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3.(水曜日) “방랑자放浪者”

[사진]

<솔밭은 걷는 단테>

이탈리아 화가 카를로 오스트리Carlo Wostry (1865–1943)

유화, 1908, 93 × 94 cm

라벤나, Museo e Casa Dante

 

나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오롯이 가고 있는가? 아니면, 느닷없이 등장하는 장애물을 피하기도하고 밟기도 하면서 정진하는가? 오롯이 가는 것을 불가능하다. 시간과 공간, 나와 너,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등장하여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나는 간다. 아니 어쨌든 간다. 내가 그렇게 걸어야만할 이유가 있다면, 그ㅜ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긴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영위하였다. 미리 정해진 장소를 향해 가는 ‘목적이 이끄는 여정’이 아니라, 매 순간 목표를 선정해야하는 ‘방랑’이었다. 자신의 삶을 굴곡이 없는 평원을 유유자적하며 걷는 산책이 아니라, 저 높은 곳에 있는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매일 매일 조금씩 자신의 근육을 늘려야하는 등산이라고 정의하였다.



니체는 단테의 림보에 등장하는 엘리시움과 같이 외부와는 괴리된 ‘행복한 섬’을 떠난다. 그 섬의 삶은 인간적인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거친 파도를 견디며 바다 위를 항해하는 여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승선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시도했던 등산을 다음과 같이 소회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첫 번째 글이자 전체 80개의 글들 중, 46번째 글이다. 이 글은 ‘데어 반데러’Der Wanderer 즉 ‘방랑자’란 글의 첫 부분이다.

UM Mitternacht war es, da nahm Zarathustra seinen Weg über den Rücken derInsel, daß er mit dem frühen Morgen an das andre Gestade käme: denn dort wollte er zu Schiff steigen. Es gab nämlich allda eine gute Reede, an der auch fremde Schiffe gern vor Anker gingen; die nahmen manchen mit sich, der von den glückseligen Inseln über das Meer wollte. Als nun Zarathustra so den Berg hinanstieg, gedachte er unterwegs des vielen einsamen Wanderns von Jugend an und wie viele Berge und Rücken und Gipfel er schon gestiegen sei.

한밤중이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른 아침에 다른 해안에 이르려고, 그 섬 능선 위로 넘어갔다. 그가 거기서 배를 탈 생각이었다. 그곳에는 좋은 부두가 있어 외국 배들도 정박하기를 좋아했다. 그 배들은 행복한 섬을 떠나 바다를 건너가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오르면서,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온 많은 고독한 방랑을 회상했다. 그 얼마나 많은 산과 능선과 산꼭대기를 올랐던가!


이내 니체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자신의 심장에 대고 삶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되새기고 맹세한다:

Ich bin ein Wanderer und ein Bergsteiger, sagte er zu seinem Herzen, ich liebe die Ebenen nicht, und es scheint, ich kann nicht lange still sitzen. Und was mir nun auch noch als Schicksal und Erlebnis komme – ein Wandern wird darin sein und ein Bergsteigen: man erlebt endlich nur noch sich selber. Die Zeit ist abgeflossen, wo mir noch Zufälle begegnen durften; und was könnte jetzt noch zu mir fallen, was nicht schon mein Eigen wäre! Es kehrt nur zurück, es kommt mir endlich heim – mein eigen Selbst, und was von ihm lange in der Fremde war und zerstreut unter alle Dinge und Zufälle.

그는 “나는 방랑자放浪者이고 등산가登山家다”라고 자신의 심장에 대고 말했다. “나는 평원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나에게 어떤 운명이 오던, 어떤 체험이 오던, 거기에는 방랑과 등산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 나에게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이미 나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것으로서, 이제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되돌아 올 뿐이다. 그것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고유한 자기 그리고 자기를 떠나 오랫동안 낯선 곳을 떠돌며 온갖 사물과 우연 사이에 흩어져 있던 것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니체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백, 즉 ‘나는 방랑자이며 등산가다’라는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얼마나, 정해진 길을 걸어가는 답습자였는가? 남들이 옳다고 인정한 길에 들어서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얼마나 불안해하고 초조했는가? 새로운 것이란, 거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어떤 것의 재발견이다. 내가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영적인 현미경이 없어, 자연을 그져 스쳐 지나왔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개선의 시작은, 상대방을 그져 보는 자신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그져 보기는, 어제까지 보아왔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하고 왜곡하여, 그 일부분 보기다. 그져 보지 않기 위해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응시해야한다. 그런 응시 훈련만이 나와 자연과의 관계, 나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훌륭하게 만든다.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솔로몬이 <전도서> 1.9에서 이렇게 말한다.

מַה־שֶּֽׁהָיָה֙ ה֣וּא שֶׁיִּהְיֶ֔ה

וּמַה־שֶּׁנַּֽעֲשָׂ֔ה ה֖וּא שֶׁיֵּעָשֶׂ֑ה

וְאֵ֥ין כָּל־חָדָ֖שׁ תַּ֥חַת הַשָּֽׁמֶשׁ׃

“과거에 있던 것들은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것들은, 미래에도 만들어 질것들입니다.

태양 아래 존재하는 것들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니체가 자기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던 ‘영겁회귀’를 솔로몬은 존재와 그 존재의 표현인 물건으로 기술하였다.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은, 미래에도 다시 존재할 것이며, 그 존재의 가시적인 표현인 물건도 언젠가는 다시 나타탈것이라는 선언이다. <전도서>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태양계로 확장하여, 태양아래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새로운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니체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올라야할 정상에 오른다. 그 장소는 새벽이 되면 자신만의 홰에 올라 목청껏 울어재끼는 수탉과 같다. 그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시간을 노래할 뿐이다. 자신이 오른 홰는 그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내려와야할 심연이다. 정오에 하늘 끝에 도달한 해는, 이제 바다 밑,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니체에게 정상은 곧 심연이고 심연은 곧 정상이다. 니체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Und noch eins weiß ich: ich stehe jetzt vor meinem letzten Gipfel und vor dem, was mir am längsten aufgespart war. Ach, meinen härtesten Weg muß ich hinan! Ach, ich begann meine einsamste Wanderung! Wer aber meiner Art ist, der entgeht einer solchen Stunde nicht: der Stunde, die zu ihm redet: »Jetzo erst gehst du deinen Weg der Größe! Gipfel und Abgrund – das ist jetzt in eins beschlossen! Du gehst deinen Weg der Größe: nun ist deine letzte Zuflucht worden, was bisher deine letzte Gefahr hieß!

그리고 나는 한 사실을 더 안다. 지금 나는 나의 마지막 정상, 나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들 앞에 서 있다. 아, 나는 더없이 험난한 나의 길을 가야한다! 아, 나는 더없이 고독한 나의 방랑을 시작해야 한다!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그와 같은 시간을 피하지 못한다. 그 시간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비로소, 그대는 위대함에 이르는 그대의 길을 간다! 정상과 심연, 그것은 이제 하나로 뭉쳤다. 그대는 위대함에 이르는 그대의 길을 간다. 지금 그대의 마지막 위험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대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었다!


정상은 심연이고 심연은 정상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은 인생이라는 여정의 다양한 이름일 뿐이다. 나는 오늘 매순간을 첨예하게 인식하는 방랑자인가? 시작이 끝이고 정상이 심연인 등산을 시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