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水曜日) “당신은 시간을 선용하고 있습니까?”
길쭉한 전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 있다. 어제 산책할 때만해도, 스산하게 서 있었다. 다가 온 겨울을 잘 견뎌낼 것 같았는데, 전나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지구의 주인인 중력에 몸을 맡꼈다. 그리고 지금은 장렬하게 나뭇잎에 누워있다. 다른 나무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며 곁을 지키던 친구 전나무들 사이로 쭉 뻗었다. 가까이 가보니 곁가지가 거의 없다. 일년내내 자신의 마지막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매일 준비한다는 것이다. 사는 것이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히 죽어있다고 잠시 생명을 부여받고 가족과 친구를 통해 기쁨을 누리다, 영원히 죽음으로 들어간다. 이 사실을 가장 선명하여 보여준 사람이 있다. 철학자 사르트르나 작가 카뮈가 아니라, 로마 시대 살았던 세네카다.
세네카는 철학자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는 일생 서로 엮여 질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은, 철하고가 정치를 하나로 만들려 시도했다.
나는 그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당황하며 애쓰는 모습에 한없는 애처로움과 매력을 느낀다.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원후 65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네로 황제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고 기소되어 자살을 명령받았다. 세네카는 네로의 어릴 적 과외선생이었다. 이 음모에 관련하여 세네카가 가담했는지,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세네카는 마음 속으로, 로마제국의 이상을 훼손하는 네로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가 죽은 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세네카 마지막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친구들과 따라 죽겠다고 흐느껴 울고 있는 아내에 둘러 쌓여 있다. 그는 67세였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기관지염과 천식에 시달려, 어려서부터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수행하였다. 빵과 과일만 먹는 검소한 식단과 달리기와 승마로 몸을 단련하여, 말랐지만 강인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삶의 우상이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저작들은 제자 플라톤이 기록했지만, 세네카는 스스로 자신의 저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파이도>에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임종보다 더 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소크라테스는 늦은 오후 친구들의 철학을 논한 후, 독배를 마시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세네카는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따라 독이 든 음료를 마셨지만, 죽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여 임기응변으로 손목을 칼로 그었지만, 피가 흘러내리지 않고 응고하여 죽을 수가 없었다. 그가 원하는 역사에 남을 만한 마지막이 코메디가 되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병인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면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일어나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을 뒤로하고,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한 목욕탕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였다. 일생 동안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던 세네카가 호흡을 다시 곤란하게 만들어 죽었다. 그는 자신을 로마제국의 철학자이며서 황제이상의 황제로 기억되고 싶었지만, 임종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지만, 그는 소크라테스를 흉내 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철학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지혜로운 자의 삶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현자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우는 자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으면 가끔 그의 편지를 읽는다. 그가 친구 시칠리아의 감찰관이었던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저 전나무가 쓰러진 날 읽으면 좋은 내용이 첫 번째 편지에 등장한다. ‘시간선용’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이 편지의 시작을 라틴어로 ‘이타 팍, 미 루칠리’ita fac Lucili로 시작한다. 번역하자면, “오 나의 사랑하는 루킬리우스여! 이것만은 꼭 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너 자신을 위하여 지금까지 억지로, 모르는 사이에 흘러지나가 버린 시간을 모아서 아껴라!”
신은 우리 각자에서 황금보다 소중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교환할 수 없는,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은, 부동산가격하락이나 주가하락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하는 소홀疏忽이다. 2023년 올해를 가만히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들이 실패로, 부질없는 일로, 혹은 산만으로 사라졌다. 누가 자신의 시간에 값을 매길 수 있는가? 누가 매일 매일 사는 것은 바로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가?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오는 날들이 죽음의 일부였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으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12월이 가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시간을 손으로 부여잡는 것이다. 신이 우리에서 인생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었지만, 그 선물을 당연한 것으로 아무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지금 누리는 시간이다. 시간은, 갚을 수 없는 신의 은총이다. 지금이라도, 남은 2023년의 날들은 간절한 나의 염원으로 채우고, 그 깨달음을 당장 실천하고 싶다.
사진
<쓰러진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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