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0. (水曜日) “섭리攝理”
이번 주 토요일 줌수업은 <창세기> 38장에 등장하는 ‘유다와 다말이야기’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중 <창세기> 38장에 등장한 ‘유다와 다말 이야기’만큼 기괴한 이야기가 있을까? 이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인 유다가 그의 아들 둘과 결혼했지만, 아들 둘이 죽은 후,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어 쌍둥이 아이를 낳는 이야기다.
유다가 수아라는 가나안의 딸과 결혼하여 엘, 오난, 셀라라는 아들을 얻었다. 첫째 아들 엘은 다시 가나안 여인 다말이란 여인과 결혼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로 사망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형사취수제도에 의해, 이젠 그의 동생 오난이 다시 다말과 결혼했으나. 이들이 낳은 자식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죽은 형의 소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임신을 회피하는 행위를 한다. 오난이, 성관계를 맺어 육체의 쾌락을 즐겼지만, 성교중절性交中絶 행위로 다말이 임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느님은 오난마져 죽인다.
유다는 아직 나이가 어린 셀라마져, 두 아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유다는 부인이 죽자, 애도기간을 가진 후, 마침 양의 털을 깎는 유목민의 최대 축제를 즐기러 딤나로 간다. 이 축제에는 많은 음식과 술이 있다. 유다는 아내상을 치루고 오랫동안 금욕을 했기에, 축제에 참여하면서 창녀를 만나 바로 즐긴다. 길가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창녀를 발견한다. 유다는 그녀에게 무례하게 ‘성관계를 맺자’고 말한다. 그 변장한 여자가 바로 유다의 두 아들과 결혼한 적이 있는 며느리 다말란 사실을 모른다.
사실 다말은 이 모든 일을 유다 가문을 위해 기획한 일이었다. 그녀의 안목眼目으로 유다 가문의 지속을 위해,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겠다고 결심하였다. 다말은, 유다에게 화대花代를 요구하였다. 그는 후에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다말은 자신이 염소 새끼를 받을 때까지, 대담하게 담보물을 내놓아라고 요구한다. 유다는 담보물로 자신의 명예의 상징인 인장, 신과 자연의 영원회기를 상징하는 팔찌, 그리고 자신의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를 담보도 준다. 유다와 다말이 관계를 맺었다. 그 후에 유다의 친구 히라가 딤나로 내려가 그 ‘신전창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지역 사람들도 자기 동네에는 창녀가 없다고 말한다.
유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한 물건들을 잃어 버렸는대도, 그것들을 다시 찾을 생각이 없다. 다말은 창녀 의복을 벗고 다시 미망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3개월이 지나, 다말의 배는 불러오고, 사람들은 다말이 창녀짓으로 임신했다고 수근거린다. 이 소문이 유다에게 도달하자, 그는 대노하여, 인정사정없는 명령을 내린다. “그녀를 끌고 나와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하라!” 이제 다말의 반격이 시작된다. 다말은, 먼저 유다의 세 담보물을 유다에게 보내고 말한다. “이 담보물들의 주인이 나를 임신시켰다.” 그러자, 유다는 “그녀가 나보다 의롭다”라고 말한다. 그런 후, 유다는 다말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다말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름이 베레스와 짜라다.
이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의 주제인 시련과 섭리를 미리 알려주기 위해 편집자는 요셉이야기에 다말이야기를 38장에 끼워 넣었다. 아니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탄생에 깃들어 있는 대속의 역사에 대한 예언이다. 섭리는 인생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결과는 선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8장28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Οἴδαμεν δὲ ὅτι τοῖς ἀγαπῶσιν τὸν Θεὸν πάντα συνεργεῖ εἰς ἀγαθόν,
τοῖς κατὰ πρόθεσιν κλητοῖς οὖσιν.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하느님의 섭리攝理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바울이 선택한 그리스 단어는 ‘프로쎄시스πρόθεσις’를 나는 섭리攝理라고 번역하였다. 섭리는 천체의 운행처럼, 자연의 순환처럼, 계절의 변화처럼 미리(프로) 정해져있다(쎄시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을 통해 아는 것이다. 다말이 시아버지를 통해 낳은 자식이 다윗의 조상이 되고 결국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모두 아우르는 대서사시가 ‘다말’이란 여인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섭리는 선이 악을 이기고, 시련은 극복을 위한 과정이며, 과정이 곧 목적이라는 자연의 이치다. 다말이 낳은 쌍둥이중 한명인 베레스가 다윗왕가와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섭리攝理는 귀에 달린 두 귀가 아니라, 우리 심장 속에 숨어있는 제3의 귀로 양심의 소리를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들리는 침묵의 소리이자 양심의 소리다.
사진
<유대와 다말>
렘브란트
유화, 1660, 108 x 130cm
오스트리아 짤스부르그, 레지덴스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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