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2.(木曜日) “발견發見”(<도마복음서> 어록 1)

*그리스어 원문

옥시륀쿠스 파피루스 654.3b-5a

καὶ εἶπεν̣· [ὅς ἂν τὴν ἑρμηνεί]αν τῶν λόγων τούτ[ων εὕρῃ, θανάτου] οὐ μὴγεύσηται.

(한글음역) 카이 에이펜 호스 텐 헤르메네이안 톤 로곤 투톤 헤우리스케 싸나투 우 메 게우세타이

“그리고 그가 말했다: 누구든지 이 어록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콥트어 원문

낙함마디 코덱스 II.32.12b-32.14a

agw pejaf je petahe e;ermyneia Nneeisaje fnaji]pe an Mpmou

(한글음역) 아고 페자프 제 페타헤 에쎄르메네이아 언네이샤제 프나지 티페 안 엄프무

“그리고 그가 말했다:

이 어록들의 해석解釋을 발견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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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서>는 “이것은 살아계신 예수가 말씀하시고 유다 디뒤모스 토마스가 받아 적은 비밀스런 말씀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바로 예수의 첫 번째 어록이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어록은 접속사 ‘그리고’로 시작한다. 콥트어 ‘아고agw’는 예수의 어록이 바로 시작된다는 일종의 비언어적인 표식이다. 이 표식은 어록의 내용을 소개하는 발화자의 발언을 표시하는 동사가 바로 뒤따라온다. 그 동사가 ‘페제프pejaf’다. 학자들은 뒤 따라오는 어록에서 발견되는 발화자 동사인 peje와는 달리 3인칭 남성 단수 대명어미가 접미한 이 모양을 두고, 발화자가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분하다. 한 부류는 이 동사의 주어는 도마로, 앞으로 자신이 기록한 예수의 어록을 전달하면서,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동사의 주어는 도마다. 또 다른 부류는 서문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예수가 말하고 도마가 기록했기 때문에, 이 동사의 주어는 예수라고 주장한다.

나는 ‘페자프’라는 동사의 숨어있는 3인칭 남성단수를 예수가 아닌 도마로 해석하고 싶다. 이 중요한 첫 번째 어록에서 뒤 따라오는 어록들 처음 ‘예수가 말했다(ⲡⲉϫⲉ ⲓ̅ⲥ̅)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를 굳이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도마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어록 전체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페제프‘는 ’그가 말했다‘ 혹은 ’도마가 말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도마는 무엇이라고 예수 어록을 핵심을 요약하는가? 그는 그리스도교 정경으로 수용된 복음서와는 달리 <도마복음서>의 핵심 사상을 ’해석解析의 발견發見‘으로 요약한다. 해석이란 의미의 콥트어 단어인 그리스어 차용어로 ‘헤르메네이아hermyneia’다. 이 단어는 <도마복음서> 전체에서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어록을 기록한 도마만이 사용한 특별한 용어다.

‘헤브메네이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에서 유래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야 사이에 태어난 올림피아 신들의 전령이다.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 이집트에서는 헤르메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Hermes megistus로 ‘세배로 위대한 헤르메스’로 불렸다. 헤르메스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전령이며 여행의 신이다. 그는 항상 모자, 지팡이 그리고 기타를 들고 다닌다. 헤르메스는 사실 고대 그리스 문명보다 훨씬 이전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미케네 그리스어Mycenean Greek에 𐀁𐀔𐁀e-ma-a2(e-ma-ha)로 처음 등장한다. 이 단어는 ‘돌더미’를 상징하는 ‘헤르마’ ἕρμα에서 유래했다. ‘헤르마’는 자신이 이전에 지닌 편견을 산산조각내 무덤처럼 쌓아놓고 유기할 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장소이다.

해석이란, 자신이 과거에 지닌 편견에서 벗어나,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려는 용기다. 해석은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다’라는 의미, 혹은 ‘그 단어나 문장에 숨겨진 의미를 들추어 밖으로 내다’라는 의미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스스로 상복을 입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영원히 살고있는 우트나피슈팀을 만난 후에,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보통사람들로부터 경계된 것을 보았고 감추어진 것을 들춰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런 ‘해석’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도마는 그런 해석을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그가 사용한 콥트어 동사는 ‘헤 에he e’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to fall upon’이다. 도마는 <도마복음서>에 담긴 어록의 해석을 스스로 찾아 나서라고 촉구한다. 그 해석은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있는 그 독자의 개성個性이 자리를 잡고 있는 양심良心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소리다. 섬광과 같은 그 고요한 소리를 포착하는 마음은,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는 명상을 통해, 자신을 타인들과 구별하는 고독을 즐기는 여여如如다. 독자는 때가 되면, 마치 봄에 뿌린 씨가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과 소나기를 거쳐 가장 적절한 시간인 가을에 열매를 불현듯 맺듯이, 그 해석을 알아차리게 된다.

독자가 어떻게 해석을 만날 수 있는가?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로 펼쳐진다: 발견發見, 발굴發掘, 발현發現한다. 해석이란 자신이 정신만 차리며 발견할 수 있는 보물과 같다. <도마복음서> 저자는 그 발견의 순간을 콥트어 동사 ‘헤he’로 설명한다. 콥트어 ‘헤’는 고대 이집트어에서 ‘따오기’ 혹은 ‘따오기가 걷다hbj’라는 hebiy 혹은 ‘하아hꜣj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오기’를 기원전 3000년 고왕국시대로부터 자신들의 종교와 의례에 중요한 동물로 숭배해왔다. ‘따오기’는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온전히 몰입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不動과 침묵沈默의 화신이다. ‘따오기’는 이집트 신전 성벽에 조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자의 신, 달의 신, 지혜의 신 그리고 치료의 신인 ‘토트신’Thoth와 시체방부처리 신인 ‘아누비스’Anubis를 상징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심지어 파라오의 무덤에 종종 따오기 미라가 부장품으로 발견된다.

특기 기원전 7세기 알-민야al-Minya 지역에 위치한 투나 엘-게벨이라는 공동묘지에 수 천개의 따오기 미라가 발굴되었다. 이 미라들은 정교한 천으로 싸여져 석관이나 도자기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따오기에 대한 특별한 법을 제정하였더. “누구든지 이 새를 해지면, 그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따오기가 상징하는 토트신은 ‘거룩한 말의 주인’으로 문자와 문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따오기는 고왕국시대 피라미드 문헌에 의하면, 태양신 라와 연관되어 태양이 하늘로 여행할 때 동반하는 두 동무중에 하나다. 라는 토트의 날개 위, 즉 따오기의 날개 위에서 신적인 강을 건넌다. 따오기는 <사자의 서>에서도 죽은 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 아누비스로 영혼의 저울 앞에 등장한다. 따오기는 문자의 신 토트의 신과 등장하여 정의와 정직의 상징이기도 하다.

‘걷다’란 의미의 콥트어 동사 ‘헤he’가 전치사 ‘에e’와 결합하면, ‘우연히 발견하다; 깨닫다’란 의미다. ‘발견하다’란 의미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연관된 두 구절에서 파악할 수 있다. <도마복음서> 어록 109는 “천국은 자신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라고 말한다. 물론 <마태복음> 13.44에도 예수는 천국을 감추인 보화로 설명한다. “천국은 밭에(ἐν τῷ ἀγρῷ) 감추인 보화로, 그가 발견하여(εὑρὼν) 다시 묻고(ἔκρυψεν) 기뻐,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구입한 보호와 같다”라고 설명한다. ‘헤우리스코’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우연히 만나다’ 혹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하다’라는 의미다. 이 우연은 필연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자신의 일상에서 자기자신이라는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자는, 이미 영원을 살고 있다. 처음과 끝이 있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을 지금-여기에 자신의 삶으로 체현하는 자다. 도마는 그런 자는 당연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요한복음> 8장 51-52절에도 유사하게 등장한다.

51.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ἐάν τις τὸν ἐμὸν λόγον τηρήσῃ, θάνατον οὐ μὴ θεωρήσῃ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사람이 내 말을 준수하면, 그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ἐάν τις τὸν ἐμὸν λόγον τηρήσῃ, θάνατον οὐ μὴ θεωρήσῃ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에게 말했다.

“자 우리가 당신은 악마를 소유했다는 것을 안다.

아브라함은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다.

그러나 당신은 ”만일 내 말을 준수하면,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준수하면,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을 반박하면서,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도 죽었는데, 예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예수의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표현은 <요한복음>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요한복음>과 <도마복음>에서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 다르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윤리적인 책임을 강조하지만, <도마복음>은 윤리적이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을 강조한다. 바로 ‘이 어록들에 담긴 의미, 즉 그 해석의 발견’이다.

도마는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을 초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도마복음서>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심전心田에 숨겨진 나름 대로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 삶에 대한 해석이다. 이 해석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영생이다.

사진

<구름 사이에 있는 태양>

가평 명지산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