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31. (火曜日) “삶”
한 출판사가 칼 포퍼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를 출간하면서 추천사를 부탁하였다. 포퍼의 글은 항상 나를 감동시킨다. 과학, 사회학, 그리고 인문학을 넘나들고 내 행동을 가만히 비춰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적어보았다:
포퍼는 구루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라면, 반드시 안고 사는 문제, 좀 더 세속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고통과 직면했을 때, 그것과 대면하여 극복할 수 있는 삶의 문법을 제시하였다. 생물은 자기보존自己保存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변화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인생은 문제투성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일상은 어제의 소홀을 통해, 오늘의 산만을 거쳐, 내일의 걱정으로 견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 순환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이 역경 앞에서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다. 첫 번째 태도는, 문제를 묵인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두 번째 태노는 그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점을 찾으려는 시도다. 이 시도는 십중팔구 틀릴 수 밖에 없어, 시행착오施行錯誤라고도 불린다.
첫 태도는 반드시 불행으로 이어진다. 그 문제는 점점 실타래처럼 얽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실마리는 자취를 감춘다. 급기야 못해 영영 풀 수 없는 삶의 저주가 된다. 불행은 문제를 대면하려는 용기의 부족에서 싹이 튼다. 불행에 봉착한 인간은, 니체가 말한 20세기 등장한 우상인 ‘국가’에 의존한다. 그는 국가가 자신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고 착각하고 숭배한다. 그는 국가가 주장하는 이념을, 마치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는 맹목적으로 단테 <신곡>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깃발을 보고 뒤따라 가는 영혼과 같다. 그는 이제 전체의 일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전락한다. 20세기에 등장한 ‘민주주의의 적들’인 전체주의 아류들, 즉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그 예들이다. 전체주의자들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폐기 가능한 물건으로 본다. 오늘날 ‘소위 민주주의’국가 대부분은 대중의 인기라는 바람에 나부끼는 겨와 같은 허상 위에 올려놓은 부실한 모래성이다.
두 번째 태도는,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다. 포퍼는 영국의 실증주의자답게 희망적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그리고 실천이 가능한 명제를 제시하였다. 이 명제들은 간명한 언어이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에 혁명적이다. 그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고달픈 인생에서 부딪히는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세 단계로 제시한다: 1. 문제; 2. 시도된 해결책들; 3. 제거.
첫째, 우리는 ‘문제’에 봉착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포퍼에게 그 태도는 자신의 시적인 경험을 기반한 연역演繹이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누군가가 알 수 없는 수학 공식을 사용하며 제시한 귀납歸納이 아니다. 오늘날 과학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명제들은 많은 경우,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선별적인 대상을 통한 실험을 토대로 구축한 ‘이론理論’에서 출발한다. 이론은 인간 지식의 확장, 특히 미래의 과학적인 발견으로, 우리가 신봉한 소위 ‘절대진리絕對眞理’라는 우상을 조각한다. 그리고 <다니엘>에서 등장하는 네부카드네자르의 만든 우상처럼, 현대인들의 수긍과 절대신뢰를 요구한다. 우리가 믿는, 신의 이름을 들먹여 만든 교리든, 혹은 권위를 휘두르며 수긍을 강요하는 철학자나 과학자의 이론이든, 이것들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 엉성하여 오류가 발견될 수 밖에 없다. 포퍼는 귀납주의자들이 자부는 ‘절대진리’가 일상의 예들로 허물어질 수 있다는 ‘반증가능성反證可能性’을 제시한다. 반증가능성이 우리의 매일 삶을 긴장하게 만들고 신나게 만든다.
둘째, 우리는 각자의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解決책을 얻으려고 시도試圖해야한다. 해결책은 만고의 진리가 아니라, 지금-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시급하고 가변적이며 일시적이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단세포 동물인 아메바로부터 고등생물인 인간까지, 아니 잡초나 듬직한 참나무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생존을 위해 스스로 변신하고 진화해왔다. 이 미세한 변신이 해결책이 되어, 이전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더 이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 말, 그리고 손발을 이용하여 취해야 할 행동의 원칙이 ‘시도’다. 시도는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을 향해가는 열정이자 겸손이며, 끊임없는 시도는 그 자체가 정답이다. 다양한 가능성과 의외의 결과를 염두에 두는 사고실험만이, 인간을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니는 인간을 포용할 따뜻한 가슴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 장소와 시간에서 다른 생물이 아닌 동물로 태어난 개인이, 자신이 우연히 습득한 지식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얼굴 붉히며 주장하는 사람처럼, 무식한 자는 없다. 열린 마음으로 독창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에게, 그 문제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 문제가 슬그머니 해소解消된다.
셋째, 새로운 해결책이 옳다고 판단되면, 어제까지 금과옥조처럼 모신 신념을 버려야 한다. 포퍼는 그 단계를 ‘제거’라고 말한다. 제거는, 우리를 더이상 신나게 만들지 않는 지나간 것들을 처분하는 과감한 유기이며, 자신이 목숨처럼 믿었던 삶의 철학을 반박하고 감히 배신하는 용기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지 말하야 할 것들, 즉 엑스트라extra를 삶에서 솎아내면, 오늘이라는 산책이 즐겁다. 자신의 삶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즉 not-to-do 리스트를 하루에 하나씩 적어, 10개 항목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서 제거한다면, 그는 이미 행복한 인간이다.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는 책에서, 글을 통해 간결하게 말한다. 만일 독자가 하루에 한 개씩 깊이 읽는다면, 그녀는 좀 더 나은 생각을 지닌 인간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문법을 제시하였다. 15개 에세이 안에 우리가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혜안들을 숨겨놓았다. 하루에 한 개씩 읽고 느끼길 바란다.
사진
<넘어야 할 바위를 보고 있는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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