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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8.(日曜日) “침묵沈默”(<욥기> 42장)

2023.10.8.(日曜日) “침묵沈默”(<욥기> 42장)

나는 1년전 도반들과 함께 더코라에서 <욥기>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매주 일요일 6-8시까지 <욥기>를 히브리어 원전에서 번역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를 힘써왔다. 더코라의 영상팀은 이 수업내용을 영상에 정성스럽게 담아 유튜브에 올려왔다. 앞으로 두 번, 오늘과 다음 주 일요일(15일)에 <욥기>의 마지막 고백에 대한 수업을 올릴 예정이다. 욥은 전통적인 인과응보 신앙을 따르는 세 친구과 엘리후와 대답하면서, 자기 삶의 결정적인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우주와 자연의 운행은 그 원칙을 알 수 없는 신비다. 과학은 언제나 그 신비를 조금씩 알아가는 영원한 아이다. 세월이 지나면, 자신이 발견한 지식이 허식이란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신은 욥이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나 푹풍 가운데 등장하여, “네가 세상에 기초를 놓았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라고 묻는다. 그 때 욥은 두 가지로 신에게 대답한다. 바로 침묵과 각성이다. 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보십시오. 저는 보잘 것없는 자입니다.

제가 무어라고 당신에게 답하겠습니까?

제 손을 제 입위에 놓습니다.”

הֵ֣ן קַ֭לֹּתִי מָ֣ה אֲשִׁיבֶ֑ךָּ יָ֝דִ֗י שַׂ֣מְתִּי לְמֹו־פִֽי׃

욥은 신이 창조하고 운행하고 있는 천체, 산, 바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물들의 작동을 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는다. 깨달음은 겸허謙虛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때는 아는척하며 말했지만, 다시는 말대꾸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다시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אַחַ֣ת דִּ֭בַּרְתִּי וְלֹ֣א אֶֽעֱנֶ֑ה וּ֝שְׁתַּ֗יִם וְלֹ֣א אֹוסִֽיף׃ פ

각성한 자의 표식은 침묵沈默이다. 욥은 소크라테스처럼, 주위를 돌려봐도, 아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오랜 침묵을 통해, 사람과 사물에 대해 깨달은 바를, 시적인 언어로 간결하고 강력하게 말할 뿐이다. 그는 스스로 다시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욥은, 이 때 겸허와 각성의 표시로 손을 입에 갖다 덴다. 손을 입에 가져가 입을 막는 행위는 오리엔트 세계에서 신하가 왕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절이다. 인류최초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가 자신이 정복한 23개 속국의 왕들의 알현謁見을 받는 장면을 새긴 부조물 둘이 있다. 하나는 제국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 궁전에 있고 다른 하나는 테헤란 국립고고학발물관에 전시 중이다,

다리우스 대왕은 제단 위 왕좌에 앉아있다. 왼손엔 평정을 상징하는 연꽃을 들고 있고 오른 손엔 신하들이 알현하는 땅을 누를 정도로 긴 왕홀을 들고 있다. 그의 두 발조차 왕중왕답게 발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다리우스 대왕 뒤로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가 서 있다. 선친과 마찬가지로 왼손엔 연꽃을 들고 있다. 오른손은 존경의 표시로 선친의 머리 쪽으로 손을 향하게 들었다. 이들 뒤로 신하들이 제단아래 배치되어있다.

다리우스 대왕은 먼나라에서 온 사신의 알현을 받고 있다. 대왕과 사신 사이에는 불을 지펴 향기를 내른 불제단 두 개가 놓여있다. 불 제단은 이들인 아후라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중국으로 들어가 변화무쌍한 불을 섬긴다하여 배화교拜火敎라고 불렸다. 사신이 그를 궁궐 안으로 인도한 긴 창을 들고 있는 페르시아 병사들 앞에 서 있다. 상체를 앞으로 약간 굽히고 눈은 다리우스 왕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왼손으로 지팡이를 사선으로 들고 있다. 그는 오른 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 후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입술 앞에 두었다. 사신을 신과 같은 왕중왕 앞에 나와 침묵을 유지하고 경청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 이 모습을 그리스어로 프로스퀴네시스Proskynesisπροσκύνησις라고 부른다. 욥도 이 사신처럼 자신의 손을 입에게 가지런히 포개 놓고 말하지 않겠다고 표시한다. 욥은 인생의 고통을 통해 침묵을 배운 것이다.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기에, 이제부터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침묵이다. 침묵은 고통이 낳은 지혜의 선물이다.

<사진과 동영상>

프로스퀴네시스

입에 손을 갖다 대며 다리우스를 알현하는 사신

기원전 6세기, 페르폴리스 아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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