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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2. (日曜日) “여명餘命: 부산 청사포 셰르파 요가원 원장님 이야기”

2023.11.12. (日曜日) “여명餘命: 부산 청사포 셰르파 요가원 원장님 이야기”

어제 점심께, 부산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아직도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아직도 모두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10시까지, 5시간동안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강의을 감행한 이유도 있지만, 거기에서 만나는 도반들의 삶에 대한 간절과 정성때문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은 부산 해운데 청사포에 있는 ‘셰르파 요가원’원장 이현진때문에 일어났다.

(https://instagram.com/sherpayoga_sherpa/

https://m.blog.naver.com/sotongyoga)

나는 이원장을 지난 9월 24일 경주에서 진행한 ‘요가인사이트’라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강연 후, 남다른 아우라를 지닌 한 분이 다가와 “우리가 교수님 책으로 새벽마다 수련하고 있어요!”라고 말을 건냈다. 내 저서를 가지고, 새벽마다 수련하고 있나니! 책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저도 그곳에 가서 수련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 후 거의 한 달이 지난 시점, 10월 17일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자신이 부산에서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진 원장이며, 정말로 부산에 와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느냐는 요청하는 문자였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고, 한 시간 동안 요가, 책, 수련, 암, 극복, 요가수트라, 새벽명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화를 마친 후, 이 분은 요가를 통해, 오래된 자아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아를 매일 매일 확인하는 행복한 분이라고 확신하였다. 나는 흥분하여 10주간 깨우침 프로그램을 보냈지만, 이 제안은 섣불렀다,내 이기심에서 우러난 욕심이었다. 우선 한번 만나, 서로 선을 보는 것이, 소중한 인연을 맺기 위한 예의다.

원장님은 11분이 매일 새벽 5시에 시작하여 7시까지 요가를 수련해왔다고 말씀하신다. 이 도반들은 10년째 수련을 진행해 오신 분들이며, 새벽수련을 거의 500일째 진행해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성이자 간절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요가와 수영을 통해 ‘암들’을 극복하였고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을 요가를 통해 극복했다니! 베드로가 성진 문 앞에 앉은 앉은뱅이보고 ‘일어나 걸으나!’라고 명령하여,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남자가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한 기적과 버금가는 경이로운 일이다. 자신이 수련을 통해 그런 치유를 매일 경험하고, 그 힘으로 현대병을 앓고 있는 11명이, 모두 건강한 삶,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 그녀의 말이 사실인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원장님께 11월 12일 새벽 수련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11분 수련자들은 나에게 원장님을 통해 다양한 질문들을 보내왔다. 나는 이들에게 현재 집필 중인 <요가수트라 II: 수련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이전에 김광선대표님이 세브란스 무균실에서 암치료를 받으면서 <신의 위대한 질문>을 읽고 살고 싶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원장님이 내 책을 통해, 새벽마다 도반들과 수련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싶었다.

내가 거주하는 가평에서 부산 청사포까지 가는 길은 멀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평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노선을 정해야 했다. 어제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내일 새벽강의가 하루 먼저 내려가 일박하야했다. 나는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일정일 잡았다: 가평집-청평역(ITX청춘열차)-용산역-서울역(KTX)-부산역-청사포 셰르파 요가원. 집에서 차를 몰고 청평역으로 가서, 주차하고 그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며칠 전 청평역에서 출발하는 ITX 청춘열차편을 알아보니 주말이라 오전 7시 34분을 예약했다. 오후 1시 17분에 떠나는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한 유일한 차편이다. 부산 가는데 길거리에서 모든 시간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경로다.

나는 마음을 바꿔 어제 아침 콜택시를 불러 서울역을 달렸다.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잡고 넉넉하게 오전 10시에 택시를 탔다. 주말, 이 시간에 서울로 가는 내부순환도로 길은 꽉 막혔다. 겨우 광화문으로 진입하였지만, 오늘따라 내 여행길을 방해하느라, 양대노총이 데모로 길일 막아섰고 한 목사가 주도하는 태극기 부대가 성조기를 흔들며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택시가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였다. 3시간 걸려 서울역에 겨우 도착하였다.

내가 탄 KTX는 지연되어 원래 시간보다 20분 늦은 4시 20분경 도착하였다. 원장님은 “출구가 하나에요. 제가 교수님을 못 알아볼 일은 없겠죠!”라고 전화가 왔다. 나는 “검은색 롱코트와 가방을 들었어요. 좀 있다 뵈요!” 그리고 나는 다소 무거운 가방을 들고 플랫폼에서 나와 에스켈레이터에 올라탔다. 주말이라 여행자들이 많다.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라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가방에 많은 것을 담는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 안에 랩톱 컴퓨터, 한 줄도 읽지 못한 요가관련 책 5권, 세면도구, 기타 잠옷 등으로 가방이 터질 지경이다. 방향감각이 없는 나는, 원장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전진하여 부산역 안에 있는 부산어묵 직판장을 지나, 부산역 앞 광장까지 내려왔다. “어디 계세요?”라며 전화를 거니 “길이 어긋났나봐요. 교수님이 현재 계신 곳으로 제가 갈께요!”

저 멀리서 하늘로 날라갈것만 같은 분이 내려오셨다. 얼굴을 보니, 두 달 전 경주에서 반갑게 인사한 분이다. 우리는 다시 부산역으로 올라가 주차장 쪽으로 갔다. 원장님 남편분인 이정원 선생님이 차를 몰고 직접 나오셨다. 우리 세 명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선생님이 원장님과 연예 시절에 첫 번째 선물이 <심연>이었단다! 그러니 내 책이 두 분의 인연을 놓은 작은 오작교 역할을 한 셈이다. 우리는 부산역에서 해운대 청사포靑沙浦로 달렸다. 청사포는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다. 푸른 모래라는 뜻으로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동해의 남쪽 끝과 남해의 동쪽 끝에 있어, 옛날부터 물고기가 풍부한 곳이다. 바다가 보는 멋진 호텔이 짐을 놓고 1층에 있는 ‘생어거스틴’이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남편이 부인이 주선한 강의에 직접 운전까지 해주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두 분은 특별한 분이란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식당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타이와 베트남 요지 전문점이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려고 다음과 같이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식당 이름은 서구적인데, 음식은 동양식이라 재미있어요. 어거스틴이란 4세기말 성인은 원래 세속적인 사람으로 당시 상권을 잡고 있었던 페르시아 상인 마니교도들의 힘으로 밀라노에 있는 대학의 수사학교수였어요. 무료한 날을 보내다, 친구들과 근처 빌라에 가서 이집트 사막의 수사들에 관한 책을 읽다, 깨달음을 얻어,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만들어졌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톨레 레게‘tolle lege라는 라턴어 문장을 듣죠. 어거스틴은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닫고 이 문장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샘솟듯 올라온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죠.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바로 그 고요한 양심의 소리에요. ’톨레‘는 군더더기를 다 치우고 감히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한 가지를 짊어지라는 명령이요. 고속도로에 톨게이트tollgate가 있잖아요. 같은 어원이죠. 행복한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을 지불해야 해요. 그런 후 ’레게‘할 수 있어요. ’레게‘는 흔히 ’읽다‘라고 해석되요. 무함마드로 깨달음을 얻을 때, 처음으로 아랍아로 ’이크라 비스미 알리히‘ iqra bismil lllahi라는 말을 들었죠. 번역하지면 ’신의 이름으로 읽어라!‘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많은 책들중에 자신이 선정하는 한 권을 선별選別한다는 의미에요. 선별이 행복이고 축복이에요.”

이선생님과 원장님은, 나의 절제할 줄 모르는 과도한 잡담에도 귀를 기울려주셨다. 고맙다. 원장님이 잠시 나간 사이에 남편에게 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선생이 말했다. “칠년되었어요. 아내가 아파 집안에 반대가 많아 4년 전에야 승낙을 얻고 정식 결혼했어요.” 아, 이분은 정말 원장님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요가를 지속할 수 있도록 청사포에 요가원와 다른 곳에 요가원을 마련했어요.” 이 말을 마치자 원장님이 자리에 오셨다. 내가 원장님의 과거를 잘 몰라 물었다. 언제부터 요가원을 운영하셨는지. 원장님은 덤덤히 말했다. “요가원을 운영하지는 10년이 넘었어요. 그러던 중 3종류의 암이 저를 공격했죠: 갑상선, 유방, 림프. 서울 삼성병원에서 림프암 수술을 하면서 여명餘命을 준비하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고, 요가 새벽 수련을 통해 암을 극복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도반들과 함께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요가수련한지 수년 되었습니다.”

’여명餘命‘이란 단어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내가 즐겨 읽는 니체의 책 <여명黎明>인가? 원장님의 여명은 말기 암환자에게 죽음을 준비하라는 기간을 의미하는 ’나머지 생명‘이란 의미였다. 나는 하루를 인생의 초보자처럼 살겠다고 말을 하고 글을 써왔지만, 원장님을 실제로 매일 매일 여생을 살고 있었다. 엄청난 망치가 머리를 강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새벽 4시 30분에 호텔로비에서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는 새벽 4시에 모닝콜을 프론트데스크에 부탁하고 부산 앞바다를 보며 잠에 들었다. 요가 수련생들을 본다는 생각해 평소보다 많은 굽혀펴기와 다리들기를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였다. 좀 전에 잠에 든 같은데, 벌써 4시라고 전화가 울렸다.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요가훈련복 위에 코트를 걸치고, 4시 30분에 로비로 내려갔다, 원장님만 올줄 알았는데, 이선생님이 직접 차를 몰고 오셨다. 원장님이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놀란 모양이다. “남편이 한 번도 이 시간에 동행한 적이 없는데, 오늘 운전해 주네요!” 행복에 겨운 목소리다. 이선생인 경상도 사내처럼 표정이 없다. 겉표정을 속표정으로 깊이하는 분인 것 같다.

우리가 차로 5분거리인 요가원으로 가는 어둔 여명 길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나도 다음엔 새벽에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원에 도착하였다. 2층에 마련된 요가원은 광활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바다 위 공간이다. 수련 중에 저 멀리서 태양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내가 아침을 사과, 당근, 고구마로 해결한다고 말한 것을 듣고, 누군가 지퍼백에 아침을 준비해 놓았다. 짙은 고동색 마루로 장식된 요가원 현관을 지나, 옅은 베이지 색 마루가 가지런히 깔렸다. 그 위에 왼편으로 요가 메트가 다섯 개 깔렸다. 밖은 아직 밤이다. 5시가 다가오자 수련자들이 오면서 각자 메트를 깔았다. 앞쪽에 9개 뒤쪽에 3개 깔렸다. 오늘은 원장님도 앞쪽 정 가운데 좌정하고 이선생님을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며 수련을 시작하였다.

나는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강의 마스코트인 원숭이 3형제 조각상을 옆에 놓았다. 수련자들이 좌정하였다. 이들은 모두 <심연> <수련> <정적> <승화> <인간의 위대한 여정> <베철현의 위대한 리더> <요가수트라 강독 I: 삼매품>을 메트 오른편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 옆에는 내가 오늘 강연할 내년에 출간된 <요가수트라 강독 II:수련품> 초고가 담긴 베이지색 서류봉투가 있었다. 놀랍게도, 책들이 모두 손을 많이 타 부풀어 있었고 인텍스 스틱커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책이 출간되면, 그 책은 저자 것이 아니라, 독자 것이 된다는데, 그 엄연한 사실을 처음 확인하였다. 이 책을 보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속담에 딱 적용되는 경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정신 차려서 책을 써야겠다고 잠시 다짐했다.

내가 강연을 시작하자 어디선가에서 알람 소리가 울린다. 순간 누군가 수련하는데 알람을 끄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그 알람소리는 프론트 데스크에 있는 내 가방 속 핸드폰 소리였다. 태앙은 바다 밑에서 여명을 밝히고 있는 경계의 시간인 새벽 5시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심매품> 요약, <수련품> 1-2행, 루미 시 Two kinds of Intelligence; 메리 올리버 시 Wild Geese; 칼릴 지브란 시 Pain. 내가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원장님을 비롯한 수련자들이 완벽한 호흡 자세로 앉았다. 이들의 아사나는 내 자세를 수정할 정도로 강력했고 친절했다. 강의 도중에 저 멀리서 바다를 뚫고 해가 올라왔으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의 몰입은 대단하여, 태양이 내 뒤로 올라오는 줄로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감히 우리는 삼매三昧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강의를 마치니 거의 9시가 되었다. 나는 생전 처음 가부좌 자세로 4시간을 강의하였다. 내가 그렇게 요동하지 않고 강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원장님을 비롯한 수련자들이 미동微動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쉬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삶에 대한, 요가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경청과 몰입으로 진행하였다. 질의-응답시간까지 마치니 오전 10시였다. 일어서니 다리가 뻐근했다.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근처 향유제 엄마밥상에서 식사를 즐겼다.

원장님, 이선생님, 나는 12시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부산역으로 달렸다. 다음에 온다면, 여유롭게 저녁 기차를 타야겠다. 기차에 오르니, 천근만근된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5시간 강의가 나의 육체, 정신, 영혼을 소진하였을 것이다.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떠오르는 태양을 조용히 관찰하고 싶다. 아니 오늘을 여명餘命처럼 사는 분들의 기운을 받고 싶다.

사진

<청사포 세르파 요가원>


강의전; 2. 강의중; 3. 강의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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