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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인류가 야만이란 도전을 극복하면서 등장한 최초의 문명들 중 하나다. 야만과 문명의 경계는 무엇인가? 문명은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원칙이다. 첫째 요소는 도시다. 도시는 인위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만든 추상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가족의 일원 혹은 더 넓게는 친척의 구성원으로 태어난다. 인류가 직계 가족을 넘어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9000년경이다. 인류는 그 전에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도 되는 사냥-채집으로 연명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인류는 유럽에서 이동해 동쪽으로는 이집트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팔레스타인, 터키,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이란 지역으로 들어와 농업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이 지역을 하나로 엮으면 초승달 모양이 나온다고 하여 고고학자들은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이라고 부른다.
비옥한 초승달은 오늘날 서양인들과 중-근동인들의 조상이 최초로 거주한 장소다. 인류는 이전에 채집사냥 경제에 의존해 살다가 농업을 통해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보리와 밀 같은 씨앗을 뿌려 수백 배를 수확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가축을 기르고 늑대와 같은 짐승을 길들여 사육하면서 동물들이 가진 병균과 접촉해 각종 전염병도 발생했다. 인류가 도시를 만들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100년경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장소가 아니라 정교한 행정망으로 하나가 된 추상적 공간이다. 이 추상적 공간을 하나로 묶어 도시를 완성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것이 문명의 둘째 원칙인 문자다. 문자는 낙서와는 달리 상호적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 기호가 돼야 한다. 기호는 자신의 정교한 생각을 전달할 만큼 다양하고 정교해 일정 기간 동안 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그 지역에서 거주하는 지식인들은 이 기호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고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이들의 다양성은 이곳에서 사용된 언어와 문자를 통해 추측 가능하다. 기원전 3000년경에 세 곳에서 문자가 거의 동시에 그림문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의 왼편인 이집트에서는 고대 이집트어, 초승달의 오른편인 이라크 남부에서 수메르어, 그리고 이란 남부에서 엘람어가 독립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리스와 라틴어가 속한 인도-유럽 어군의 가장 오래된 히타이트어가 기원전 1900년경 오늘날 터키에 등장했다.
고대 이집트어의 등장은 드라마틱하다. ‘나르메르’라고 불리는 왕이 상-이집트(남부 이집트)와 하-이집트(북부 이집트)를 통일한 과정을 눈과 얼굴 화장을 위한 화장판(化粧板)에 최초 이집트 문자와 함께 그 과정을 선명하게 새겨놓았다. 소위 ‘나르메르 화장판’에는 인류 최초의 문자와 인류 역사의 시작을 기록돼 있다. 그 중심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리더, 나르메르가 있었다.
이집트 문명의 중심은 통치자인 파라오다. 파라오와 그의 왕권은 고대 이집트 3000년 역사의 중심축이다. 이집트 문명은 초기 통치자들이 구축한 이집트 왕권을 기반으로 전개됐다. 나르메르는 이집트 문명을 건설한 초기 왕들 중 한 명이다. 그는 헤라콘폴리스에 위치한 호루스 신전에 양면이 박육조(薄肉彫)로 화려하게 새겨진 6.35㎝ 길이의 화장판을 바쳤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호루스 신전에서 파라오의 화장을 위해 실제 사용됐거나 전시됐다가, 후대에 다른 신전 용품들과 함께 근처에 의례를 통해 매장됐다. 그 후 거의 5000년이 지나, 고고학자 퀴벨이 이 화장판을 발굴했고 지금은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에 영구 소장 중이다. 이집트 당국은 투탕카멘의 보물들과는 달리, 이 화장판의 해외 전시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눈을 크게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휘안석(輝安石)에서 추출한 검은색 ‘콜(kohl)’을 사용해 눈 주위에 발랐다. 아이섀도의 기원이다. 그리고 초록색이 나는 ‘공작석(孔雀石·malachite)’ 가루로 얼굴 화장을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화장에 대한 열망은 ‘사자의 서’에 잘 드러나 있다. “왕들의 왕, 주인들의 주인, 통치자들의 통치자, 두 땅(‘상·하 이집트’)을 누트 여신(‘하늘 여신’)의 자궁에서도 소유하는 당신에게 찬양을 돌린다. 그는 조용한 땅의 평원을 통치하신다. 심지어 자기 육체의 금색을, 머리의 파란색을, 양팔의 청록색을 통치한다.”
거친 태양빛과 끝없이 펼쳐지는 하얗게 표백된 사막의 땅인 이집트에서 밝고 활력이 넘치는 색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특별하다. 색깔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이나 물건에 생명과 개성을 더해 준다. 고대 이집트어 단어 ‘이웬’(iwen)은 ‘색깔’이란 의미다. 그러나 이 단어는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자의 ‘본성’, ‘존재’ 혹은 ‘개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어떤 사람만의 ‘고유한 색깔’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그 사람만이 소유한 색으로 구별했다.
파라오는 화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화장판’은 파라오의 존재를 창조해주는 거룩한 물건이다. 화장판은 고대 이집트의 선왕조시대(기원전 3100~기원전2686년)에 얼굴과 몸 화장을 위해 화장 원료를 곱게 갈기 위한 유물이다. 화장판은 선왕조시대에 제사를 위한 장식으로 사용되다 후대에는 파라오와 귀족층의 실제 화장판으로 변했다. 장식을 위한 화장판은 그것이 발견된 헤에라콘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와디-함마마트(wadi-Hammamat)에서 채굴된 실트람(siltstone)으로 제작됐다.
5000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문명을 시작하는 시점에 등장한 나르메르 화장판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작업일 수 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와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광대해, 그것을 뛰어넘어 문명이 무엇인지, 리더가 누구인지에 관한 혜안을 얻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시도할 만큼 가치가 있다.
인류 역사 탄생의 순간을 화장판이 증언하고 있다. 이 초기 화장판에 등장하는 문자와 그림들은 이집트 사회의 원칙을 표현한다. 질서와 혼돈, 선과 악, 왕과 적군, 인간과 동물, 도시와 사막으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이원론을 표시한다. 리더는 질서와 선의 상징으로 혼돈과 악을 물리치는 선봉장이다. 리더의 이런 군사적인 면모는 후대에 등장하는 리더의 중요한 특징이 됐다.
이집트에서 아직 문자가 등장하기 전인 ‘선왕조시대’(?~기원전 3100년)에서 ‘초기왕조시대’ (기원전 3100~2686년)는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왕조, 왕권, 왕이라는 개념, 그리고 왕의 도상(圖像은) 오랜 기간을 거쳐 서서히 완성됐다. 나르메르 화장판이 발견된 헤라콘폴리스 신전은 초기왕조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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