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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자화상>
유화, 1918, Le Cateau-Cambrésis
Musée Départemental Henri Matisse, Le Cateau-Cambrésis
물표는 다음의 세 가지를 통해 문자와 문명의 탄생을 위한 발판이 됐다.
첫째, 셈하기다.
물표는 인류에게 숫자와 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줬다. 그것은 추상이기도 하다. 셈하기는 추상의 능력이다. 추상이란 한 대상을 깊이 관찰한 후에 얻어지는 극도의 단순함이다. 대상을 자신이 가진 한 관점으로 보고, 그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제거하는 행위다. 추상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을 잡아내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현대 추상화 그림을 보면서, 흔히 “어린아이 그림 같아” 혹은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어!”라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추상화에 대한 오해에서 온다. 추상화의 시작은 오히려 구체적인 실재에 대한 심오한 응시에서 출발한다. 그 구체에서 덜 중요한 부분들을 제거하면 된다. ‘덜 중요한 부분들’이란 그 대상의 본질을 묘사하는 데 생략해도 되는 것들이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스튜디오는 3층으로 돼 있었다. 1층에는 자신이 그리려는 대상, 모델이나 물건이 놓여 있었다. 2층에는 푹신한 의자가 있어 그 대상에 대한 한 가지 본질을 가려내는 상상훈련을 한다. 그는 기억과 상상의 과정을 거쳐 그 대상을 극도로 단순화해 한 가지 선이나 점 혹은 색을 생각해 낸다. 그런 후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 종이, 그리고 물감과 붓이 있다.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 단순한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이런 단순화 과정을 거치면, 그 대상의 구성하는 구체적인 형태들은 사라졌지만, 그 대상이 주는 인상, 그 ‘대상다움’을 표현된다.
둘째, 물표는 문명 활동의 핵심인 ‘경제’의 등장과 일치한다.
경제는 사실 기원전 8000년경에 농업이 시작하면서 등장했다. 물표는 자신들이 수확한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관리하고, 자신 속한 공동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했다. 단순한 물표는 물건과 거래물품들을 위한 상징이고, 복잡한 물표는 마을과 도시생활을 위해 산출된 다양한 물건을 표시하고 저장하는 행정체계의 기반이 됐다.
셋째, 인류가 인식의 혁명인 추상(抽象)을 자신의 삶에 유입했다는 사실이다.
추상이란 한자는 두 개의 단어로 이뤄져 있다. 한자 ‘抽’(추)는 ‘뽑아내다, 제거하다, 부수다’라는 의미다. 추는 ‘손 수(手)’자와 ‘말미암을 유(由)’로 구성됐다. ‘추상’이란 그 대상이 그 대상이 된 ‘까닭(도리)’을 알기 위해 ‘손’으로 거추장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추상을 영어로는 ‘앱스트랙트(Abstraktes)’라고 부른다. 교수가 되면 1년에 한두 번씩 자신의 연구 성과를 다른 학자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의례가 있다. 논문 전문뿐만 아니라, 그 전체 논문의 핵심을 A4용지 반 장 정도로 요약해 발표해야 한다. 요약본엔 자신이 주장할 내용의 핵심을 담아야 한다. 이런 요약본을 영어로 앱스트랙트 즉, 추상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물표의 발견으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마을에서 도시로, 구체에서 추상으로 도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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