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 (日曜日) “함무라비”
1988년 가을, 나는 쐐기문자로 기록된 아카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존 휴너가르드라는 하버드교수는 아카드어 수업을 근동박물관 2층 한 교실에서 진행하였다. 이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1시간 30분씩 무시무시하게 진행되었다. 박사과정 학생들 몇몇과 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언어를 발견한 공부 벌레 학부생이 몇 명이 함께 공부하였다. 교수는 첫 시간에, 이 수업에서 요구하는 숙제와 시험을 통과하면, 쐐기문자로 기록한 함무라비법전을 영어처럼 읽을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하였다. 나는 이 감언이설에 빠져, 남들이 가지 않는 운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 1년동안 수업이 진행되면서 4명이 끝까지 남았다. 나는 이 인연으로 10년만에 함무라비법전이 기록된 아카드어와 관련 고전어들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물관 바닥은 고색창연한 회색 대리석이었다. 계단 가운데가 드나든 교수들과 학생들의 걸음으로 닳아 약간 파였다. 걸을 때마다 따박따박 걷는 구두소리가 박물과 전체가 울렸다. 강의실이 있는 2층에 올라가면, 시커먼 대리석 돌기둥이 서 있었다. 이 석비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중인 ‘함무라비 석비’의 복제품이란 사실을 아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엘람왕 (오늘날 이란지역) 슈트룩-나훈테가 기원전 12세기 바빌론의 침공하면서 함무라비 석비를 노획하여 엘람왕국의 수도인 수사로 가져왔다. 거의 3000년이 지나,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드 모르강이 1901년에 함무라비 석비를 수사에서 발굴하여 루브르 박물관에 정착하게 되었다.
함무라비법전에 새겨긴 석비는 높이가 2미터가 넘고 너비가 80cm이며 두께가 47cm나 된다. 석비의 1/4을 차지하는 맨 위에 두 명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오른편에 앉은 이는 정의의 신인 샤마시이고 왼편에 서 있는 이가 함무라비다. 함무라비는 지금부터 3800년전, 기원전 1810년부터 1750년까지 오늘날 이락의 중부에 위치한 바빌론이란 도시를 수도로 삼고 치리한 왕이다. 그는 수메르 시대 사제-왕들이 착용하던 창이 없는 모자를 쓰고 몸 전체를 휘감는 옷을 입었다. 왼팔으로 치렁치렁한 옷을 땅에 끌리지 않게 들었다. 오른손을 가지런히 펴고 자신의 입 앞에 놓았다. 두 눈은 좌정한 샤마시의 휘어진 뿔로 장식한 왕관을 가만히 응시한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 조각작품에서, 오른 손을 입에 가져가는 행위는 신에 대한 최고경의 표식이다. 알현자인 함무라비는 샤마시 앞에서 침묵할 것이며, 두 귀로 신의 말을 경청할 것이다. 아카드어로 ‘두 귀가 넓은’(라파쉬 우쯔니rapaš uznī)라는 표현은 ‘지혜로운’이란 의미다.
함무라비는 바빌론의 왕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통일하였다. 함무라비법전은 점점 복잡해지는 다른 나라와의 상거래와 바빌론 사회를 지탱하는 정의와 정의의 실제적인 장치인 사회규범이다. 그의 가족은 시리아 서쪽에서 이주해온 ‘아모리인’이라고 불리는 반유목민이었다. 그의 이름은 시리아문화와 바빌론문화의 융합이다. ‘함무’라는 말은 아모리어로 ‘삼촌; 친가’란 의미이고 ‘라비’는 아카드어로 ‘위대한’이란 의미다. ‘함무라비’라는 이름은 ‘삼촌은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유일신 종교의 창시자 아브라함도 아모리족이다.
함무라비는 인간이 도시안에서 문화와 문명을 구가하기 위한 기초가 바로 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도시의 규율을 준수하면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지만, 자신의 직계 가족과 친족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가문, 이방인, 외국인들과 공존하려는 수고를 통해 인간이 된다. 가족과 친족이라는,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관습과 습관이 삶의 유일한 잣대로 여기는 인간들은,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사실 동물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겐 문화가 없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한 이방인은 그것을 아카드어로 ‘미샤룸misharum’ 즉 ‘정의正義’라고 선포했다.
오른쪽에 정교하게 장식된 의자에 앉은 이가 정의와 법의 신인 ‘샤마시’다. 샤마시는 아카드어로 ‘태양’이란 의미이고 동시에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빛으로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하는 정의의 화신이다. 샤마시는 함무라비와는 다른 모양이다. 우선 머리에는 네 갈래 휘감고 있는 왕관을 썼다. 이 갈래는 야생 황소의 거대하고 강력한 뿔을 상징한다. 이 뿔은 수메르와 바빌론 문명의 핵심개념을 담고 있는 상징이다. 이 뿔을 수메르어로는 ‘메’ME로, 아카드어로는 ‘쉼툼’shimtum으로 읽는다. 이 두 단어는 모두 만물이 각자 되어야하고 될 수 있는 궁극적인 고유한 자기-자신을 의미한다. 나무는 나무다워야하고, 독수리는 독수리다워야한다, 이 단어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왕은 왕다워야하고 농부는 농부다워야한다. 샤미시의 어깨에서도 뿔을 상징하는 메가 승천하고 있다. 샤미시는 함무라비에게 바빌론의 왕으로 그에게 ‘메’를 줄 참이다. 그는 오른 손에 ‘왕다움’을 상징하는 막대기인 왕홀과 우주의 섭리를 상징하는 원형상징을 함무라비에게 선사한다.
샤마시가 함무라비에게 선물한 왕다움의 내용이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함무라비 법조항들이다. <함무라비법전>은 이전의 수메르 법전과 다르다. 기원전 21세기 우르의 왕인 우르남무의 법은 범죄 피해자의 보상에 주된 내용이다. 함무라비법전은 피해자 보상과 더불어 범법자에 대한 육체적인 형벌을 자세하게 규정하였다. 특히 오늘날 모든 판결에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함무라비법전은 후에 등장하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십계명과 다른 법령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함무라비법전은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명문화한 법전으로 유명하다. 법조항 196, 197은 그 법을 다음과 같다: (196)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의 눈을 다치게 했다면, 그의 눈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치게 될 것이다.” (197)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러뜨려질 것이다.”
이 조항들은 복수동태법(復讐同態法)의 전형이다. 이 조항들을 해석하는 열쇠는 ‘자유인’이라는 용어의 이해에 달려 있다. 자유인에 해당하는 아카드어는 ‘아윌룸(awilum)’이다. 아윌룸은 바빌론 사회에서 10% 이하의 왕족과 귀족을 의미한다. 바빌론에는 귀족들의 땅을 빌려 노동하고 세금을 내는 소작농(무쉬케눔·mushk?num)이 50%였고, 전쟁포로나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세금을 지불하지 못해 노예(와르둠·wardum)로 전락한 하층민들이 40%를 구성했다. 198, 199조항을 보면 함무라비가 생각하는 정의의 한계가 드러난다: “만일 자유인이 소작농의 눈이나 뼈를 다치게 한다면, 자유인은 은 한 냥(570g)을 지불하면 된다. 만일 자유인이 다른 사람 노예의 눈이나 뼈를 다치게 한다면 은 반 냥(285g)을 지불하면 된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의’를 제정해 새겨 놨지만, 그것은 왕족과 귀족만을 위한 노리개였다. 바빌론의 소작농,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노예들의 삶에 함무라비 법전은 정의의 상징이 아니라 불의와 착취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시대정신과 한계를 드러래지만, 그 결함을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도시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면서, 맨 처음 고안해낸 정의라는 개념과 법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함무라비는 바빌론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실로 다양한 분야를 제정하였다. 무고죄, 절도죄, 농업업 법, 상법, 주류판매법, 사유재산관련법, 여성과 어린이 관련법, 각종 직업관련법, 일일노동자법, 동물, 노예, 이자에 관련한 법등이다. 왜 함무라비는 282개 조항들 중 ‘무고誣告’에 관련된 법조항 5개를 맨 처음에 소개하였을까?
사진
<함무라비 법전 석비>
Hammurabi (기원전 1810-1750)
기원전 1793년, 검은대리석, 225cm x 79cm x 47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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