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2. (火曜日) “국치國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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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에 모인 국회의원들>

 

이광재의원이 며칠 전 오늘 오후 5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국회도서관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예고하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사실에 놀랬다. 하나는, 대한민국 의식 수준에서 그런 연설을 주선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한민국은 졸부猝富이기 때문이다. TV는 온통 뭘 사라고 요구하거나, 철지난 염세주의 노래에 대한 모창, 혹은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달랜다는 미명아래 말장난 잔치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프로그램에 세뇌되고 중독이 된지 수십년이다. 그런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그런 말초적인 행복에 중독되어있어 있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지금, 나치스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황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의 미디어는 24시간,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고통과 러시아의 만행을 자세히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반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비교하여, 동아시아 강국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비중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검수완박’이라는 괴기한 단어로가 대한민국을 볼모로 잡아 나라전체를 하수구에 쳐 넣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용어를 만들어 냈는지 모르지만, 정말 처참하고 우리 지적수준을 드러내는 말장난이다. 언제부터 우리 삶에 이런 싸디싼 약어들이 온 미디어와 출판업계에 침투하였다. 한글이 지닌 아름다운 발음과 운율을 파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회의원 이광재 의원이 대한민국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모임을 주선했다고 하니, 이외이지만 희망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화상연설이 일어나는 장소다. 그 장소가 국회 대회의장이 아니라, 국회 도서관이란다. 아직 후진국인 대한민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체면상 열었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그 화상연설 장소를 엉거주춤한 장소인 도서관으로 잡았다. 대회의장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과 결단의 장소이지만, 도서관은 홀로 중간고사를 위해 몇 줄 암기하려는 소극적인 장소다. 내가 직접 물은 것은 아니지만, 이광재의원이 대회의장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을 것이 뻔하다. 이번 선거에서 주요 정치인들이 젤렌스키를 폄하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젤렌스키는 코메디언이었다가 그가 출현한 TV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 어쩌나 대통령이 된 허수아비였다. 그들에게 대통령이란 이정도가 되어야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머리에 고시합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 띠를 머리에 두르고 도서관 귀신에 되어, 주구장창 자신하고는 상관이 없는 지식들을 몽땅 암기해야한다. 대통령이란 그런 야만적인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로또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그런 리더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극적悲劇的이었는가! 비극은 행복에서 시작했다 불행으로 끝난다. 그리스 비극은 영웅이나 통치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법전에서나 나올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 예들들어, 자유, 공정, 평등, 기회, 민주주의, 국민과 같은 단어들을 즐겨 사용한다. 그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레스테스나 오이디푸스처럼, 어쩌다 왕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을 들려다본 적이 없기에, 모두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오만’이다. 오만은, 자신의 지위가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 권력남용이려는 건방이다. 그런 건방은, 주위에 도사리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아둔으로 이어지고, 아둔은 급기야, 자기를 살해하는 자기복수로 끝난다. 오만-아둔-복수가 비극적 리더의 삼요소다.


젤렌스키는 비극인이 아니라 희극戲劇인이다. 희극은 불행에서 시작하여 행복으로 끝난다. 인위적이며 근사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알리에리 단테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지옥에서 처절하게 자신의 허물을 벗겨내고, 연옥에서 각고의 수련을 거쳐, 자신도 모르게 천국에 이른다. 희극인은, 시대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산 시대가 불행하여,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반딧물이다.


저녁에 극회도서관에 모인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보았다. 여야 지도부를 비롯해 21대 국회의원들 300명중 60명만 참석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하는 순간이다. 누가 이들을, 아니 여기 참석하지 않는 자들을 선출했는가? 내가 그들을 선출했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한 모든 나라들 중 대한민국은, 가장 적의 참석자 수를 기록했다. 저 텅 빈 좌석은 우리가 내다버린 양심과 연민이다. 선진국은 누구의 구호나 정책이 아니라, 깨어있는 개인의 양심이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아우러져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 뉴스에서 러시아산 킹크랩 가격이 떨어지자, 너도나도 킹크랩을 마구 구매해 먹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국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