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21. (木曜日) “대담大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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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 강가 부들>

 

봄바람이 거세다. 그나마 남이 있던 진달래와 벚꽃을 대부분 떨어뜨렸다. 2층 베란다에 놓았던 테이블 의자가 스스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닥에 내동그래졌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마당 능수벚나무 잎들이, 마치 강풍에 날리고 펄럭이는 처절한 연 꼬리처럼, 줄기로부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젠 내년 4월에 피울 꽃을 상상하며 침묵모드로 들어간 목단牧丹도 강풍을 맞이하여 가지 몇 개를 힘없이 부러뜨렸다.


바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에누마엘리시>Enuma Elish에서 우주에 질서를 가져왔다. 바람은 최강의 무기武器다. <에누마엘리시>는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쐐기문자 아카드어로 기록한 기원전 19세기 문헌이다. 당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없음’이라는 개념을 아직 떠올리지 못해, 혼돈으로부터 유출流出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도시문명과 그 문법인 ‘질서秩序’를 바람으로, 그 반대상태인 아무것도 구별되지 않는 ‘혼돈混沌’을 바다라고 상상하였다.


아르메니아 산지에서 출발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쪽 80km에 위치한 바빌론 근처에서 거의 근접한다. 거기서 아래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이 강물들의 깊이는 얕아, 이 강들은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른다. 바빌로니아인들은 때때로 페르시아만에서 역류逆流로 올라온 염수塩水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든 담수淡水와 섞이는 엉망진창을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의 ‘혼돈’ 상태로 상상하였다. 그들은 담수에 스며있어 자신들에게 농업과 어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을 ‘압수’Apsu라고 불렀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바다에 깃든 파과적인 힘을 ‘티아맛’Tiamat이라고 불렀다. 티아맛은 용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바빌론이란 도시와 우주에 질서를 가져올 젊은 ‘마르둑’Marduk신은 바닷물인 티아맛을 네 가지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제압한다. 바람은 혼돈보다 ‘더 강력한 혼돈’으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자다.


창세기 1장 2절은 분명 <에누마엘리시>을 안 무명의 히브리 저자가 우주창조이야기를 고백했을 것이다. 1장 2절에 “강력한 바람이 물위를 운행하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혼돈을 상징하는 물을 이길 우주의 자원은 바람이다. 혼돈의 물을 강한 바람이 누르고 있을 때, 우주를 만들 기획, 의도, 말, 그리고 실행이 등장한다. ‘빛이 있으라!’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산책길 강가에 있는 부들에게 다가갔다. 군데군데 휩쓸린 흔적은 있었지만,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뉘인 모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건재하다. 이 연약한 풀은 건재하고 견고한 의자는 나동그라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풀은 겉보기와는 달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을에 볍씨를 내겠다는 ‘의지意志’가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향한 풀의 의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이 풀은 다른 모든 풀과 나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고귀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티아맛 신도 꺾을 수 없는 고귀한 의지를 품고 있다. 이것이 없다면 어떤 풀이나 나무도 저렇게 의연하게 서 있을 수 없다.


부들은 햇빛, 공기, 물, 그리고 안개와 같은 자연이 주는 혜택으로 자신의 뿌리를 약해보이는 저 진흙 속에 담구고, 자신의 머리를 끝 알 수 없는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펼쳤다. 지구의 원칙인 중력을 감히 거슬러 높이 올라갈 것이다. 이 무명의 풀은 ‘대담大膽’하다. 부들은 옆에 있는 다른 부들에 의지하지 않는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자신의 토양에서 자양분을 얻어 곳곳이 그곳에 서있다. 나는 오늘 두발을 땅에 디디고 굳건히 설 것인가? 나는 나를 넘어뜨리려는 비바람을, 내 개선을 위한 유일한 수련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