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5.(月曜日)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
힌남노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내일 아침 포항, 통영, 부산을 거쳐 빠져나갈 셈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행하여 많은 비를 뿌리는 돌풍이다. 힌남노라는 이름은 라오스에 있는 국립보호구역인 ‘힌남노’에서 따왔다. 이곳은 거대한 자연 동굴을 가진 습지로, 힌(돌), 남(가시), 그리고 노(새싹)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태풍이란 말은 ‘거대한 바람’이란 의미로 한자颱風에서 왔다. 태풍을 의미하는 영어단터 ‘타이폰’typoon은 우연의 일치라고는 신기하게 유사한 음가를 지니고 있다. 서양사람들로 ‘안내를 일으키는 바람’이란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튀포’τύφω에서 유래했다. 최근 들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극심한 기후 현상, 예를 들어, 한파, 열파, 가뭄, 홍수가 빈번한 이유와 인간 문명의 부산물인 온실가스 증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태풍’이란 성서에서 인간이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거나, 건성으로 억지로 행할 때, 신이 인간의 임무를 상기시키기 위한 은유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오토 랑크Otto Rank(1884-1939)는 <예술과 예술가>라는 책에서 인간의 삶을 운명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에 대한 인간의 공포 때문이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공포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변하는 신체적인 사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발휘하지 못한 채,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에 순응할 때 생기는 심리적인 죽을 포함한다. 랑크에 의하면, 이 공포가 개인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개인은 스스로 존재하기를 연습하면, 외로움과 소외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자신의 개성을 강화하는 삶을 살수록 우리는 대중과 괴리되고 홀로 서 있다는 감정에 휩싸인다. 랑크는 이 감정을 ‘삶에 대한 공포’라고 칭했다. 이 공포로 우리는 다시 자신이 속한 사회와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수고한다. 인간의 삶은 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우물쭈물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자신이 속한 집단, 가족, 친족, 도시,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이 우연히 속한 집단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획득해야 한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웅신화들은 모두 신화학자 죠셉 캠벨이 ‘모노미스’monomyth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요약한 것처럼, 새로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창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을 먼저 극복해야한다.
미국 심리학자 애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 본성에 평범과 순응에 안주하고 자신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욕구를 고의로 파괴한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이 콤플렉스는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 요나의 이름을 따서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라고 부른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이 병에 걸린 환자인지를 인식하고, 온전한 자신을 만드는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 수련이란 자신의 정성과 인내를 동원하여 체덕지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이다.
<요나서> 1장에 전반에 등장하는 내용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나의 심정을 섬세하고 간결하게 드러냈다. 히브리어 원문은 요나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다음은 원문에 대한 영문번역과 한글번역이다. 이 글에 대한 해설은 지면상 후에 기록하고 싶다.
1절
וַֽיְהִי֙ דְּבַר־יְהוָ֔ה אֶל־יֹונָ֥ה בֶן־אֲמִתַּ֖י לֵאמֹֽר׃
Suddenly the word of the LORD appeared unto the mind of Jonah the son of Amittai,
느닷없이 주님의 말이 아미타이의 아들인 요나의 마음에 있었다.
2절
ק֠וּם לֵ֧ךְ אֶל־נִֽינְוֵ֛ה הָעִ֥יר הַגְּדֹולָ֖ה וּקְרָ֣א עָלֶ֑יהָ כִּֽי־עָלְתָ֥ה רָעָתָ֖ם לְפָנָֽי׃
“Now, go to Nineveh, that great city, and cry out against it;
for their wickedness is come up before my face.”
“자,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
왜냐하면, 그들의 사악함이 내 얼굴까지 치밀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3절
וַיָּ֤קָם יֹונָה֙ לִבְרֹ֣חַ תַּרְשִׁ֔ישָׁה מִלִּפְנֵ֖י יְהוָ֑ה וַיֵּ֨רֶד יָפֹ֜ו וַיִּמְצָ֥א אָנִיָּ֣ה ׀ בָּאָ֣ה תַרְשִׁ֗ישׁ
וַיִּתֵּ֨ן שְׂכָרָ֜הּ וַיֵּ֤רֶד בָּהּ֙ לָבֹ֤וא עִמָּהֶם֙ תַּרְשִׁ֔ישָׁה מִלִּפְנֵ֖י יְהוָֽה׃
But Jonah willingly flee unto Tarshish from the face of the LORD;
He went down to the port of Yoppa, and found a ship going to Tarshish;
so he paid the fare and went down into it, to board with them unto Tarshish,
away from the face of the LORD.
”그러나 요나는 의도적으로 주님의 얼굴로부터 도망쳐 타르시스로 도망쳤다.
그는 욥바 항구로 내려가 타르시스로 떠나는 배를 발견하였다.
그는 뱃삯을 지불하고 승선하여 그들과 함께 주님의 얼굴로부터 도망쳐 타르시스 갈 참이다.“
4절
וַֽיהוָ֗ה הֵטִ֤יל רֽוּחַ־גְּדֹולָה֙ אֶל־הַיָּ֔ם וַיְהִ֥י סַֽעַר־גָּדֹ֖ול בַּיָּ֑ם וְהָ֣אֳנִיָּ֔ה חִשְּׁבָ֖ה לְהִשָּׁבֵֽר׃
But the LORD hurled a great wind into the sea,
and there was a fierce tempest in the sea,
so that the ship was like to be broken.
그러나 주님은 바다 위에 큰 바람을 일으키셨다.
그래서 사나운 비바람이 바다에 일어나, 배가 난파될 지경이 되었다.
5절
וַיִּֽירְא֣וּ הַמַּלָּחִ֗ים וַֽיִּזְעֲקוּ֮ אִ֣ישׁ אֶל־אֱלֹהָיו֒ וַיָּטִ֨לוּ אֶת־הַכֵּלִ֜ים אֲשֶׁ֤ר בָּֽאֳנִיָּה֙ אֶל־הַיָּ֔ם לְהָקֵ֖ל מֵֽעֲלֵיהֶ֑ם
וְיֹונָ֗ה יָרַד֙ אֶל־יַרְכְּתֵ֣י הַסְּפִינָ֔ה וַיִּשְׁכַּ֖ב וַיֵּרָדַֽם׃
And the mariners were afraid, and cried every man unto his god;
and they cast forth the wares that were in the ship into the sea,
to lighten it unto them.
But Jonah was gone down into the innermost parts of the ship;
and he lay, and was fast asleep.
“그러자 선원들이 두려워 각자 자신들의 신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배 안에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
그 이유는 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 요나는 배의 가장 깊은 곳에 내려가 누웠다. 잠에 골아떨어졌다.”
6절
וַיִּקְרַ֤ב אֵלָיו֙ רַ֣ב הַחֹבֵ֔ל וַיֹּ֥אמֶר לֹ֖ו מַה־לְּךָ֣ נִרְדָּ֑ם
ק֚וּם קְרָ֣א אֶל־אֱלֹהֶ֔יךָ אוּלַ֞י יִתְעַשֵּׁ֧ת הָאֱלֹהִ֛ים לָ֖נוּ וְלֹ֥א נֹאבֵֽד׃
So the shipmaster came to him, and said unto him:
‘What are you that you sleep?
Please call upon thy God,
Perhaps your God will think upon us, that we perish not.’
그래서 선장이 그에게 내려와 말했다.
“이 난리 가운데 잠을 자고 있는 너는 뭐냐?
제발 너의 신에게 호소하여라.
혹시 너의 신이 우리를 생각해주신다면, 우리가 소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
<얄타 항구의 해질무렵>
러시아 화가 이반 에바조프스키Ivan Ayvazovsky (1817–1900)
유화, 1861, 67 cm x 8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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