책, 달리기를 통해 자연히 책을 쓰게 되었다. 산책하고 운동한 만큼 글을 써서, 독자들이 내 글에 공감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들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발걸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이야기로 시작했다. 나를 학문의 좁은 길로 인도한 구루가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운동하고 남은 시간에 공부하라‘는 만트라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이 조언을 신봉하여 달리기를 종교적으로 수행했다. 그랬더니 그도 달리기를 매일 수행한다고 말했다. 내가 상상한 대기업 대표의 이미지가 아니기에 놀랐다. 자신도 달리기를 통해 매일 새벽, 자신을 한계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저는 매일 아침 14km를 뛰어요!” 그의 말에 그의 표정, 걸음걸이, 경청하는 모습이 달리기 수련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나는 우리 아이들이 달리기를 통해 신체, 정신, 그리고 자신의 천재성이 숨어있는 영혼을 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부천태풍태권도 아이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말해주었다. 어린 시절, 특히 그들의 뇌가 편재화되는 시점인 사춘기 이전에 다양한 독서를 통해, 자신들이 되고 싶은 업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교육혁명이다.

     

그는 자신이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을 읽고 있는데,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할 대표가 디킨의 역사장편소설을 읽고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용기에 놀랐다. 내가 만난 기업인들 대부분이라면 너무 싸잡아 이야기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내가 자신이 장편소설을 읽고 있다고 말한 두 명 중에 한 명이다. 그전에 호메로스 시와 그리스어를 가르쳐준 스승 칼버트 왓킨스Calvert Watkins가 고전을 읽으려면 장편 소설을 읽어야한다며 나구입 마흐푸즈의 장편소설 Children Alley를 알려주었다. 그 후, 장년소설로 이야기를 이은 두 번째 인간이다.

     

베토벤 심포니 3번 에로이카를 들으면, 형용할 수 없는 용기와 좌절, 그리고 희열을 느낀다. 동물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를 신적인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둔갑시킨 것은 수학이나 숫자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성과 감정이다. 안목, 친절, 배려, 자비, 정직, 카리스마와 같은 가치가 인류를 변화시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AI는 인간이 계산한 많은 정보들을 처리하고, 그것들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그것은 있는 것을 종합하는 예술이다. AI를 통해 반 클라이번 콩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의 라흐마니코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와 같은 연주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을 작곡한 라흐마니노프를 재생시킬 수는 없다.

     

나는 민들레가 도로 블록 사이를 뚫고 나와 우주선과 같은 수천개 씨앗을 머리에 품고 바람이 불면. 자신을 그 위에 실어 수 십km를 비행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내가 감동하는 것은 베보벤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에 이런 웅장한 음악을 작곡하게 된 과정과 귀머거리가 되었던 시절 오히려 침묵의 소리를 들고 장애를 극복한 그의 초인적인 힘이다.

     

그는 지금 자신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에 몰입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유일한 개인이라고 여기는 것이, 양자물리학에서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그의 부모종교인 힌두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와 같은 아브라함종교와는 달리, 개인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 단위인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의식이 타인의 의식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별성은 우주의 일부다. 우리가 ‘자아’이며 개인이라고 여기는 감각은, 뇌가 만들어낸 심리적인 속임수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근육, 골격, 근육이 함께 신체라는 전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자아’로 생각이나 신념을 모으려는 한 방식일 뿐이다. 양자역학에서 미립자는 개별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미립자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내가 우주다’aham Brahmāsmi와 같은 개념이다. 신과 인간, 나와 너를 구별하는 서양사상과는 달리, 인간은 신이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다. 그 신성은 외부의 입김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에너지로 형성되는 예술이다.

     

이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시간은 퇴근 후 저녁에 온전히 자신의 사랑인 물리학의 어려운 문제를 온전히 푸는 시간이라고 고백한다. 그 시간이 그가 신에게 드리는 예배다. 그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LG라는 큰 기관의 6G와 AI 연구의 기반과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였다. LG가 그의 탐구를 통해, AI시대를 선도하면 좋겠다. 그렇게 두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우리는 담소 공간에서 나와 다음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는 지하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집무실이 있는 26층(?)까지 계단을 통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이 모습을 보면서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를 시작한 첫 단락이 생각났다.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epoch of belief, it was the epoch of incredulity,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we were all going direct to Heaven, we were all going direct the other way-

in short, the period was so far like the present period,

that some of its noisiest authorities insisted on its being received,

for good or for evil, in the superlative degree of comparison only.

     

“최고의 시대이면서 최악의 시대였지.

지혜의 시기이면서, 어리석은의 시기였지.

믿음의 새로운 시대이면서, 불신의 새로운 시대였지.

빛의 계절이면서 어둠의 계절이었지.

희망의 봄이이면서 절망의 겨울이었지.

우리가 모든 것을 가졌어도,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

우리가 다함께 천국으로 곧장 가면서도, 우리는 다 함께 다른 방향으로 곧장 가고 있었지.”

     

사진

<찰스 디킨스 ‘두도시 이야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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