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1.(火曜日) “시詩의 특징 (1)”
시는 인간의 지성과 정서를 변화시키는 가장 유용한 도구다. 내가 아이들과 영시와 한국시를 감상하고, 이 시들을 암송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시는 농부의 쟁기가 되어, 딱딱한 땅을 경작하여 그 밑에 잠자고 있던 부드러운 옥토를 햇빛에 드러낸다. 시는 농부의 씨가 되어, 개간된 심경에 심긴다. 이 씨는 종자가 되어, 하늘이 주는 햇빛, 안개, 바람, 비를 통해, 뿌리를 저 아래 내리고 싹을 올린다.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하늘 끝까지 오른다.
시는 여백이고 산문은 설명이다. 시가 한 없이 여백으로 마치는 이유는, 독자가 자신의 삶과 경험으로 채워 넣으라고 손짓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왔는데, 이제는 마침내 시를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시가 아이들 정서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는 인류 보편적인 예술이다. 언어를 지닌 집단은, 설령 자신의 셍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문자가 없더라도, 누구나 자신들만의 노래가 있다.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무문자족들도 분명 운율을 갖춘 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공동체란, 국가란 그 구성원들의 염원을 담은 시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둘째, 시는 가장 오래된 예술 형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각 문화와 문명권의 가장 오래된 예술형태는 구전으로 암송된 시다. 유럽 정서의 핵심은 기원전 12세기 음유시인들을 통해 정형화되고 회자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는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떨친 ‘불멸의 명성’의 관한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오디세우스가 우여곡절 뜻에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귀향’에 대란 노래다. 이 노래들이 구전으로 회자되다가, 기원전 750년경 호메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이, 페이키아로부터 익힌 셈족 알파벳을 이용하여 그리스어로 서사시를 기록하였다. 이 서사시가 편집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유사한 시기, 히브리인들로 노예생활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한 노래를 기록한 <출애굽기> 20장이나 <사사기> 5장같은 노래가 기록되었다.
셋째, 시는 눈이 아니라 입을 통해 창조되는 순간의 예술이다. 그림은 장소를 차지하는 예술이지만, 음악은 순간이라는 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그 옛날 인류가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와 도시의 대상무역이 등장 한 후에,유목민들과 대상무역상들이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 모닥불을 지피고 옹기종기 앉았다. 누군가 입을 열어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룩을 건설한 왕, 길가메시를 노래한다. “샤 나끄마 임무루” 즉 “심연을 본 자”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가 자신의 고향을 떠난 상복을 입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음악이고 노래다. 음유시인은 4000행이나 되는 길가메시 서사시 전체를 암송하여,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하는 동료 인간들에게 희망을 선사하였다.
넷째, 시는 인간이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스승이다. 며칠전 권태응 시인의 ‘어느 날 눈을 감아보고는’을 읽었다. 내가 알던 눈감기, 귀닫기, 입다물기와 전혀 다른 가치를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어느 날 눈을 감아보고는
권태응
눈을 한참 감아 보고는
가깝한 장님을 생각해 보고,
귀를 한참 막아 보고는
답답한 귀머거릴 생각해 보고,
입응 한참 다물어 보고는
가엾은 벙어릴 생각해 보고.
이 시를 읽고 가만히 눈문을 훔쳤다. 간명하지만 강력하고 압도적인 시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삶을 지탱하는 가치를 알려 준다.
다섯째, 시는 노래, 춤, 연주가 곁들인 종합예술이다. 만일 우리가 베토벤의 심포니 5번 영웅을 악보로만 보았다고 하자. 그것은 ‘영웅’이 아니다. 심포니가 지휘자의 인도에 따라 음악당에서 연주되었을 때, 비로서 그 시의 가치를 드러낸다. 우리가 시를 소리 내어, 공연하듯이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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