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8.(土曜日) “요가”
(신인의 탄생)
오늘 원정혜교수님을 만났다. 내가 원교수를 처음 만난 시기는 2000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 지인이 나에게 “인도만 갔다 오면, 고치에서 나온 나비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분이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만남을 주선하였다. 나는 후에 그녀가 인도를 수행을 위해 28번 다녀왔고, 대한민국에 요가라는 수련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결정적인 분이었다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그녀가 수행하고 있는 ‘이천 아쉬람, 명상이 숨 쉬는 곳’으로 운전해 갔다. 나는 그곳에서 원교수와 함께, 지난번 경주 요가인사이트를 주관하신 이승환대표를 함께 만나기로 했다.
아쉬람이란 단어는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남부 보르도 근처에 설립하여 많은 수행자들이 오는 플럼 빌리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스님께서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망명하신 후에, 이곳에서 고구마농장을 가꾸시던 조그만 농장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다. 후에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역에 가면 이곳에 가서 수행을 하고 싶다. 눈과 귀와 입을 막는 수행이다. 평정심을 찾아 유유자적하지는 훈련이 아니라, 시인 권태응의 말처럼, 타인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 자비를 아낌없이 베푸는 인간이다. 권태응의 시 ‘어느 날 눈을 감아보고는’가 얼마나 위트가 있는지!
“눈을 한참 감아 보고는
가깝한 장님을 생각해 보고,
귀를 한참 막아 보고는
답답한 귀머거릴 생각해 보고,
입을 한참 다물어 보고는
가엾은 벙어릴 생각해 보고.”
이 시에서 ‘한참’이란 부사가 반복되었다. 우리는 잠시에 중독되어 무엇이든 한참할수 없다. 아쉬람은 자기 수행을 통해, 타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려는 훈련장이다. 눈을 감아 외부의 자극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가깝한 장님의 처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귀를 막아 고요를 즐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답답한 귀머리길 생각해보는 것이다. 입을 다물에 침묵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가엾은 벙어리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제 연민을 기반한 행동이 없다면, 시끄럽게 울리는 꽹가리에 불가하다.
‘아쉬람’은 그런 마음을 수련하고 지향하는 장소다. ‘아쉬람’이란 산스크리트어 단어는 ‘자신을 극복하는 훈련을 위해 항상 정진하는’이란 의미다. 원교수의 이천 아쉬람은 ‘명상이 숨 쉬는 곳’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명상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안일한 놀이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일상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이천에 도착하여 구불구불한 구석진 곳에 인도 바라나시에나 있을 법한 아쉬람 눈앞에 등장하였다.
자동차를 입구에 주차하고 계단을 꽤 올라가니 가운데가 둥근 지붕으로 연결된 수련공간이 양옆에 나 있다. 그 안에서 장식된 소품 하나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분명 교수님의 구루인 스와미 라마께서 수제자인 원교수님께 직접 하사하신 물품같았다. 내가 왼편 수련장을 한참 둘러보는데, 저 밑에서 원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 그녀의 목소리에는 반가움, 환희, 감사, 놀라움이 섞여 있어, 듣는 이가,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인간이 각성시키는 소리다. 우리는 오른편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원교수님과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를 처음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의 요가 인연과 여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시 들음은 상대방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좋은 도구다. 우리가 담소를 나누는 동안 이승환대표가 왔다. 우리는 함께 아쉬람 밑에 마련된 원교수님 숙소로 내려갔다. 방과 화장실이 얼마나 잘 정돈되어있고 깨끗한지! 그녀의 평상시 삶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위해 과일과 야채로 구성된 음식을 마련되어있었다. 신은 이스라엘인들에겐 율법을, 그리스인들에겐 예술과 철학을, 중국인들에겐 질서와 정치를, 인도인들에겐 요가를 선물해 주었다.
요가는 인도라는 나라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 소위 프로토-인도 문명을 시작한 기원전 26세기에 등장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시대 인장에서 발견되었다. 후에 인도인들을 통해 계승 발전되었지만, 요가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준 신의 선물이다. 나는 두 분께 지 난 주, 부산 청사포 셰르파 요가원에서 경험한 기적을 들려주었다. 정말 요가는 우울증과 같은 현대병과 암과 같은 불치병도 극복시키는 심신 훈련이다. 나는 더불어 부천 태풍태권도장 아이들과 지난 3년 동안 영시를 통해 진행한 생명수업을 설명하였다. 이 아이들이 변모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들이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인간, 즉 신인이고 확신한다. 이 두 분과 함께 새로운 인간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좋겠다. 이천 아쉬람에서 명요가와 명상을 공부도 하고, 요가원에서 아이들과 영시를 암송하고. 오랜만에 이들과 신나게 웃었다.
사진
<이천 아쉬람 원정혜교수 공간에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