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록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두 가지로 간결하고 강력하게 묘사한다. 예수는 세상에 불을 지리고, 그런 후 그 불이 활활 타오르게 돌보기 위해서 왔다. 이 불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혼돈을 상징하는 물을 제압하는 바람이며, 진흙으로 인간을 빚을 때, 인간의 콧구멍에 불어넣은 신적인 기운이며,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그의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온 성령이며, 예수가 승천한 후,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마음속에 들어온 뜨거운 바람이다.
<도마복음서> 어록 10
ⲡⲉϫⲉ ⲓ̅ⲥ̅ ϫⲉ
페제 예수 제
ⲁⲉⲓⲛⲟⲩϫⲉ ⲛ̄ⲟⲩⲕⲱϩ̄ⲧ⳿ ⲉϫⲛ̄ ⲡⲕⲟⲥⲙⲟⲥ
아이누제 언-우-코흐트 에헌-프-코스모스
ⲁⲩⲱ ⲉⲓⲥϩⲏⲏⲧⲉ ϯⲁⲣⲉϩ ⲉⲣⲟϥ⳿ ϣⲁⲛⲧⲉϥϫⲉⲣⲟ
아고 이스-헤테 티-아레흐 에로-프 샨테프-제로
Yeshua said this:
I have sown fire upon the world,
and now I tend it until it blazes.
“예수가 이것을 말했다.
나는 세상에 불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보아라! 나는 그것이 활활 불타오를 때까지 그것을 돌본다.”
(해설)
이 어록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두 가지로 간결하고 강력하게 묘사한다. 예수는 세상에 불을 지리고, 그런 후 그 불이 활활 타오르게 돌보기 위해서 왔다. 이 불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혼돈을 상징하는 물을 제압하는 바람이며, 진흙으로 인간을 빚을 때, 인간의 콧구멍에 불어넣은 신적인 기운이며,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그의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온 성령이며, 예수가 승천한 후,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마음속에 들어온 뜨거운 바람이다.
예수는 이 뜨거운 바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ⲡⲉϫⲉ ⲓ̅ⲥ̅ ϫⲉ
페제 예수 제
ⲁⲉⲓⲛⲟⲩϫⲉ ⲛ̄ⲟⲩⲕⲱϩ̄ⲧ⳿ ⲉϫⲛ̄ ⲡⲕⲟⲥⲙⲟⲥ
아이누제 언-우-코흐트 에헌-프-코스모스
예수는 인간들이 진리라고 만들어 놓은 질서, 즉 코스모스ⲕⲟⲥⲙⲟⲥ에 불을 붙였다. 콥트어 코스모스ⲕⲟⲥⲙⲟⲥ는 그리어 ‘코스모스’에서 차용한 단어로, ‘세상; 우주; 질서’란 의미다. 예수는 세상이나 우주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 한 사람, 즉 개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코스모스는 세상을 운명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자 허상이다.
예수는 그 허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극단적인 행위를 한다. 그 질서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은 불씨, 즉 코흐트ⲕⲱϩ̄ⲧ를 하나하나 뿌리기 마음 속에 시작하였다. 불씨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 각자 코에 불어 넣은 신적인 불꽃이다. 그는 이 불꽃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듯 뿌렸다. 어록 8번과 9번에 ‘뿌리다’라는 콥트어 동사인 ‘누제ⲛⲟⲩϫⲉ’가 ‘씨를 뿌리다’와 ‘그물을 바다에 뿌리다/던지다’란 의미로 이미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2.49에서 예수의 이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Πῦρ ἦλθον βαλεῖν ἐπὶ τὴν γῆν, καὶ τί θέλω εἰ ἤδη ἀνήφθη.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이 구절은 흔히 예수가 이 세상에 불을 질러 불화를 조성하는 자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도마복음서> 경구 10에 비추어 본다면, 예수는 인간에게 신의 불꽃, 즉 성령을 인간의 마음속에 심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 거룩한 씨앗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각성이며, 그런 각성을 가진 동료 인간에 대한 연민이자 자비다.
이 불을 감히 자신의 마음 속에 품는 자는, 해를 입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불과는 다른 신의 불꽃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2에 모세가 신을 호렙산에서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천사가 가시덤불, 불길 가운데 등장한다. 그 순간 불에 붙은 가시덤불은 이런 모습이다.
וַ֠יֵּרָא מַלְאַ֨ךְ יְהֹוָ֥ה אֵלָ֛יו בְּלַבַּת־אֵ֖שׁ מִתֹּ֣וךְ הַסְּנֶ֑ה וַיַּ֗רְא וְהִנֵּ֤ה הַסְּנֶה֙ בֹּעֵ֣ר בָּאֵ֔שׁ וְהַסְּנֶ֖ה אֵינֶ֥נּוּ אֻכָּֽל׃
워-힌네 핫서네 보에르 버-에쉬
워-헛서네 에네누 웃칼.
“자 보아라!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는데도
가시덤불이 연소되지 않았다.”
<도마복음서>는 <누가복음>과는 달리 예수의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보아라! 나는 그것이 활활 불타(ϫⲉⲣⲟ제로)오를 때까지 그것을 돌본다(ⲁⲣⲉϩ아레흐).”
예수의 임무는 그 잔불이 활활 타올라 화염이 되는지를 지켜보는 자다. 그는 우리 각자가 신의 불꽃인 우리 고유한 임무가 창조적인 발휘를 할 때까지 지켜보고 응원하는 자다. 니체는 인간이 새로운 인간, 즉 초인이 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 당신 자신의 불꽃으로 자신을 태울 준비가 되어있어야합니다.
당신이 먼저 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일어 설 수 있습니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한 은둔자가 불을 가지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그가 방화범으로 오인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인간은 자신만의 신적는 불꽃을 활활 불태우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한다. 인간은 세상, 즉 코스모스가 말하는 행복, 만족, 안정과 이런 것보다 숭고한 자기-자신을 창조해야겠다는 무자비한 열정 사이에서 고민한다. 예수는, 온통 재뿐인 코스모스ⲕⲟⲥⲙⲟⲥ에 우리 각가의 마음에 신적인 불꽃, 그 사랑의 불꽃, 그 코흐트ⲕⲱϩ̄ⲧ를 뿌리고 그것이 활활 타오르기를 돌보는 존재다. 예수는 방화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