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 (木曜日) “나그바nagba”
(<길가메시 서사시> 제1토판 1-4행)
내가 그 전에 듣도 보도 못한 아카드어를 전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개 유학을 가면, 자신이 한국에서 알던 분야를 심화하여 전공하는 것이 상례다. 나는 미국에 건너가 운좋게 스승을 만나 그 분야를 전공하였다. 아카드어는 히브리어, 아랍어, 에피오피아어와 동일한 어군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셈족어다. 아카드인들은 고고학자들이 아직 찾지 못한 아가데Agade라는 지역에 기원전 26세기에 등장하였다. 기원전 33세기에 등장하는 그림문자가 등장하였으나, 이 문자를 창제한 사람들이 수메르인들은 아니다. 학자들은 그들을 원-유프라테스어 혹은 원-티그리스어라고 잠정적으로 부른다. 기원전 1만년경 빙하기기 끝난 후, 호모 사피엔스들은 농업을 발견하였다. 농업은 인류에게 관찰, 인내, 수고, 경이, 감사라는 덕을 선물해주었다. 조그만 씨를 심으면, 자연이 그 씨를 발아시켜 비, 바람, 태양 빛과 열고 담금질 한 후에, 가을이면 풍성한 곡식을 선물해 주었다.
기원전 26세기 우룩Uruk과 아부 살라빅Abu Salabikh과 같은 도시에서 최초의 수메르어라고 불릴만한 쐐기문자 토판문서들이 출토되었다. 이 문서들에는 수메르어가 아닌 아카드어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u 혹은 –ma와 같은 단어는 수메르어가 아니다. 문맥을 보면, 이 단어들은 모두 접속사 ‘그리고; 그러나’ 혹은 ‘그러기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u와 –ma는 아카드어에 등장하는 가장 흔한 접속사와 접속-전접어다. 우리는 아카드어가 수메르어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26세기경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나에게 아카드어의 신비함을 알려준 분이 있다. 나의 멘토이자 지도교수였던 존 휴너가르드다. 그는 당시 우가리트어, 타르굼 아람어, 아카드어 문법을 집필하면서 박사과정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고대 근동 문헌들을 누구보다고 가장 정확하게 읽고 해석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 1988 가을 어느 날 고대근동학과가 있는 Semitic Museum 3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박물관 바닥은 전체가 대리석이어서, 걸을 때 마다 금강제화 구두가 걸을 때마다 따박따박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바닥이 고색창연한 회색으로 멋지게 닳아있었다. 그는 당시 게에즈Geez라고 불리는 고전 에티오피아어와 아카드어를 개설하였다. 게에즈 수강생은 세 명, 아카드어 수강생은 여섯명 뿐이었다. 당시 수학하던 동료들은 모두 고대근동학과가 있는 유수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아카드어 문법 수업에서 <함무라비 법전>과 <길가메시 서사시>를 우리와 함께 읽고 번역하고 질문하였다.
아카드어를 배우려는 학생은 기원전 18세기에 기록된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하는 쐐기문자와 그 당시 문법 소위 ‘고바빌로니아 문법’을 숙지해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하는 아카드는 가장 전형적인 아카드어 문법으로 고전 아카드어라고 불릴만하다. 예를들어 셈족어 명사에 등장하는 주격, 소유격, 목적격 어미인 –um, -im, -am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14세기 소위 바빌론제국을 멸망시킨 ‘카사이트’라는 민족의 구마사제인 신-레케-우닌니가 수메르시대부터 내려오던 길가메시에 관한 모든 자료를 망라하여 각 토판이 320-330행으로 이루어진 12개 토판문서로 편집하였다. 제12토판은 수메르 토판에 대한 번역으로 실제 내용은 제1토판에서 시작하여 제11토판에 끝난다.
아카어로 기록된 토판문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혹은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부터 3천4000년전에 기록된 단어의 의미를 오늘날 한국어나 영어로 일대일 대응하여 번역하는 시도는 기껏해야 오역이거나 반역이다. 하지만, 이 서사시는,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최초인류들의 염원과 희망이 담겨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30만년전에 등장하였고 현생인류의 문화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4만년전에 등장하였다면, 이 서사시는 길게는 30만년, 짧게는 4만년동안 인류가 축적한 지혜가 담겨있다.
길가메시는 인류가 구축한 최초의 도시인 우룩이란 도시의 왕이었다. 그는 군사적인 지도자이자 동시에 종교적인 지도자였다. 군사적인 지도자를 수메르어로는 ‘루갈𒈗’, 종교적인 지도자는 수메르어로 ‘엔𒂗’ 혹은 ‘엔시𒑐𒋼𒋛’라고 불렸다. 루갈 글자는 옆으로 누운 사람이 왕관을 쓴 모양이고 엔 글자는 높은 지위의 신이나 왕이 앉을 수 있는 왕좌를 형상화하였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제는 명성을 쫓던 군사적인 영웅 루갈 길가메시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적인 지도자인 엔 길가메시로 되는 통과의례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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