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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징어가 발견한 빙하시대 기호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동굴로 내려가 동굴벽화를 그린 기원전 3만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네비브 폰 펫징어는 2010년부터 원시인들이 남긴 기하학적 기호가 새겨진 벽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 이전에는 동굴벽화에나 가끔 등장하는 기학학적 기호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거의 없었다. 앙드레 르루아 구랑이 프랑스 아르시쉬르 퀴르에 있는 동굴들을 발굴하면서 기호 연구를 시도했지만 문자의 기원까지는 연결시키지 못했다.
폰 펫징어는 자신이 탐사한 146개 동굴벽화에서 발견한 기하학적 기호들을 컴퓨터를 이용한 대량 분석 방법을 통해 이 기호들이 후대에 등장한 상징들, 특히 후대 문자의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굴벽화 기호들의 범위를 유럽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7만5000년 전 블롬보스 동굴(Blombos Cave)로 확장한다. 선사시대 상징의 권위자인 프랑스 고고학자 장 클르트(Jean Clottes)는 폰 펫징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폰 펫징어의 연구는 문자기원 연구의 새로운 시작이 됐다.
폰 펫징어는 유럽의 동굴벽화 연구를 통해 문자의 조상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호 32가지를 밝혔다. 그녀는 동굴벽화에 흔히 등장하는 낙서와 같은 기호들 안에서 기하학적 모형을 찾았다.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황소·말·들소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려져 있는 작은 기하학적인 상징에 매료됐다. 이 기하학적 표식들은 낙서와는 다르다. 이 표식들은 일정한 모형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공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3300년 메소포타미아 우룩 문자 단일 기원설이 다른 문자들, 특히 이집트 문자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다. 폰 펫징어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이집트의 성각문자 등 복잡한 문자들로 진화될 수 있는 원문자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은 곳은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의 그림과 기호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는 동굴들이다. 이 당시 누군가 단순하지만 강력한 추상적인 기호를 창안해냈고, 이것이 당시 구석기인들의 소통을 위한 ‘문자’가 됐다. 그녀는 이 동굴벽화에서 발견된 동그라미·삼각형 그리고 휘갈겨 쓴 기호가 인간의 첫 기호라고 가정했다.
이런 단순한 기호들은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정교한 표식이다. 인간만이 추상적인 기호를 통해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이 의도적인 기호를 만들 수 없다. 소통의 도구로 기호를 만드는 행위는 인간만의 문화다.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는 동굴벽화들의 장소와 연대를 측정한 후, 그 안에서 발견된 기호들을 살펴 반복되는 모양을 선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 라스 치메네아스에서 발견된 검은색 기호들을 일일이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폰 펫징어는 2013~2014년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에서 52개의 동굴을 방문했다. 그녀가 발견한 기호들은 점, 선, 삼각형, 네모, 지그재그 모형, 그리고 사다리, 손을 묘사한 스텐실 같은 복잡한 형태들이다. 그리고 기둥이 있고 지붕이 덮인 형태인 ‘지붕 모형’들과 동물 가죽 모습인 ‘가죽 모형’ 등이 발견됐다. 스페인 엘 가스티요 동굴에서도 지붕 모형이 다수 발견됐다. 이 모형들은 이후에도 북부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된 기호다. 학자들은 이 모형이 구석기 시대 거주지 혹은 배, 부족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기호라고 해석한다.
폰 펫징어는 수많은 기호의 분류를 통해 32개 기호를 추려냈다. 그녀는 이 표식은 기원전 10만 년 전부터 등장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하는 기원전 4만 년경 특별한 기호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손도장 스텐실과 수많은 점의 기호다. 기원전 1만6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붉은 사슴 치아로 만든 목걸이가 남서 프랑스 생제르맹 드 라 리비에르(Saint-Germain-de-la-Rivière)의 어린아이 무덤에서 발굴됐다. 이 치아에는 X, 별 모양, 그리고 직선들이 새겨져 있다. 이 기호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정한 모형의 반복성 때문에 어떤 것을 상징하는 기호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폰 펫징어는 이 기호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한다. 말이나 맘모스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그러나 누구나 단순한 기호로는 남길 수 있다. 이런 기호의 단순성은 인간들 간의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중요하다.
폰 펫징어는 빙하기 시절 유럽 동굴벽화에서 발견된 32개의 기호를 정리했다. 이 기호들은 동물 모형을 그리지 않은 추상적인 형태들로 기원전 4만 년에서 기원전 1만 년까지 사용됐다. 3만 년 동안 사용된 이 기호들은 누군가 소통의 목적을 가지고 창제한 문자다. 이 기호들 가운데 1인칭 대명사인 ‘나’에 해당하는 기호가 있을까? 빙하기 시대 예술가들은 이 기호들을 붉은색으로 장식했다. 그들은 황토를 일정한 온도로 열을 가해 자신들이 원하는 색을 추출하고 자신들의 새긴 기호에 입혔다.
이 32가지 기호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소통을 위해 사용한 일종의 구석기 시대 문자다. 이런 기호들이 유럽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다. 북미·남미·아프리카·호주·동남아·인도 그리고 중국에서도 유사한 기호들이 빙하기 시대에 기록됐다. 아쉽게도 현재의 연구 수준으로는 이들의 정확한 개별 의미와 연관성을 증명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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