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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봉투>
이란 수사, 기원전 3300
2022.3.23. (水曜日) “문자의 기원: 물표이론物票理論(2)”
물표는 도시 경제활동의 재분배와 숫자가 창의적으로 만나 정교한 형태로 진화한다. 기원전 7500년경 물표의 숫자는 12개였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해져 기원전 3500년엔 350개가 됐다. 다른 지역과 장거리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새로 수입하거나 만든 물건들, 예를 들어 양털이나 금속과 같은 원자재뿐만 아니라, 옷감, 옷, 보석, 빵, 맥주, 꿀과 같이 가공을 마친 자재를 위해 새로운 물표가 등장했다. 원자재를 표시하는 ‘단순한 물표’ 이외에, 가공된 자재를 위한 ‘복잡한 물표’가 자연스럽게 많이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우룩에서 발견된 물표들 중 16%가 ‘복잡한 물표’다.
한 물건을 하나의 모양으로 표시하는 단순한 숫자 계산에서 10진법이나 60진법으로 진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발견됐다. 물표와 숫자의 등장은 도시문명의 핵심인 행정체계의 근간을 마련해줬다. 신전 관리는 신전창고에 있는 진짜 물건을 표시하는 진흙 물품명세서를 종류별로 정의한다. 사람들은 물품은 보관용으로 혹은 세금으로 바친다. 물표는 창고 안에 얼마나 많은 물품이 보관되었는지를 기록한다. 물표는 문자의 등장 이전에 물건의 수량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됐다.
신전 관리는 보리 일곱 단을 어떻게 표시할 것이다. 그는 보리 일곱 단을 십자모양 표식을 일곱 개 만들어, 그 수량을 표시할 수 있다. 혹은 십자모양을 번거롭게 일곱 번씩으로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고안해냈다. 진흙 위에 십자 모양을 하나 그려놓고, 그 옆에 세로로 일자표시를 일곱 번 반복한다. 이 일자표식은 보리 한 단을 상징하는 십자표시에 대한 기호다. 우리는 이 상징 기호에 대한 기호를 ‘숫자’라고 부른다.
숫자는 이미 상징화된 표식에 대한 더 깊은 상징이다. 이 토판문서는 기원전 3500년경 이란 수사에서 발견됐다. 토판문서의 위쪽에 동그란 구멍이 세 개 나 있고, 그 아래에 숫자 1자 모양의 형태가 새겨져 있다. 학자들인 이 토판문서의 동그라미가 그의 하는 세단의 곡식과 숫자 1로 표시된 다른 네 단의 곡식을 표시한 일종의 신전 영주증이라고 해석한다.
기원전 3000년대를 시작하면서 물표를 보관하는 두 가지 방식이 등장한다. 하나는 물표에 구멍을 내어 하나로 연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진흙 봉투에 물표들을 집어넣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다양한 물표를 모아 경제행위를 하다는 두 사람의 계약을 완결한다. 점점 행정이 복합해지면서 조그만 물표를 넘어서는 진흙 토판이 등장한다. 다양한 원자재를 한꺼번에 표시할 수 있는 방안이 등장한다. 기원전 3500년부터 진흙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이 난 물표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혹은 다양한 물표를 담을 수 있는 소위 ‘봉투 진흙 토판’이 등장한다. 신전관리는 다양한 물품을 표시하는 단순한 물표와 복잡한 물표를 함께 정리하기 위해, 속이 빈 진흙 봉투를 만들어 그 안에 물표들을 집어넣는다. 이 단계가 바로 후에 등장하는 토판문서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다.
일부 물표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구멍을 지닌다. 물표에 난 이 구멍은 크지 않으며 물표의 윗부분이나 중간이 나 있다. 예를 들어 구체형은 중간에, 원통형이나 원뿔형은 끝 부분에, 삼각형은 위쪽 끝에 나 있다. 이들은 모두 물표를 만든 진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 만들어졌다. 학자들은 이 구멍이 난 물표들의 지형적인 그리고 시기적인 분포를 통해, 소위 ‘복잡한 물표’들이 보관한 장소에만 한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랍게도 터키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구멍 난 물표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에서만 발견된다. 특히 이라크의 우룩과 우르, 그리고 이란의 초가 미쉬와 수사에서 다량으로 나왔다. 우룩에서 발견된 물표들 중 14.7%가, 이란 수사에는 27%가 구멍 난 물표다. 구멍 난 물표가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4000년대다.
구멍 난 물표는 기원전 3500년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이 물건은 이전보다 더 진화한 거래 영수증이다. 길이 6.5㎝X2.5㎝의 기다란 진흙 위에 다양한 동물이 걷고 두 사람이 팔을 올린 채 환영하는 모습이다. 이 진흙 덩어리는 양쪽이 끈이 달려 일련의 구멍 난 물표들과 연결돼 있어 마치 목걸이 모양 같다. 하지만 이 복잡한 물표들 하나하나는 중요한 경제적인 거래를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섯 개 원반 물표가 연결돼 있다면, 이것은 옷감 5개와 관련된 거래다. 이 진흙 위에 새겨진 그림들은 200년 후에 등장할 그림 문자들의 조상인 셈이다.
진흙 봉투는 이란의 수사에서 처음 발견됐다. 처음에 진흙 봉투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진흙 봉투들이 물표를 담는 봉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담은 물표의 내용을 그 봉투 외부에 표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진흙 봉투 뒤쪽으로 구멍이나 있어 아래에 있는 물표들을 담았다. 진흙 봉투 아래에 있는 11개 물표는 단순한 물표와 복잡한 물표들이 섞여 있다.
물표를 해석하는 열쇠는 초기 수메르 문자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단순한 물표와 복잡한 물표는 각기 다른 물건을 의미한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에 물표는 상징기호로 점점 불어나는 물건들을 표시하기 위해 점점 불어났다. 서양 문자들은 라틴어에서 왔고, 라틴어는 그리스어, 더 거슬러 올라가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어 문자와 한자는 자신들이 고안해 낸 독특한 그림문자를 각각 3000년과 4000년 동안 사용했다. 인류최초의 문자 수메르어에는 물표에서 진화했다. 동물을 표시하는 복잡한 물표는 후에 수메르 그림문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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