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7. (日曜日) “세렉sere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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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왕조 파라오 제트의 무덤비문과 세렉>

 

‘화장품’이란 영어단어인 ‘코스메틱스(cosmetics)’는 인간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잘 알려준다. 인간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잠을 자기 마련이다. 잠을 잔다는 의미는 하루를 마감하고 새로운 날을 기약하는 의례다. 잠은 일종의 죽음이며, 혼돈의 상태로 저절로 또한 의도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다. 인간의 아침은 ‘혼돈’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깨워 새로운 ‘질서’도 진입해야 한다.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는 행위는 바로 자신의 ‘혼돈’에 빠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질서’를 주는 의식이다. ‘화장품’이란 밤새 혼돈에 빠진 얼굴에 인위적인 노력으로 ‘질서’를 주는 도구다. ‘질서’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인 ‘코스모스(kosmos)’에서 화장품이란 단어 ‘코스메틱스’가 유래한 것은 당연하다.


이집트 문명의 탄생, 혹은 인류 문명의 탄생의 과정을 ‘나르메르 화장판’보다 확실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혼돈 속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가 어떻게 문명이라는 질서를 구축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르메르의 통치는 왕권이 등장한 순간을 포착해 화장판에 새겨놓았다. 이 화장판은 이집트가 탄생한 선왕조시대의 삶과 이집트가 펼칠 미래 왕조문명의 특징을 모두 선명하게 담았다. 이 특징들을 분석하는 작업은 ‘리더’라는 개념이 등장과 이집트 역사의 시작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파라오는 이집트 문명의 정점일 뿐만 아니라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중간적인 존재로서 파라오는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지만 신적인 속성을 지니는 경계적인 존재다. 파라오의 이름은 이집트 통치자의 특성을 선명하게 표현한다. 고대 이집트어로 이름은 ‘렌(ren)’이다. 고대 이집트어는 그림을 통해 단어의 의미와 발음을 말한다. 첫째 자음 r은 ‘벌린 입’을 형상화한 문자다. 둘째 자음 n은 바다 물결을 형상화한 문자로 ‘물’을 의미한다. 물결의 움직임을 표시하기 위해 지그재그를 세 번 반복한 문자다. n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혼돈의 신인 ‘누(nw)’와 깊이 연결돼 있다. 만물은 ‘물결’이 상징하는 ‘혼돈’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의 결과다.


이집트인들에게 ‘이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혼돈의 물에서 질서의 육지를 형성할 때, 그 창조된 대상에게 준 명칭이다. ‘렌’이란 성각문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가 창조되기 전 혼돈의 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신이 입을 열어 자신의 의지를 말로 표현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름’이다.


이집트 고왕조시대의 제 5왕조(기원전 2494~기원전 2345년)부터 파라오는 다섯 개의 공식적인 이름을 가졌다. 이 다섯 개 이름 중 첫 번째 이름인 소위 ‘호루스 이름’은 기원전 3100년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명칭이다. 호루스 이름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돼 있다. 맨 위에는 호루스신을 상징하는 송골매가 직사각형 모양 위에 앉아 있다. 두 번째 부분은 호루스가 앉아 있는 정형화된 궁궐 모양이다. 이것을 고대 이집트어로 ‘세렉(serekh)’이라고 부른다. ‘세렉’이란 단어는 ‘알다’라는 동사 rh의 사역형으로 ‘알게 만들다’라는 동사 srh에서 파생했다. 세렉은 요철 형태로 지어진 진흙으로 건설한 이집트 궁궐의 홈이 파진 정면모양이다. 파라오의 궁궐 세렉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만들고 알려주는 어떤 것”이란 의미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세렉 위에 새겨진 파라오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