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8.(土曜日) “영롱玲瓏”
오늘은 다시 뒷마당으로 이어진 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반려견들도 이 가파른 언덕이 힘들어, 어제는 거부하더니 오늘은 마음을 바꿨나보다. 야산은 무덤이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떨어뜨려 이미 짙은 갈색으로 변한 솔잎들, 밤송이들, 낙엽으로 가득 차 있다. 온 땅은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서걱서걱 내주는 기분 좋은 무덤이다. 나는 이들의 무덤 위를 걷고, 꼭대기에 올라 안개 낀 숲을 보며, 상상하고 생각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이 낙엽들은 자신이 이런 삶을 이렇게 살았다고 묘비명도 남기지 않았다. 노자는 <도덕경> 76장에서 사람과 초목은 죽어서 마르고 딱딱하다고 말했는데 (人之生也柔弱,其死也堅強, 萬物草木之生也柔脆,其死也枯槁/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우리가 밟는 낙엽들은, 노자가 따돌린다. 어디에선가 몰려온 안개 덕택에 한없이 부드럽고 약하다.
우리가 초목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매일 부활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는 새들이 앉아 노래하고, 자신의 운명을 아는 초목은,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인다. 우리가 들어온 이곳은 분명 에덴동산임이 틀림없다. ‘에덴동산’은 사실 눈으로 드러난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 매일 들어가 의례를 행하는 구별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란인들은 에덴동산을 이 개념으로 처음으로 고안해 낸 자들이다. 그들은 지상의 구별된 장소를 이들이 사용하던 아베스타어로 ‘파이리-다에자’pairi-daeza라고 불렀다. 이 단어를 지역하자면, ‘사방이 담으로 구별된 장소’란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이 파사르가데에서 키루스 대왕이 꾸민 ‘파이리다에짜’를 그리스어로 음역하여 ‘파라디소스’paradisos, 즉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우리는 한참 언덕을 올라갔다. 비를 머금한 낙엽위를 걷기가 쉽지 않다. 샤갈과 벨라는 목줄을 채워 나와 함께 올라가고, 예쁜이는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한참 올라 야산 정상에 도달하였다. 안개 낀 전나무 숲이 신비하다. 벨라가 오르던 길을 멈추고 안개 낀 숲을 쳐다 본다. 우리가 이제 집으로 내려오던 참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영물이 있었다. 너무 흔해 항상 지나친 현상이다. 짙은 고동색 가지이지만, 아침 햇살에 짙은 남색빛이 나는 가지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영롱한 물방울이다. 카메라로 촬영을 시도했지만, 사진에서는 물방울이 뿌옇게 나왔다.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추어야 하지만, 이 물방울은 영롱하게 가지에 매달려 있다. 습기가 가지를 타고 내려와 모이고 모여 물이 되었지만, 아직 떨어지지 않는다. 저 물방울이 영롱한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있는 그 자리에 서 있으려는 응집凝集력 때문이다. 응집이란, 응집이 불가능한 상황에 일어나는 기적이다. 이 물방울은 지구의 원칙인 중력을 거슬려, 나뭇가지 아래에서 나의 시건을 사로잡는다. 저 멀리서 찾아오는 아침 햇살의 광선을 자신의 방울 위에 담고 반짝거린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영롱한 물방울이 처량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은 금방 사라지기에 언제나 아쉽다.
내일 부천에 있는 태풍태권도 친구들에게 영롱한 물방울과 숲에 관한 시를 알려주어야겠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American Primitive(1983)에 ‘블랙워터 숲에서In Blackwater Woods’라는 시를 실었다. 그녀가 1960년대 살던 메샤추세츠 케이프곶에 모래가 퇴적하여 생긴 연목 이름이 ‘블랙워터 폰드’였다. 아마도 그 근처, 자신이 산책하던 숲을 ‘블랙워터 숲’이란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순간을 사랑하라는 감동적인 시다.
In Blackwater Woods
By Mary Oliver
블랙워터 숲에서
메리 올리버
Look, the trees
are turning
their own bodies
into pillars
of light,
보십시오! 나무들이
자신의 몸을 돌려
빛의 기둥으로 만듭니다.
are giving off the rich
fragrance of cinnamon
and fulfillment,
짙은 계피향을 내며,
자기 성취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the long tapers
of cattails
are bursting and floating away over
the blue shoulders
of the ponds,
부들개지들의
긴 줄기들은 불타서 사라지고
날라올라
연못의 푸른 가장자리 위로,
and every pond,
no matter what its
name is, is
nameless now.
그리고 모든 연못이
그 이름이 무엇이든
지금은 이름이 없어졌습니다.
Every year
everything
I have ever learned
in my lifetime
leads back to this:
매년 모든 것이
내가 일생동안 배운 것이
이것으로 돌아옵니다.
the fires
and the black river of loss
whose other side
is salvation,
불과
상실의 검은 강으로
다른 쪽은 구원입니다.
whose meaning
none of us will ever know.
그 의미를
우리들중 아무도 결코 알수 없습니다.
To live in this world
you must be able
to do three things: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를 알야야합니다.
to love what is mortal;
to hold it
against your bones knowing
your own life depends on it;
and, when the time comes to let it
go,
to let it go.
죽을 운명의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당신 뼛속 깊이
간직하고,
당신의 삶이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and, when the time comes to let it
go,
to let it go.
그리고 때가 되면,
그것을 놓아야할 때가 되면,
놓아 주어야합니다.
사진
<야산 영롱한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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