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日曜日) “흡족洽足”
10월이 시작되었다. 지난 일요일 경주에서 한 강연을 상기해보았다. 특히 <요가수트라: 삼매품> 33행의 마지막 단어 ‘프라나사남’이 흡족으로 번역되야한다고 깨달았다. 요가 구루 원정혜교수님의 초청을 받아, 지난주 일요일(9월 24일) 경주로 내려갔다. 내가 거주하는 가평에서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경주화백컨벤션센터까지 380km거리다. 그 전날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영성대학을 개설하여 첫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24일 12시에 강의가 잡혀, 자기운전을 하고 아침에 떠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아침 6시에 출발해도, 12시강의에 도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평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청춘열차를 타고, 그 후에 용산역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KTX편을 알아보았지만, 도저히 시간을 마출수가 없었다. 청평-용산 첫 열차가 오전 7시 10이고, 그 후에 용산-경주 KTX 9시 열차를 타고, 경주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거의 12시이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나는 시골생활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에게 부탁했다. “제가 일요일 12시까지 경주에 내려가야 해요. 송구스러운 부탁인데, 아침일찍 운전해서 함께 경주에 내려가 줄수 있나요?” 그가 대답했다. “경주까지 적어도 4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운전할 동안 눈좀 붙이세요. 일요일 5시반에 댁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그 날 아침, 그분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고 가평에서 경주로 내려갔다. 그 전날 내린 비로, 안개가 자욱한 명산들을 지나갔다. 가평의 운악산에서 시작하여 경상북도 소백산을 지나 11시경에 경주에 도착하였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100명정도가 앉아있었다. 요가수련자답게 편안하고 곳곳이 앉아 있었다. 첫 번쩨 강의는 동국대 김성철교수가 ‘조신調身, 조식, 조심: 요가와 불교의 공동점과 차이점’이란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교수님의 강의가 시간가는줄 모르게 재미있었다. 그는 강의를 마치며, 요가는 정성스런 자아에 대한 헌신이고, 불교는 무아를 지향하는 체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기원전 26세기 시대로 추정되는,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소위 ‘파슈파티’인장과 신라시대 조각작품 ‘반가사유상’으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1920년대 영국 고고학자들은 파키스탄 신드 라르카나에서 요가의 원형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조가 새겨진 인장들을 발견하였다. 이 인장은 요가의 핵심이자 항상 움직이는 동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새겨놓았다. 한 무명의 조각가는 음각으로 암녹색 동석을 팠다. 크기가 3.56cm x 3.53cm로 작은 인장이다.
이 인장을 만든 예술가는 둘레를 톱으로 자른 후 칼이나 정으로 다듬은 후, 연마재로 정교하게 갈았다. 이 부조는 섬세한 정으로 조각되었다. 파슈파티는 가만히 앉아있다. 그의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이 동물들의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삼매경으로 이미 들어갔는지 눈이 팔자八字로 평온하게 쳐져있다. 자신이 있어야할 본연의 장소에 안주하면서, 그의 귀도 아래로 쳐져있고 코도 길게 늘어져 있다.
요가는 힌두교라는 종교가 등장하기 이전, 인류의 오래된 수련방법이었다. 인류 최초의 정교한 도시를 구축한 기원전 26세기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인장이 요가의 기원을 증언한다. 모헨조다로의 통치자로 보이는 사람의 인장이다. 1922년대 영국 고고학자 존 마셜이 기원전 2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인더스 문명을 파키스탄 신드에서 발굴하였다. 모헨조다로 도시문명은 체계와 정교함은 동시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도시문명을 능가한다. 이 인장은 지하로 3.9m 깊이에서 발굴되었다. 모헨조다로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멕케이 E.J.H. Mackay는 이 인장을 420번으로 번호를 매기고 기원전 2350년에서 2000년 사이로 연대를 추정하였다. 겉이 미끌미끌한 암녹색 동석凍石위에 새겨진 이 인장은 크기가 3.56센티미터에 3.53센티미터 크기에 두께가 0.76센티미터로 몸에다 지니거나 목에 걸 수 있는 정도로 조그마한 크기다.
동물은, 움직이기 위해서는 멈춰야하고 멈춰야 움직일 수 있다. 항상 움직이는 천체나 한 장소에 고ᅟᅥᆽㅇ되어 있는 식물과는 달리, 동물은 정지와 움직임을 반복한다. 요가는 가만히 방치하면 마구 날뛰는 마음을 잠잠하게 만드는 훈련이다. 요가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업적들 중에 하나이다. 요가는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한 정신적인 훈련이었다. 요가는 기원전 5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독특한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있다. 전쟁터에서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준마를 훈련하던 요가가, 자신의 마음속에 등장하는 욕심을 공격하는 비폭력의 요가도 변했다.
기원전 700년경에 집대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리하드아란야까 우빠니샤드>는 우주창조에 관여한 신화적인 최초의 존재인 비라즈Viraj와 개인의 자아가 하나라고 기록한다.
“태초에 우주는 인간의 모습을 한 비라즈 밖에 없었다.
그는 깊은 사색에 빠져 사방을 찾았으나, 자신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말했다. ‘나는 그다’. 그러므로 그는 ‘나’라고 불렸다.”
<리하드아란야까 우빠니샤드> 1.4.1
우주가 무에서 생겨났다. 이 무는 유의 생성으로 만들어진 반대개념의 무가 아니라, 유무라는 개념조차 생성되지 않는 무다. 굳이 표현하지만, 무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무無無다.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의 원칙은 ‘나는 그다’이다. 태초에는 1인칭과 3인칭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아가 제3자이며, 자아가 곧 우주다.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자아가 우주적인 자아, 본래의 자아로 하나가 되는 훈련이 요가다. 요가는 원래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걱정을 덜어주고 스스로 건강을 찾도록 도와주는 건강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 안에 숨겨진 위대한 자신이며 진정한 자아를 일깨우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에 쌓인 적폐들, 즉 편견, 이기심, 무식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다. 요가는 훈련을 통해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현재의 자아에서 벗어나 우주적인 자아이며 신적인 자아와 합일하는 영적인 훈련이었다.
요가수련자의 마음은 ‘흡족’이다. 주위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려는 수련자의 방해하는 괴물들의 위협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하게 자신에게 몰입한다. <요가수트라> 33행 후반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덕스럽거나, 부덕하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흡족洽足하다.”
<요가수트라: 삼매품> 33행 후반부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원만하게 조절하여, 행복하거나, 조절하지 못해 불행하거나, 자신의 개성을 살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게 덕스러운 행위를 하거나, 혹은 그 덕을 알지 못해, 부덕하거나, 모든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흡족하다. 흡족이라고 번역한 범어는 ‘프라사다남’으로 추석과 같은 절기에 신에 드리는 음식에 관련된 단어다. 일년동안 정성스럽게 농사하여 수확한 농산물을 제단에 바쳐, 신과 자연에게 감사하고, 그 음식을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나누었을 때, 마음 속에서 샘솟는 기쁨이 바로 ‘프라사다’다.
추석은 우리 각자의 삶에서 흡족해야한다. 외부의 환경에 상관없이, 저 밤송이처럼,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 난 뒤, 스스로 습득한 마음의 평정이다. 10월은 우리 모두가 흡족을 구가하면 좋겠다.
사진
<파슈파티 인장>
암녹색 동석 인장, 기원전 2350-2000년, 3.56cm x 3.53cm
모헨조다로에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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