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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성문을 여는 천사>
프랑스 삽화가 구스타브 도레
단테는 하부지옥에서도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한 중요한 단어를 사용하여 희망의 불씨를 살린다. 이탈리아어 부정지시대명사, 탈tal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이 하부지옥으로 들어갈 참이다. 단테 <신곡>은 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깊이 관찰하고 진입할 수 있는가를 가름해 보는 수색이다. 단테는, 무절제를 저지르는 자신을 보기는 비교적 쉬었다. 높은 철 성벽으로 둘러 쌓인 하부지옥에 있는 자신의 흉한 모습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인도자이며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오히려 이 둘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친밀하게 연결되어있다. 단테는 두려운 이유는, 그를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 수 없듯이, 스승이 두려워하면, 그 제자도 당연히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을 떨쳐줄 존재가 등장한다. 단테는 그 존재를 ‘부정지시대명사’ tal을 통해 표현하였다. 베르길리우스는 <지옥편> 8.105에서 ‘알려지지 않는 어떤 자’(tale> tal)가 그들을 도우러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말하며 단테를 안심시킨다. ‘탈’은 초월적인 존재로, 이들의 지옥여행을 허락하게 하는 존재로 8.104-5와 8.130에서 ‘탈’을 등장시킨다.
104. “Non temer; ché ’l nostro passo
105 non ci può tòrre alcun: da tal n’è dato.”
104. “두려워하지 말라. 아무도 우리의 길을 방해할 수 없다.
105. 그렇게 위대한 분이 그것을 허락하셨다.”
130. tal che per lui ne fia la terra aperta
130. 그와 같은 자가 우리를 위해 이 영역을 열어줄 것이다.
<지옥편> 9곡은 ‘탈’이 그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확인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1 Quel color che vilta di fuor mi pinse
2 veggendo il duca mio tornare in volta,
3 piu tosto dentro il suo novo ristrinse.
2. 나의 인도자가 뒤로 돌아선 것을 보았을 때,
1. 두려움이 나로부터 밖으로 밀어낸 (안)색이
3. 그의 새로운 (안색을) 재빠르게 안으로 자제하도록 만들었다.
하부지옥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연대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정신적인 교감이다. 베르길리우스가 과거 경험에 의거한 행동으로 단테가 두려워하자, 베르길리우스는 다시 자신의 감정을 안dentro으로 감춘다. 중세 시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등장인물의 의식 흐름에 대한 표현이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두려워하지 말하고 말했지만, 단테는 그 두려운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테의 비겁viltà은 그가 여정을 시작할 때, 제2곡 45행에 표현되었다. 비겁은 그의 안색으로 표시되었다. 단테의 안색이 ‘밖으로’(1행, di fuor) 나오자, 베르길리우스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감정을 ‘안으로’(3행, dentro) ‘자신의 새로운 (안색)’(3행, il suo novo)을 숨긴다. 그의 새로운 안색이란 아마도 화가나 울긋불긋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4. 그는 마치 경청하는 사람처럼 긴장해 서 있었다.
6. 왜냐하면, 그의 눈은 검은 공기를 지나, 무거운 안개를 지나.
5. 그를 멀리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전투를 이기는 자가 되어야한다.”
8. 만일 그렇지 않다면...그러나 그 위대하신 분이 도왔었다.
9. ‘누군가 나를 보러 내려오는 것이 얼마나 늦는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모두 내적으로 갈등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디스성문 앞에서 왜 도움이 늦는지 걱정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생각에 잠겼다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제8곡 122행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이 싸움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non sbigottir, ch’io vincerò la prova”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7행에서 사용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란 의미를 지닌 부사 ‘푸르’pur는 그의 마음속에 담긴 의심을 드러낸다. 그의 불안은 8행에 ‘세 논se non’이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승리하지) 못한다면’이란 자기의심이다. 그가 말하는 중에, 문장을 중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에 담지 못하고 중단한다. 이 중단은 14행에 등장하는 ‘parola tronca’ 즉 ‘토막난 말’로 표현되었다. ‘세논’과 ‘파롤라 트론카’는 ‘tal’이라는 부정대명사의 도래를 막연히 기다린다. 베르길리우스의 우려와 희망이 9행에 ‘누군가 나를 보러 내려오는 것이 얼마나 늦는지!’하고 단테가 듣지 못하게 속으로 푸념한다. 이 짧은 독백은 단테 <신곡>에 등장한 수사학의 최고 기술 중에 하나다. 8행은 제9곡 전체의 주제들 담은 문장이다. 천사가 내려와 도움을 줄지 의심하는 ‘세논’과 그대로 신의 개입에 대한 믿음인 ‘탈 네 소페르세’다.
10. 그러나 나는 그가 어떻게
11. 자신이 처음 시작한 말을 그 다음에 따라오는 다른 말로 덮었는지 잘 보았다.
12. 그것은 그가 전에 말한 것과 너무 달랐다.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14. 왜냐하면 나는 그의 토막난 말로부터
15. 그가 의도한 의미보다, 아마도, 더 비관적인 의미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18. “누가 형벌이 단절된 희망이 되어버린,
17. 이 첫 번째 둘레로부터
16. 이 슬픈 조개 껍데기와 같은 지옥으로 깊이 내려온 자가 있습니까?”
첫 번째 둘레는 베르길리우스의 고향인 림보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몰라서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만큼 내려온 적이 있습니까?”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이 내려 와 본적이 있다고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 내가 이렇게 질문하고 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20. “여기까지 온 자는 거의 없다. 우리 둘 중 하나(베르길리우스)가
21. 내가 지금 가려는 그 여정을 간 적이 있다.
22. 진실로 나는 이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23. 잔인한 에리톤이 나를 소환하였다.
24. 그녀는 (죽은) 그림자들을 그들의 육체로 되돌리는 자다.
그리스 마술사 언급은 단테의 창작이거나 중세 전설에서 베르길리우스가 마술사라는 주장일 수 있다. 에리톤은 테살리아의 무녀로 루카노스의 <파르살리아> 6에 등장한다. 그녀는 섹투스 폼페이우스의 청으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간의 전쟁 결과를 이야기해 줄 한 병사의 혼을 불러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시점은 성문 위에 있던 악마들은 방어 자세에서 공격자세로 전환한다. 성문 위에서 세 명의 분노의 여신들이 메두사를 불러, 단테를 돌로 만들라고 소리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눈을 가린다. 세 명의 분노의 여신들은 베르길리우스의 시에서 ‘에린니에스’ 혹은 ‘에우메느데스’로 등장한다. 그들은 친족에 대한 범죄자를 벌주는 자들이다.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삼부작 ‘오레스테스’에서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쫒아 온다. 그들은 베르길리우스나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다 단테 작품에서 더욱 악마적이다. 제3막의 절정은 메두사를 부르는 장면이다.
25. 살이 나에게서 벗겨진지 얼마 되지 않아,
26. 그는 유다의 환에서 한 영혼을 빼내고자,
27. 나를 지옥의 모든 환들을 내려가게 만들었다.
28. 그것은 보다 깊고 어두운 장소다.
29. 모든 것을 돌리는 하늘에서 아주 멀다.
30. 내가 그 여정을 잘 아니, 너는 마음을 놓으라.
31. 굉장한 썩은 냄새를 내뿜는 이 늪은
32. 슬픈 도시를 두르고 있었다.
33. 분노 없이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베르길리우스가 약속한 tal, 즉 ‘그분’은 지옥으로 내려와 굳게 닫힌 디스 성문을 열고, 그들의 감추고 싶은 의도적인 해악을 적나라하게 알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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