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6. (木曜日) 2023.11.17.(金曜日) “여정旅程”
이른 아침 가파른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고라니가 수천년전에 만든 오솔길이다. 그러다 멈춰섰다. 거인처럼 빽빽이 서 있는 전나무 사이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촘촘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땅에 강림한 것이다. 방해하는 나무들이 많이 오히려 빛이 기둥이 되어 야산에 떨어진 낙엽위에 내려앉았다. 이 기둥이, 언제나 나를 찾아왔지만, 오늘에야 이 기둥을 보았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오늘 해야 할 유일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인생은 여행旅行이 아니라 여정旅程이다. 여행은 자신의 고향이 아닌 곳으로 일정기간동안 갔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활동이지만, 여정은, 정해진 기일동안 그 사람이 완수해야할 일정을, 그곳에서 마쳐야한다. 여행은 갔다 돌아오는데 목적이 있다면, 여정의 목적은 임무완수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곳에, 인간으로, 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이곳에서 삶을 마치면 다시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지 않다. 시인 루미라면 자신이 돌아가야 할 영원한 세계가 있고, 지구를 동네 선술집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여정은 기간이 정해져있다. 그 동안 자신의 최선을 경주해야한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는 50년, 다른 이에게는 60년이란 일생을 선물로 주어졌다. 잠시 노닐다 가는 여행과는 달리, 여정은 반드시 해야 일이 있다. 교육이란 이 고유한 일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1963년, 29세에 처음으로 ‘No Voyage and Other Poems’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이 시집을 굳이 번역하지면 ‘여행 아님 그리고 다른 시들’이다. ‘보야쥐’Voyage 라는 단어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통해 영어 어휘가 되었다. 이 단어는 라틴어 ‘비아티쿰’viaticum에서 유래했는데, 여행을 하기 위한 ‘숙소’ 혹은 ‘음식’과 같은 부대시설을 의미한다. 프랑스어 ‘봉 보야쥐’Bon Voyage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멋진 장소에서 편히 쉬다오라는 덕담이다.
올리버는 이 시집에서 ‘보야쥐’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시를 썼다. ‘저니’Journey다. ‘저니’는 여정이다. 인생은 여정으로, 싫으나 좋으나,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본을 뽑아야한다. 달리 돌아갈 고향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가 바로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기 때문이다. 여정은 하루 안에 결정난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한다, 다음은 올리버의 <여정>이란 시다.
Journey/여정旅程 (1963)
Mary Oliver
One day you finally knew
what you had to do, and began,
though the voices around you
kept shouting
their bad advice-
though the whole house
began to tremble
and you felt the old tug
at your ankles.
“Mend my life!”
each voice cried.
어느 날, 당신은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그리고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둘러싼 목소리들이
그들의 알량한 충고들로
계속 소리를 지를지라도,
온 집안을 들썩거리고
오래된 것들이 발목을 잡고,
“내 삶을 수리해!”라고
목소리들이 저마다 울부짖습니다.
(해설)
이 시의 첫 단어가, ‘어느 날One day’이다. 어느 날은 특별한 날이 될 수도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죽은 날이 될 수도 있다. 그 날의 질을 결정하는 자는 나다. 그 날에, 그 중요한 날에, 마침내finally,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에서 올 수밖에 없다. 오래된 자아를 깰 때, 그 소중한 과거라는 그릇을 깰 때, 주어지기에 ‘깨우침’이다. 내면의 미세한 깨우침을 방해하는 소음들이 있다. 우리 주위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생경험이 많다고, 자신의 찬란한 경력을 들먹이며 소리친다. 그런 소리는 대개 나쁜 충고들이다. 미디어에 현자를 자청하며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철지난 처방전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형제-자매가, 선생이 집안을 들썩일 정도로 진심으로 조언해 주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나 어울리는 삶의 지혜를 전달해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육’이란 제도를 통해 이런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에 떤다. 그것은 영웅 아킬레우스를 넘어뜨린 파리스의 화살이며,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는 야곱의 콤플렉스다. 당신의 발목을 자꾸 잡아당겨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게 만드는 군더더기다.
But you didn’t stop.
You knew what you had to do,
though the wind pried
with its stiff fingers
at the very foundations,
though their melancholy
was terrible.
당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억센 손가락으로
당신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파고들지라도,
그들의 슬픔이
끔찍하게 될지라도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설)
외부에 흔들이지 않는 마음, 자신이 복종해야할 유일한 대상은 자신의 양심이라는 깨달음으로, 당신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예”할 때, 당신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들의 시기, 질투, 방해공작이 얼마나 심했던지, 당신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어 당신의 토대가 파괴될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당신에게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 우울증이 찾아와 죽음의 문턱까지 도달했지만, 당신에겐 여정에서 고유한 임무, 한 가지가 있기에 계속 정진한다.
It was already late
enough, and a wild night,
and the road full of fallen
branches and stones.
But little by little,
as you left their voices behind,
the stars began to burn
through the sheets of clouds,
and there was a new voice
which you slowly
recognized as your own,
that kept you company
as you strode deeper and deeper
into the world,
determined to do
the only thing you could do-
determined to save
the only life you could save.
이미 너무 늦은
황량한 밤,
부러진 가지들과 돌들이
길 위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당신이 그들의 목소리에서 멀어지며,
구름 사이로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안에 당신 것이라고 서서히 인식된
새로운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고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하기로 결심한 후에,
당신이 세상에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갈 때,
당신과 동반했던 새로운 목소리였다.
(해설)
인생의 밤이 찾아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의 화사가 아니라 만물이 숨을 죽이는 늦가을의 황량이 당신을 움츠리게 만들 수도 있다. 주위엔 부러진 가지들과 버려진 돌들뿐이다. 이 나무와 돌을 가지고 무엇을 건축할 수 있을까? 구름에 가려 아무런 별도 등장하지 않지만, 한참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참고 기다렸다. 이윽고 구름 사이에 별들이 등장한다. 그 별은, 어두운 구름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구름을 응시하고 인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마침내 저 별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안에서 침묵의 소리가 나왔다. “당신은 자신에게 별입니다!” 그 별이 말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거침없이 행하십시오! 당신에게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여정에서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세상 밖이 아니라 안으로 더욱더 깊숙이 들어가 이 새로운 목소리에 복종하십시오.
사진
<전나무사이로 강림하는 햇빛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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