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4 (火曜日) “A Tear and A Smile/눈물과 미소”
(칼릴 지브란 시)
이번 주 일요일(11월 18일) 오전10시부터 12시까지 태풍태권도 아이들과 줌으로 생명수업을 진행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난 번 수업(11월 5일)에 공부한 두 시의 암송으로 시작환다. 우리는 이 시는 메리 올리버는 1963년, 28세에 처음 출간한 시집인 ‘No Voyage and Other Poems’에 쓴 ‘여정’Journey라는 시를 공부했다. 올리버는 시인이 되기를 결심했고, 그 험난한 삶을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이 시의 번역만 올려본다:
“어느 날, 당신은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지. 그리고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둘러싼 목소리들이
그들의 알량한 충고들로
계속 소리를 지를지라도,
온 집안을 들썩거리고
오래된 것들이 발목을 잡고,
“내 삶이나 수리해!”라고
목소리들이 저마다 울부짖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멈추지 않았고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이 억센 손가락으로
당신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파고들지라도,
그들의 슬픔이
끔찍하게 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아, 이미 너무 늦은
황량한 밤,
부러진 가지들과 돌들이
길위에 가득하고,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당신이 그들의 목소리에서 멀어지며
구름 사이로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에당신 것이라고 서서히 인식된
새로운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할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고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하기로 결심한 후에,
당신이 세상에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갈 때,
당신과 동반했던 새로운 목소리였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수업에서 이 시와 함께 제1편 소요유逍遙遊 제1장 “화이위조化而爲鳥”에 등장하는 변모를 공부하였다. 다음은 한문, 한글번역, 영어번역이다:
北冥有魚(북명유어)하니 其名爲鯤(기명위곤)이다
鯤之大(곤지대)는 不知其幾千里也(부지기기천리야)다
化而爲鳥(화이위조)하니 其名爲鵬(기명위붕)이다.
鵬之背(붕지배)는 不知其幾千里也(부지기기천리야)다
怒而飛(노이비)하면 其翼若垂天之雲(기익약수천지운)한다.
是鳥也(시조야)는 海運則將徙於南冥(해운즉장사어남명)이다.
南冥者(남명자)는 天池也(천지야)다.
“저 북쪽 끝에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이름은 ‘물고기 알’ 혹은 알에서 막 자란 작은 물고기’란 의미의 ‘곤鯤’이었다.
곤의 크기는 몇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이 물고기가 새가 되었다. 그 이름은 ‘붕鵬’이었다.
붕의 크기는 몇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여 대풍이 일면, 그것을 타고 남쪽 끝 검푸른 바다로 날아 갈 것이다.
남쪽 끝 검푸른 바다는 하늘의 연못이다.”
“In the northern dark sea, there is a fish and his name is Kun.
The Kun is so huge I don’t know how many thousand li he measures.
He changes and becomes a bird whose name is Peng.
The back of the Peng measures I don’t know how many thousand li across,
and when he rises up and flies off,
his wings are like clouds all over the sky.
When the seabegins to move, this bird sets off
for the southern dark sea, which is the Lake of Heaven.“
아이들이 이 두시를 암송한 후에, 나는 다음 두 시를 함께 공부할 것이다. 하나는 언제나 나를 감동시켜, 요즘 내 삶에 침투해 들어온, 레바논 시인인 칼릴 지브란의 시 ‘눈물과 미소’다. 다른 한 시는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동을 선물로 주는,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기도하기’다. 여러분도 이 시를 읽고 암송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길 바란다.
오늘은 지브란의 시를 소개한다. 자연은 하나인데, 인간은 인위적으로 둘로 가른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남과 북, 동양과 서양, 남과 여, 부모와 자식, 처음과 나중, 위와 아래. 둘로 가르는 행위는 하나로 태어난 우리는 자신이 타인과 하나, 우리가 저들과 하나라는 사실을 인생의 우여곡절을 통해 서서히 깨닫는다.
내가 지금 듣는 이 물은 하염없이 흘러가 바다가 되고, 그 곳에서 하늘로 증발하여 잠시 구름안에서 머물다, 우주를 관장하는 바람의 신 엔릴이 물을 지면에 뿌릴 것이다.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은, 물을 머금은 눈물이 시간이 지나면 흐믓한 미소가 된다고 노래한다.
A Tear and A Smile/눈물과 미소
칼릴 지브란
I would not exchange the sorrows of my heart
For the joys of the multitude.
And I would not have the tears that sadness makes
To flow from my every part turn into laughter.
저는 심장을 애이는 슬픔을
대중의 기쁨과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슬픔이 제 모든 부분에서 흘러내리도록 만드는
눈물이 실없는 웃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I would that my life remain a tear and a smile.
A tear to purify my heart and give me understanding
Of life's secrets and hidden things.
A smile to draw me nigh to the sons of my kind and
To be a symbol of my glorification of the gods.
저는 제 삶이 눈물과 미소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심장을 정화하고
삶의 비밀과 감추인 것들을 이해하는 눈물.
저는 저와 같은 아들들에게 접근하여
제 방식으로 신에게 영광을 올리는 상징인 미소.
A tear to unite me with those of broken heart;
A smile to be a sign of my joy in existence.
I would rather that I died in yearning and longing
than that I live Weary and despairing.
아픈 심장을 지닌 자들과 저를 하나게 되게 만드는 눈물,
제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표시인 미소.
저는 차라리 지치고 절망하며 사는 것보다,
그리워하고 바라다 죽겠습니다.
I want the hunger for love and beauty to be in the
Depths of my spirit, for I have seen those who are
Satisfied the most wretched of people.
I have heard the sigh of those in yearning and Longing,
and it is sweeter than the sweetest melody.
저는 제 영혼의 깊은 곳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에
굶주리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삶에 만족한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란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워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가장 달콤한 선율보다 달콤합니다.
With evening's coming the flower folds her petals
And sleeps, embracing her longing.
At morning's approach she opens her lips to meet
The sun's kiss.
The life of a flower is longing and fulfilment.
A tear and a smile.
저녁이 다가오면, 꽃은 자신의 그리움을 껴안고,
자신의 잎을 접고 잠에 듭니다.
아침이 다가오면, 그녀는 잎을 열고
태양과 입을 맞춥니다.
꽃의 삶은 바램과 성취입니다.
눈물과 미소입니다.
The waters of the sea become vapor and rise and come
Together and are a cloud.
And the cloud floats above the hills and valleys
Until it meets the gentle breeze, then falls weeping
To the fields and joins with brooks and rivers
to Return to the sea, its home.
The life of clouds is a parting and a meeting.
A tear and a smile.
바다의 물들은 수증기가 되어 올라
함께 모여 구름이 됩니다.
그리고 구름은 친절한 산들바람을 만날 때까지
언덕과 계곡 위에 둥둥 떠있습니다.
그런 후 들판 위로 울면서 떨어져 시냇물과 강물과 합류하여
바다로 돌아옵니다. 바다가 고향입니다.
구름의 삶은 떠남과 만남입니다.
눈물과 미소입니다.
And so does the spirit become separated from
The greater spirit to move in the world of matter
And pass as a cloud over t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lains of joy to meet the breeze of death
And return whence it came.
마찬가지로 영혼도 위대한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물질세계로 움직입니다.
구름으로 슬픔의 산을 지나고
기쁨의 평원을 지나 죽음의 산들바람을 만나
자신이 온곳으로 돌아갑니다.
To the ocean of Love and Beauty-to God.
사랑과 아름다움이란 바라로, 신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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