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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해변의 봄 달Spring Moon at Ninomiya Beach>
가와사 사스이(川瀬 巴水, Kawase 1883-1957)
엽서, 1931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남인가 아니면 나인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할당된 조그만 임야에, 자신이 원하는 과실수를 심고 가꾸고 햇빛과 비가 적당하게 내리기를 기원하고, 가을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허심虛心이다. 만일 가을에 자신이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결과를 거두지 못하는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오기 마련이다. 그 봄에 다시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그 심심한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은 미노스나 암무트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안달과 부러움이라는 도깨비다. 평상시엔 없는 것 같지만, 내가 마음을 욕심으로 가득 채울 때 느닷없이 등장하는 요술 방망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런 고민과 그 해결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책이 아니라 온몸을 움직이는 걷기에서 생기기 시작하였다. 반려견들과 시골로 이사 온 지 10년이 되었고, 맨 처음에는 반려견들의 성화로 산책을 시작하였다. 점점 산책이 내 삶을 정돈시키고 내 주위를 정리시켰다. 하루에 3시간 산책은 하루 두끼 식사만큼 내 하루를 유지하는 기둥이 되었다. 걷기는 한 곳에 나를 머무르게 놔두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변화이며 과정이고, 동시에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걷기가 한 불행한 인간을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변모시켰다. 니체다. 그는 자신의 삶이 되는 비결을, 걷기에서 발견하였다. 걷기가 그의 천재성을 발휘시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여곡절은, 보통인간을 특별한 인간으로 만드는 잔인하지만 유일한 길이다.
니체는 1869년 2월, 24세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위스 바젤대학교 그리스어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저명한 학교의 교수로 일생을 평안하고 평범하게 살 운명이었다. 그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철학뿐만 아니라 루터의 종교적 열정을 품고 있다. 그는 신고전주의 시조인 빙켈만이 주장하는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흉내 내는 유럽문화에는 생기와 재생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독일과 현대 문명이 나갈 바를 작곡가 바그너와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통해, 유럽문화의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틈새를 발견하였다. 그는 당시 안주와 명성을 인생목표로 삶은 철학자들과 교수들과 태생적으로 어울릴 수 없었다. 그 결심은, 그의 직업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담보해서라고 지켜내야만 하는 인생의 보루였다.
1872년, 1월 2일, 그의 첫 번째 책은 <비극의 탄생>이 출간 된 후,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유럽문명은 질서를 강조하는 아폴로 문명이 아니라, 혼돈과 재탄생을 향한 약동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 문명으로 전환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 아폴로 문명이 그리스도교와 결합한 당시 유럽문화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운명의 짓궃은 장난이지만, 위대한 철학자를 탄생하기 위한, 사건이자 시련이 일어났다. 당시 문헌학 학자들은 그의 저작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조롱하였다. 그는 급기야, 수업 중 기절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책에 대한 찬사는, 학자들이 아니라 와그너와 같은 예술가들과 작가들, 특히 인종차별을 받고 있었던, 유대 지식인들로부터 왔다. 니체는 어려서부터 근시, 복통 그리고 신경쇄약을 앓았다. 1874년부터, 이 병들이 악화하였다. 결국 그는 1876년 안식년을 내고 학교로부터 떠난다.
니체가 학교를 떠나면서 저술한 책이 <운짜이트게메세 베트라흐퉁엔Unzeitgemässe Betrachtungen> 즉 <때가 아닌 명상들>이다. 1873-1876년 사이에 저술한 이 책은 니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쓴 첫 선언서들이다. 13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그 생전에 4권, 그리고 사후에 1권, 모두 다섯 권이 출간되었다.
그는 이 저서들에서 당시 독일이 중요하게 여긴 경험적인 지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호소하였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Schopenhauer als Erziehe>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통해 홈볼트와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이 보여주었던 그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싹트고 있었던 명목상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주장하는 대중과 집단을 강조하는 현대문화를 공격하였다. 후에 그가 ‘초인’이라고 명명한 ‘위대한 개인’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대중문화를 즐기는 대중은 다음 세 부류다. 첫 번째 위대한 인간들을 흉내를 내는 사람들로 그 누구도 다시 읽지 않은 논문이나 책을 출간하는 지식인들; 두 번째 부류는 위대한 사람들을 시기하고 핍박하는 사람들; 세 번째 부류는, 위대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 인간들이다. 나머지는 악마와 미디어가 말한 수치가 대중을 인도할 것이다.
그는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에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주의, 정직, 그리고 뚝심을 묘사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무도 당신에게 다리를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당신만이 인생이란 강을 당신이 만든 다리위로 건너가야 합니다.
당신을 기꺼이 데리고 갈 수많은 길들, 다리들, 그리고 신격화된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당을 잡혀 자신을 잃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한 길을 걸어갈 사람은 당신 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어디로 인도합니다.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냥 걸으십시오!”
니체가 살기 위해서 걷기 시작하였다. 학문계에서 오명을 쓰고 몇 여성에게 청혼하였지만 퇴짜를 맞고 두통과 복통은 그를 며칠 동안 컴컴한 침대에서 앓게 만들었다. 그에게 ‘긴 산책’은 유일한 치료이자 구원이었다. 그는 37살되던 해 여름, 스스로 유럽 곳곳에 임시처소를 마련하여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산책과 글쓰기에 몰입한다, 그는 독일의 서남쪽 남북으로 길게 뻗어 스위스에 걸쳐있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즉 ‘검은 숲’이라고 알려진 숲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저는 주로 숲 속에서 걷습니다. 그리고 저와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하루에 6-8시간 걸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후에 종이위에 옮깁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이족보행이라는 진화의 선물을 거역하는 퇴화이며, 눈을 머리 앞에 달아, 저 멀리 바라보라는 신의 거역하는 중대한 죄다. 걷기는 누구에게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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