हेयं दुःखमनागतम् ॥१६॥
heyaṁ duḥkham-anāgatam ||16||
헤얌 두흐캄-아나가탐
(직역)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은 피할 수 있다.”
(의역)
“요가수련자가 아직 경험하지 않는 고통은 허상이다. 고통이란 경험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심리적이며 신체적인 불편함이다. 그는 요가수련을 통해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마음에 새겨진 심리적인 걱정과 근심을 피할 수 있다.”
(어휘)
heyam, 명사. n.nom.sg. ‘피할 수 있는 것’(<heya ‘버려지다; 거절당하다’)
duḥkham 명사. n.nom.sg ‘고통; 마음을 비우지 못해 만사에 생기는 불편’
anāgatam 명사. n.nom.sg. ‘미래未來’ (<an 부정접두사 + ā ‘-로’ + gata (<gam ‘가다’))
(해설)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있는가? 극심한 고통으로 시달리는 인간이, 그 고통을 더이상 느낄 수 없는 방안은 무엇인가? 고통은 과거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되는 극심한 불편인데, 이 고통이 미래에도 지속 되는가? 미래의 고통은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환상이다. 그러므로 경험의 부재인,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고통은 형용모순이다. 파탄잘리는 이 경구에서 왜 미래고통을 피할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고통은 인간이 성장하기 위한 유일한 다리다. 고통, 특히 극심한 고통은 잔인하지만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서이자 나침반이다. 고통은 흔히 기쁨이나 행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아니라, 이것들을 발견하고 증진시키는 유일한 도구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인 힘으로부터 건강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통이 흔히 질병, 실패, 상실, 거절, 상처와 같은 불운으로 구성되어 우리를 친구, 가족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부정적인 감정일 수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총체적인 고통을 가져왔다.
인류는 그런 고통을 정복할 수 있는가?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학자인 에인 맥길크라이스트Iain McGilchrist는 The Matter with Things (2021)라는 책에서 고통과 관련된 중요한 관찰을 언급한다. 과학자들은 화성과 같은 행성에서 인간과 지구 동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 오라클에 세워진 ‘바이오스페이스 2 프로젝트Biospace 2 Poject’을 건립하였다. 8명 과학자들이 실제로 외부와 구별된 공간에서 2년 동안 (1991-1993) 거주하였다.
그들은 이 곳에 심겨진 나무들이 다 자라나지 못하고 금방 넘어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들은 나무 성숙에 필요한 공기, 물, 흙을 제공하였지만, 한가지를 바련하지 못했다. 바로 바람이다. 바람, 비바람, 그리고 눈바람과 같은 스트레스는 나무가 온전히 자리기 위해 필수적이다. 바람은 나무 성장의 필요조건인 ‘스트레스 나무’stress wood의 성장을 촉진한다. 바람은 또한 지상 나무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지하의 뿌리를 견고하게 만든다.
파탄잘리는 미래의 고통을 피할 수 있고 피할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도약을 위한 굳건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고통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단어 ‘두흐카duḥkah’는 자기-응시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비우지 못할 때 다가오는 불편이다. ‘카’kah는 아리안족들이 사용한 전차의 바퀴를 의미한다. 바퀴는 빈 공간인 중앙hub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바퀴살spoke이 테두리rim에 유기적으로 부착되어있다. 전차가 달릴 때, 바퀴살은 중앙과 테두리를 이어주는 매개로, 외부의 강한 압박도 이겨낼 수 있도록 중앙 허브의 공간은 비어있어야 한다. 전차가 달릴 때, 바퀴가 압력을 이겨내도록, 바퀴살이 빈 공간인 중앙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전차의 전진을 유지한다. 고통을 그것을 대하는 수련자의 태도에 따라 그를 과거로 끌어내리거나, 혹은 행복의 원천이 된다.
파탄잘리는 ‘헤얌’heyam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요가수련자가 고통에 관한 태도를 표시한다. ‘헤얌’은 ‘사라지다; 버려지다; 거절당하다’라는 의미다. 이 경구의 문맥에 따라 ‘헤얌’을 번역하지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고통은 거절당한다. 고통이 가지는 역설적이며 혜택을 품고 있는 문장이다. 사마 베다의 찬도기아 브라흐마나Chandogya Brahmana는 고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na paśyo mṛtyuṃ paśyati na rogaṃ nota duḥkhatām
sarvaṃ ha paśyaḥ paśyati sarvam āpnoti sarvaśaḥ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올바로 응시할 때,
그는 죽음, 병, 그리고 고통을 보지 못한다.
그가 올라보 응시할 때,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완전히 극복한다.”
<찬도기아 우파니샤드> 7.26.2
위 구절은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기-응시를 소개한다. 요가수련자에게도 고통이 수련하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 고통은, 내적인 성장을 돕기 위한 페이스-메이커다. 고통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통과의례다. 특히 고통은 힌두교와 불교를 포함한 위대한 종교에서 주창하는 ‘자비’ 즉 공감을 통한 조화로운 삶을 실천하기 위해, 요가수련자를 위한 동계훈련이다. 고통, 특히 우울증은 삶을 실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고통은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신장시킨다. 고통은 자신의 삶에서 이전에 깨닫지 못한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걷어낼 수 있도록 도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다이몬daimon을 회복시킨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오롯이 응시하는 용기와 삶의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유기하는 패기가 필요하다. 고통은 바로 이 용기와 패기를 마련해 준다. 인간은 고통이란 심연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그의 삶에서 과거와 남에 집착하는 외면이란 허물을 벗겨 어린아이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을 더욱 즐길 수 있는 도인이 된다. 요가수련자는 고통을 피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 해탈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사진
<소나무 숲>
러시아 화가 이반 시시킨 (18310-1898)
유화, 1895, 128 cm x 195 cm
모스코바 극동 미술관Far Eastern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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