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6. (土曜日) “수원水源”
<길가메쉬 서사시> 제1토판 1-4행
(기원전 14세기 표준바빌로니아 판본)
나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90년대 초에 만났다. 아카드와 수메르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 서사시를 이 언어들로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당시 이 언어들을 오랫동안 공부하면, 서사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였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위대한 서사시가 담긴 찬란한 이야기는 신리루가 되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인생경험이 적어, 길가메쉬의 감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 후 35년이나 지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기 시작하였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가 남긴 최초의 노래다. 지난 4000년동안 인류의 베스트셀러다. 이제 다시 이 서사시를 가만히 들여다 볼 작정이다. 기원전 14세기 카사이트 시대 구마사제인 신-레케-우닌니𒁹𒀭𒌍𒋾𒀀𒅆가 편집하여 12토판으로 남겼다, 그 후, 지난 3,400년동안 정형화된 모습이 되어, 고고학자들이 150년전에 니네베에 있는 아시리아 왕 아수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하였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일관된 이야기로 전달된 서사시를 가능하면 아카드어 원본의 의미를 살려, 영어로 한글로 번역하고 싶다.
9월 초부터 태풍태권도장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대면으로 가르치고, 이 인터넷공간에서 여러분과 그 성과를 공유하고 싶다. 다음은 제1토판 1-4행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아카드어 자역, 음역, 그리고 한국어 발음, 영어번역, 한글번역, 그리고 해설이다.
제1토판
1. [šá nag-ba i-mu-ru i]š-di ma-a-ti
ša nagba īmuru išdī māti
샤 나그바 임무루 이슈티 마티
The One who saw the abyss, the foundation of the land
나라의 기초인 수원水源을 본 자,
2. [ x x x-ti i-du]-[ ú ka]-la-mu ḫa-as-s[u]
xxx-ti īdu kalâmu ḫassu
who know [xxx], is considerate in everything.
[..]을 아는 자는, 만사에 사려가 깊었다.
3. [dGIŠ.GÍ́N.MAŠ šá n]aq-[ba] i-mu-ru iš-di ma-[a]-ti
dGilgameš ša naqba īmuru išdī māti
The One who saw the abyss, the foundation of the land
나라의 기초인 수원水源을 본 길가메쉬
4. [ x x x-t]i i-du-ú ka-la-mu ḫa-a[s-su]
xxx-ti īdu kalâmu ḫassu
who know [xxx], is considerate in everything.
[..]을 아는 자는, 만사에 사려가 깊었다.
(해설)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EG)>는 ‘샤ša’로 시작한다. ‘샤’는 아카드어로 관계대명사다. 이 관계대명사의 선행사는 3행에 ‘길가메시dGilgameš’로 등장한다. 1행과 3행, 2행과 4행은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란 점으로 미루어 보아, EG는 고대근동지방 음유시인의 노래였을 것이다. 인류가 농업을 발견하고 정착한 후에, 도시를 건설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도시를 유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문자를 발명한 후, 인류 최초의 문명도시인 우룩의 창건자 ‘길가메쉬’를 통해, 인간의 절망과 희망, 염원과 좌절,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불렀다. 음유시인들은 이 노래를 시장에서,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전달된 이유는 감동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신-레케-우닌니가 관계대명사 ‘샤ša𒐼’를 전체 서사시의 첫 글자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단어를 직역하면 ‘-을 하는 자’다. 즉 이 글을 여러분과 나와 같은 누구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행사가 없는 관계대명사로 시작하였다. 1행 ša naqba īmuru išdī māti샤 나끄바 임무루 이슈티 마티를 번역하자면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본 자’라는 의미다. ‘나라의 기초’란 의미는 ‘이슈디 마티išdī māti’에서 ‘기초’에 해당하는 ‘이슈디išdī’는 원래 인간이 자리를 잡고 안정되게 앉을 때, 엉덩이의 양쪽을 의미하는 단어다. išdī’도 išdum의 쌍수형 사격이다. 수메르 궁정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었다. 왕은 상하원들간의 격렬한 토론을 경청하여, 정사를 운영하였다. 그렇다면 우룩이란 나라의 정치를 기반은 무엇인가? ‘이슈디 마티’가 꾸며주는 명사는 ‘나그바’다.
‘나그바’는 크게 다음 두 가지 의미한다. 첫째, 강과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물을 생산하는 수원水源이다. 그 누구도 이 수원을 내려간 적도 없고 목격한 적도 없다. 길가메쉬는 영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지하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우트나피슈팀을 우여곡절 끝에 만난다. 그는 길가메쉬에서 영원히 젊음을 유지해주는 불로초를 딸 수 있는 페르시아만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수원을 알려준다. ‘나그바’는 길가메쉬가 불로초를 채취한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이다.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은유적으로, 만물의 근원인 물이 태어난 장소이자, 인간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구별된 공간인 어머니의 뱃속과 같은 장소다. 이곳은 플라톤이 말한 코라chora와 같은 시공간으로 현재의 자아를 기꺼이 살해해야 훌륭한 자아를 탄생시키는 장소다.
둘째, 나그바는 시에서만 ‘모든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의 모든 것, 인간의 모든 것, 특히 신과 인간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담긴 총체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특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감추어진 신-레게-우닌니와 같은 구마사제가 정화의례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다. 구마사제는 당시 최고의 지식을 소유한 자다. 나그바는 구마사제가 알고 있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와 같은 지식이며 지혜다.
길가메시는 ‘나그바’를 ‘보았다’. 신-레케-우닌니는 ‘보았다’라는 단어를 아카드어 동사 amārum의 완료형 3인칭 남성단수형 ‘이무루īmuru’를 사용하였다. ‘이무루’를 다시 분석하자면, 동사 ‘이무르’īmur 와 종속절을 나타내는 표시사 –u의 합성어다. 이 동사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보다; 관찰하다; 발견하다; 경험하다; 어려운 문서를 읽다/판독하다.’ 이 다양한 의미들이 모두 ‘이무루’에 담겨있다. 그러므로 이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1) 나라의 기초인 수원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자;
2) 나라의 기초인 수원을 발견한 자;
3) 나라의 기초인 수원으로 내려가 삶과 죽음을 모두 경험한 자;
4) 나라의 기초인 수원에서 만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한 자;
5) 나라의 기초인 수원으로 내려가, 그 누구도 풀수 없는 어려운 우주의 수수께기를 푼자.
길가메시는 이 수원을 경험한 후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2행과 4행은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길가메쉬는 만물의 핵심을 간파하여 매사에 소홀하지 않고 신중愼重했다. 우주와 자연의 작동원리를 아는 자는, 매사에 신중하다. 자연은 인내와 변화의 화신이다. EG는 성급한 어린아이와 같은 설익은 지도자인 길가메쉬가 신중하고 지혜로운 영웅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한 노래다.
사진
<무릎을 꿇은 괴물 훔바바를 죽이는 길가메시와 엔키두>
미타니, 기원전 1400년
적철광hematite
런던, 영국 박물관 89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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