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31. (木曜日) “빈둥”

[사진]

<모네 부인과 아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유화, 1875, 100 cm x 81 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어거스틴의 삶을 전폭적으로 변화시킨 ‘오티움’ 즉 ‘여유’은 지적이며 철학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는 자비로 1855년, 37세의 나이에 출간한 <풀잎>Leaves of Grass로 시인으로 데뷔한다. 그는 누가 인정하는 시인이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목청껏 자유롭게 부르는 노래하는 인간으로 여겼다. Song of Myself라는 시가 들어간 이 시집을 당시 시인들이나 지식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를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 한명이 있었다. 그는 당시 미국의 문화와 문학의 시금석을 마련하던 구루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다. 에머슨의 칭찬은 불신과 폄하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휘트먼에게 생명줄이 되었다. 에머슨의 친절한 격려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가장 미국적인 사상가로 등극시켰다.


휘트먼은 1871년, 50살 정부 말단 공무원이었을 때, 이제 막 시작한 미국 민주주의가 존재론적인 의미와 영혼을 잃어버릴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감지하였다. 그때 그가 쓴 에세이가 <데모크래틱 비스타스Democratic Vistas>다, 그는 미국의 평창시기(19세기 하반기)와 남북전행 후에 진행된 물질주의를 규탄하였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 천해졌으며, 도덕적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문학文學’이라고 주장하였다. 국가보다도, 헌법보다도, 행정부나 사법부보다도 시인 두세명이 미국에게 정체성을 줄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문학은 공동체의 가치를 마련하는 비계이며 세상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문학이 도덕적 개성과 정치적인 이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그리고 다른 위대한 문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들의 문학이다. 영국 셰익스피어, 독일 괴테, 이탈이아의 단체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필가들, 특히 시인이 한 나라의 정체성과 개성을 규정하고 향상시킨다. 인간의 감정과 영혼을 울리지 못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 국가의 영혼을 구원하는 자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시인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충성은 선거 때면 들려오는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에 안착된 그 공동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의 실천들이다. 문학, 시와 산문은 그 공동체의 남녀노소에게 개성을 발휘하는 다양한 방식들과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휘트먼이 말하는 문학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영향은 그의 Song of Myself에 잘 드러난다. 이 시의 첫 단락은 이렇다.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I loafe and invite my soul,

I lea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휘트먼은 이 시에서 탐구와 응시의 대상은 ‘자기-자신’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발견하기 몸을 움직여 해야 할 두 가지 행위를 loafelean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로프loafe’는 흔히 ’하는 일 없이 심심해서 빈둥거리다; 방황다다‘라는 뜻이다. ‘lean린’는 ‘몸을 무엇인가에 눕히다’라는 뜻이다. 휘트먼은 자기응시를 위해, 스스로 타인과 구별하여 자신을 고독한 상황으로 인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어거스틴에겐 ‘오티움’이었지만, 휘트먼에겐 ‘로프’loafe였다.


시인은 자기를 찾기 위해, 빈둥거린다. 빈둥거림의 주체와 작동원인은 자신이다. 만일 ‘빈둥거림’의 원인이, 타인의 부재에서 온다면, 그것은 초라한 외로움이다. 이 빈둥거림은 오히려 자신을 주위로부터 구분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영적인 탐구다. 시인의 빈둥거림은 자기영혼의 소환召喚으로 이어진다. 영혼은, 그 존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호흡이다. 시인은 땅에 몸을 기대고 편하게 빈둥거리며, 여기저기서 피어로는 여름 풀잎을 관찰한다. 시인은 대지가 계절에 맞추어, 생명을 배태시키는 현장을 보면서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