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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28. (月曜日) “나르메르 화장판”

[사진]

<나르메르 화장판>

실트암, 기원전 3200–3000 BC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나르메르는 누구인가? 학자들은 나르메르를 고대 이집트의 첫 번째 파라오인 ‘메네스(Menes)’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나르메르’는 호루스 이름이고 ‘메네스’는 본명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이집트 예술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해석의 복잡성과 모호성으로 모든 학자가 수용하는 해석은 없다. 특히 이 화장판이 이제 막 등장한 이집트 통치자가 실제로 감행한 행위인지, 혹은 단순히 이집트인들을 치리하기 위한 선전인지, 아니면 왕의 열망을 담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나르메르 화장판의 앞면은 세로로 세 장면으로 구분돼 있고, 뒷면은 네 장면으로 구분됐다. 앞면은 상부 이집트(남부)의 왕인 나르메르가 하부 이집트(북부 델타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을 묘사했고, 뒷면은 나르메르가 이집트 전체를 통일한 후, 그것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먼저 화장판 앞면의 맨 위에 파라오가 행사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표현했다. 나르메르 화장판에서는 호루스가 생략됐거나 혹은 양편에 있는 ‘바트’라는 암소여신으로 대치됐다.


이 궁궐 안에 두 개의 그림글자가 등장한다. 위에는 ‘메기’, 아래쪽에는 건축할 때 사용하는 ‘정’이 그려져 있다. 왜 궁궐 안에 ‘메기’와 ‘정’을 표시했을까. 이 두 단어가 모여 무슨 의미를 창출하는가. 고대 이집트어로 ‘메기’는 ‘나아르(na‘ar)’으로 발음했고 ‘정’은 ‘압(ab)’ 혹은 ‘메르(mer)’라는 음가를 지녔다. 나르메르의 이름은 종종 ‘싸우는 메기’로 해석된다. ‘메기’는 공격적이며 다른 물고기를 지배하는 특성이 있다. 호루스를 대치한 두 황소 모양은 암소여신 ‘바트’를 묘사했다. 바트 여신의 뿔은 남성의 상징이 아니라 신성을 표시한다. 바트 여신은 후대에 다른 암소여신인 하쏘르 여신으로 대치됐다.



‘나르메르’라는 발음과 이름은 인류역사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이 오늘날과 같은 구강구조를 가지고 말을 하기 시작한 시점, 적어도 30만 년 전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 특히 치아와 목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들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다양한 말을 구사하는 동물이 진화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생인류가 문자를 발견해 문명을 시작한 시기는 불과 5100년 전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바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이집트 왕조의 시작은 이집트 성각문자의 탄생에서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100년, 인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소통의 도구인 ‘문자’를 발명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할 수 있는 특별한 법칙을 발명했다. 이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의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첫째, 표의문자(ideogram)다. 각각의 성각문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사물들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므로 일단 표의문자로 분류될 수 있다. 표의문자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문자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을 표현하기 위해 입 모양을 직접 그렸고 ‘르(r)’로 발음했다.


둘째, 표음문자(phonogram)다. 표의문자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표의문자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은 직접적으로 묘사가 가능한 사물로 제한된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낼 수 없는 대상이나 개념은 그 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언어의 음을 나타내는 문자를 표음문자라고 한다.


예를 들어 파라오 자신의 이름 ‘나르메르’를 표의문자로 표시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둘로 나누어 ‘나르’와 ‘메르’로 구분한 후, ‘나르’에 해당하는 문자와 ‘메르’에 해당하는 문자를 추적했다. 그는 ‘나르’라는 음가를 지닌 ‘메기’ 그림과 ‘메르’라는 음가를 지닌 ‘정’ 그림을 그렸다. 그런 후 ‘나르’와 ‘메르’는 이 단어들이 표현하는 그림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음가를 표시하는 기호로 사용했다. ‘나르메르’ 왕의 이름을 훌륭하게 표현한 셈이다. 이렇게 나르메르는 인류에게 문자를 가져다주며 역사를 시작했다.


이런 방식을 ‘레부스 법칙(rebus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의 음가를 빌려 발음하는 문자 체계다. 하나의 레부스는 특정 사물을 표현하는 그림으로서의 문자가 그 시각적인 의미를 잃고 문자 고유의 음가를 통해, 혹은 이러한 음가의 결합을 통해, 표의문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음가를 가진 또 다른 사물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결정사(determinative)다. 중기 이집트어의 경우 표음문자로 표기된 단어 맨 뒤에 표음문자를 첨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단어 말미에 첨가된 표의문자를 결정사라고 한다. 결정사에는 다음 두 가지 문법적 기능이 있다. 첫째, 결정사를 선행하는 문자들은 모두 표음문자로 간주돼야 한다. 둘째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 일반적인 범위와 종류를 규정한다. 예를 들어 ‘가다’라는 동사는 ‘페리(pri)’다. 이 동사는 ‘걷는다’라는 의미를 결정짓기 위해, 이 동사 뒤에 ‘걷고 있는 두 다리’ 기호를 첨가한다. 이 기호를 ‘결정사’라고 부른다.


기원을 수백 년 전까지 추정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나 한자와는 달리 이집트 문자체계는 기원전 3100년 갑자기 등장했다. 학자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유를 첫째, 이전의 문자체계가 목재 등과 같이 영속적이지 않은 매체에 기록됐기 때문에 소실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3100년, 나르메르를 포함한 일부 지식인이 레부스 방식이라는 과감한 방식을 통해 문자를 발명했다. 인류는 한 사회 안에서 그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징체계인 문자를 통해, 문명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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