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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 신선봉 비탈길 진달래 연두색 잎사귀들>
분홍색 진달래 시들어지니, 야산은 온통 연두색 ‘뜻밖의 주인’이 등장하였다. 이 주인은 자신을 연두색軟豆色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다 말라비틀어진 낙엽들 사이에서 연두색으로 치장한 연약한 잎들이 승천하기 시작하였다. 부드럽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잎들이다. 이들은 봄이 서서히 지나고 여름을 알리는 전령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실은 ‘해뜨기 전’(VOR SONNEN-AUFGANG)이란 글에서 ‘영원한 회귀’를 수련하는 태양을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Oh Himmel über mir, du Reiner! Tiefer!
Du Licht-Abgrund! Dich schauend schaudere ich vor göttlichen Begierden.
In deine Höhe mich zu werfen das ist meine Tiefe!
In deine Reinheit mich zu bergen das ist meine Unschuld! Den Gott verhüllt seine Schönheit: so verbirgst du deine Sterne. Du redest nicht: so kündest du mir deine Weisheit. Stumm über brausendem Meere bist du heut mir aufgegangen, deine Liebe und deine Scham redet Offenbarung zu meiner brausenden Seele. Dass du schön zu mir kamst, verhüllt in deine Schönheit, dass du stumm zu mir sprichst, offenbar in deiner Weisheit: Oh wie erriete ich nicht alles Schamhafte deiner Seele! Vor der Sonne kamst du zu mir, dem Einsamsten.
오, 내 머리 위의 하늘이여! 그대 청명한 자여! 심원한 자여!
그대 빛의 심연이여! 그대를 바라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 신선한 욕망으로 전율한다.
그대의 높이로 나를 던져 올리는 것, 그것이 나의 깊이다.
그대의 순수함 속에 나를 숨기는 것, 그것이 나의 순진무구함이다. 신의 아름다움이 신의 모습을 가리듯, 그대 하늘은 그대의 별들을 숨긴다. 그대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대는 자신의 지혜를 내게 알린다. 그대는 오늘 사나운 바다 위로 말없이 나에게 떠올랐고 그대의 사랑과 그대의 수치는 나의 사나운 영혼의 계시를 말한다. 그대가 그대의 아름다움에 숨어서 나에게 아름답게 왔다는 것, 그대가 그대의 지혜를 드러내면서 말없이 나에게 말한다는 것. 오, 어떻게 내가 그대 영혼의 온갖 부끄러움을 짐작하지 못할 것인가! 태양에 앞서서 그대는 나를, 가장 고독한 자를 찾아왔다.
니체는 태양을 가장 청명한 자이면서 가장 심원한 자로 상호모순적인 구절로 표현한다. 심지어 태양을 ‘빛의 심연Du Licht-Abgrund’으로 부른다. 빛이 등장하기 위한 기반은 빛이 없는 상태, 즉 어둠이다. 그 어둠은 만물을 존재하게 만드는 거대한 수용체이며 기반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빛이 등장하여 우주가 생성되기 위해선, 축축Nu, 빔Hu, 어둠Kuk, 그리고 알 수 없음Amun이 선재해야한다. 이 선재적 혼돈은 빛과 빛의 속성인 뽀송함, 채움, 밝음, 그리고 알 수 있음이 등장하기 위한 발판들이다.
니체는 생명의 등장은 인간이 상상하고 기대한 틀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 밖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데카르트의 이성주의와 헤겔의 정반합이라는 세계현상을 이해기 위한 시대정신을 뒤엎고, ‘뜻밖’이야말로 가장 고전적이며 ‘오래된 귀족’이라고 노래한다.
“Von Ohngefähr, das ist der älteste Adel der Welt, den gab ich allen Dingen zurück, ich erlöste sie von der Knechtschaft unter dem Zwecke. Diese Freiheit und Himmels-Heiterkeit stellte ich gleich azurner Glocke über alle Dinge, als ich lehrte, dass über ihnen und durch sie kein „ewiger Wille” will. Diesen Übermut und diese Narrheit stellte ich an die Stelle jenes Willens, als ich lehrte: „bei Allem ist Eins unmöglich Vernünftigkeit!“ Ein Wenig Vernunft zwar, ein Same der Weisheit zerstreut von Stern zu Stern, dieser Sauerteig ist allen Dingen eingemischt: um der Narrheit willen ist Weisheit allen Dingen eingemischt! Ein Wenig Weisheit ist schon möglich; aber diese selige Sicherheit fand ich an allen Dingen: dass sie lieber noch auf den Füssen des Zufalls tanzen.
‘뜻밖이란 주님’ 이야말로 세계의 가장 오래된 귀족이다. 나는 이 귀족을 만물에 되돌려주었고, 만문을 목적이라는 노예상태에서 구해주었다, 어떠한 ‘영원한 의지’도 만물 위에서 군림하거나 그것을 의욕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내가 가르쳤을 때, 나는 이 자유로운 천상의 명랑함을 하늘 색 종처럼 만물 위에 걸어놓은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불가능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곧 합리성이다‘라고 내가 가르쳤을 때, 나는 저 의지의 자리에 자유분방함과 어리석음을 앉힌 것이다. 약간의 이성, 별에서 별로 흩어져 있는 지혜의 씨앗, 이 효모는 만물에 섞여있다. 지혜는 이 어리석음을 위해 만물에 섞여있는 것이다. 약간의 지혜는 이미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만물에서 이러한 행복한 확신을 발견했다. 만물은 오히려 우연이라는 발로 춤추고자 한다.
니체는 ‘뜻밖Von Ohngefähr)’을 귀족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로부터’라는 의미를 지닌 von을 접두하여 표현한다. 이 낱말은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지 않은 우연이란 의미로 Zufall과 구분된다. 흔히 한국어로 ‘뜻밖’으로 번역한다. 니체는 von이 종종 Johann Wolfgang von Goethe처럼 귀족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뜻밖이란 주인’으로 번역하였다. 어떤 목적이나 신적 섭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일어나는 것이 ‘뜻밖’이다. 니체의 핵심개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순진무고하고, 자유분방하고 그리고 뜻밖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이성적 요구에 시달려왔다. 그 요구는 세계를 자신이 아는 합리적 세계 안으로 수용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세계는 시시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런 시도는 시도에 불과하다. 인간 이성으로 도달 할 수 없는 깊은 심연, 그것은 오히려 비이성적이고 바보처럼 멍청해 보이기도 한다. 이제 세상을 이러저리 엮은 무기력한 이성의 거미줄을 자르고, 그와 함께 세상을 덮고 있는 음습한 기운과 구름을 모두 날려 보내야한다.
니체는 지혜는 오히려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똑똑함에 있지 않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어리석음에 섞여 있다고 증언한다. 니체는 이 문장에서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말한 우주의 모습을 전복시킨다. 플라톤은 신적인 조물주는 우주의 영혼을 섞어 별들 속에 영혼의 씨앗을 뿌렸다(41d-42d). 그런 우주에서는 비이성적인 힘이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 산책길에서 본, 우중중한 낙엽들 사이에서 본 ‘연두색’은 뜻밖이다. 그 뜻밖의 주인이 여름을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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