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2. (火曜日) “문자의 기원: 물표이론物票理論(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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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표>

기원전 3300, 우룩

하이델베르그 대학 박물관

2022.3.22. (火曜日) “문자의 기원: 물표이론物票理論(1)”

문자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무슨 과정을 거쳐 문자가 등장했을까? 근대 이전 서양인들은 신이 직접 문자를 만들어 인간에게 줬다고 믿었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다. 십계명은 ‘신의 손가락이 직접 써서’ 모세에게 준 율법이다. [로빈슨 크루소]를 저술한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1660~1731)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신이 쓴 두 개의 글자 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에 관한 에세이](1726)라는 책에서 두 가지 글자 표를 소개한다. 하나는 신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십계명과 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이 창제한 히브리어다. 그는 유럽의 모든 알파벳이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다.

수메르 신화에서 대니엘 디포에 이르기까지 문자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문자는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들 중 어느 것도 단순한 소통체계에서 복잡한 소통체계로 진화된 과정을 가정하지 않는다. 문자가 완벽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생각은 18세기까지 지속됐다.

영국 글로스터의 주교였던 윌리엄 워버튼(William Warburton, 1698~1779)은 문자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첫 번째 학자다. 그는 중동·남미 그리고 동양 여행자들이 가져온 고대 이집트어·중국어 그리고 아즈텍 문헌들을 비교 분석해 이야기를 설명하는 그림에서 모든 문자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림문자들로 시작된 문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간소화되고 나중에는 원래 그림을 추적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으로 남게 됐다. 그는 자신의 저서 [모세, 신의 사절](1738)에서 이 같은 그림문자 이론을 주장했다. 워버튼의 주장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와 달랑베르가 공동 편집한 사전 이전인 [백과사전]에 ‘에크리튀르(écriture, 문자)’라는 항목에 실려 많은 사람이 문자의 기원에 대한 그림문자 이론을 수용했다.

워버튼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문자 기원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문자학의 가장 권위가 있는 도서 중에 하나인 겔브의 [문자 이야기](1974)에서 겔브(Gelb)도 워버튼의 이론을 수용해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그림문자로 시작됐다”고 기록했다. 학자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충분한 고고학적 자료가 마련된 후에야 그림문자 이론에 도전했다. 프랑스의 선사학자 민족학자 앙드레 르루아 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86)은 에스키모인이나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그림문자들을 통해 이들의 문자 이전 사회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문자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한 두 가지 문자의 기원 이론이 20세기 후반 등장했다. 하나는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Denise Schmandt-Besserat)의 ‘물표(物票)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 학자인 제네비브 폰 펫징어(Genevieve von Petzinger)의 동굴벽화 기하학 문양인 ‘기호(記號) 이론’이다.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는 문자와 숫자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 근동 지방을 지난 50년간 발굴한 고고학자다. 그녀는 문자의 기원을 기원전 800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인간이 정착해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그만 진흙 덩어리에 특별한 표식을 통해 물건을 인식하거나 숫자를 표시했다. 수메르의 우룩에서 발견된 그림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이지만, 특별한 표식을 지닌 진흙 물표는 훨씬 이전이다. 그녀는 이런 표식을 지닌 진흙을 ‘물표’라고 불렀다. 물표는 구형·원뿔형·원반형 등이다. 물표에는 선이나 구멍을 새겨 넣어 다른 물표와 구분한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물표들을 장난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의 연구로 물표는 문자가 등장하면서 사라진 최초의 기록 방식으로 원문자(proto-writing)라고 불린다.

1970년대부터 물표연구를 통해 물표가 문자의 모체이며, 추상적인 사고의 도약이란 사실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Denise Schmandt-Besserat)다. 물표는 고대근동에서 진흙으로 불은 뒤 구워서 제작됐다. 이들의 모형을 보면 혁명적이다. 물표는 ‘단순한 형태’로 시작하다가 점차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다. 베세라트는 지난 40년간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이 16개 모양을 지닌 물표로 구분해냈다. (1)원뿔형 (2)구체형 (3)원통체형 (4)평원반형 (5)사면체형 (6)계란형 (7)사각형 (8)삼각형 (9)이중원뿔형 (10)포물형 (11)구부러진 코일형 (12)장사방(長斜方)형(rhomboids) (13)용기형 (14)도구형 (15)동물형, 그리고 (16)기타 모형이다. 이 물표들은 손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각기 크기가 다르다. 대개 1~3㎝ 정도이며 큰 물표는 3~5㎝ 정도다.

이 물표는 기원전 8000년경에 이란의 테페 아시압과 간지 다레 E, 시리아의 텔 아스와드, 텔 무레이벳, 그리고 체이크 하산에서 등장했다. 이곳에서 등장한 물표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란의 두 장소는 반영구 마을이며, 시리아 세 장소는 읍 정도 규모다. 물표는 그 후에 고대 근동 전역에 전파됐다. ‘단순한 물표’는 근동 전역에서 발견되지만 다양한 표시를 새긴 ‘복잡한 물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 지역과 이란의 수사에서만 발견된다. 수메르 지역인 우룩, 기르수, 우르, 니푸와 우바이드와 이란의 수사, 초가 미쉬, 무시안 등이다. 복잡한 물표는 문자의 등장으로 이어져 기원전 3100년경 이 지역들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가 등장하게 된다.

물표는 그 기호가 상징하는 물건을 쉽게 기억하기 위한 표식이다. 예를 들어 농부가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을 신전에 맡겨 놓았다고 가정하자. 신전의 관리는 이 농부가 가져온 10단의 보리 묶음을 신전창고에 저장하고, 그 농부에게 일종의 영수증을 발행한다. 신전 관리는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을 조그마하게 떼어낸 후, 진흙을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로 넓적하게 편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보리 한 단’을 상징하는 알기 쉬운 기호 ‘십자’를 갈대철필로 눌러 표시한다. 조그만 진흙 덩어리 위의 ‘십자’ 표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낙서가 아니라 ‘보리 한 단’에 대한 표기다. 인간만이 이런 십자표시와 같은 상징물을 사용한다. 그것은 교통신호와 같다. 복잡한 교통을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공유하는 상징체계를 만들었다. ‘빨간색’ 신호등은 운전자가 자동차를 정지하라는 상징이고 ‘파란색’ 신호등은 운전자가 자동차를 몰고 가도 좋다는 표시다. 물표는 신전 관리와 농부 간에 이루어진 상징이다. 이 두 당사자는 이 상징을 공유해야 한다. 만일 운전자가 빨간색 신호들을 무시하고 달린다면, 그는 큰 사고를 당할 것이다.

물표의 또 다른 기능은 신전 관리(官吏)가 자신이 받은 다양한 물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물품명세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만든 최선의 조치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인이 사용하는 숫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표를 사용했다. 우리는 ‘하나’ ‘둘’ ‘셋’을 물건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기원전 7500년에서 3100년까지 사용된 물표들에서 숫자들은 특별한 물품들, 즉 곡식, 기름, 동물, 혹은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같은 추상적인 단위만을 표시했다. 각각의 물표는 그것에 해당하는 물건이 존재하고, 그 물건을 표시하는 특별한 숫자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곡식의 작은 단위는 원뿔형과 구체형으로, 기름은 난형으로, 동물은 원통형으로, 노동의 시간은 사면체형으로 표시했다. 물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각 물표가 한 물건만을 일대일로 대응하여 표시한다는 점이다. 오일 두 병은 두 개의 난형으로, 오일 세 병은 세 개 난형으로 표시한다.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의 물표이론은, 문자는 신전에서 셈하기 위해 간편한 표식으로 시작했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