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9(土曜日)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사진

<윌리엄 워스워스>

초상화가 헨리 윌리엄 피커스길Henry William Pickersgill (-1875)

유화, 1875, 217.2 cm x 133.4 cm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2022.3,19(土曜日)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는 영국이 제1차 산업혁명(1760-1840) 후에, 물질문명에 중독되었다고 개탄하였다. 그는 영국인들을 위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와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1772-1834)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이들은 1798년에 Lyrical Balads라는 서정 시집을 출간하였다. 영국에서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워즈워스는 단테가 <인페르노> 제7곡 58행에서 기록한 ‘테네르tener’와 ‘다레dare’에 영감을 받아, 14세기 피렌체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처럼, 탐욕과 인색한 부자들을 보고 워스워스는 개탄하였다. 그는 인간에 세속에 물들지 말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와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삶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첫 번째, 우리에게 알맞은 진정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존재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은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 자아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고독으로 들어가, 자신을 응시하고 성찰하는 묵상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그는 남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성인이나 철인의 훈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은닉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경청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만난다. 그런 목소리에 귀를 막는 행위는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다.

두 번째, 그는 자신이 발견한 독보적인 권위를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행동으로 표현해야한다. 예수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복음이 아니라, 천국에 관한 비밀스런 가르침을 독자에게 일러주는 복음서가 있다. 2세기 콥트어라는 이집트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서>다. <도마복음서> 어록 #70에 진정성이 발견되는 장소와 활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그것이 당신을 구원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당신을 파괴할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진정한 자아를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내면의 삶’the palpitating inward life이라고 정의하였다.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삶의 원칙이 나의 진정성이다. ‘진정성’이라는 뜻을 지닌 ‘어쎈티서티’authenticity는 ‘권위’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어쏘러티’authority와 깊이 연관되어있다. 이 두 단어 모두 인도-유럽어 어근 ‘아우그’*aug-에서 유래했다. ‘아우그’는 ‘창조하다 생산하다 제작하다’라는 의미다. ‘저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author는 ‘글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자’이며 대문자로 시작하는 Author는 ‘창조주 신’라는 의미다. 진정한 자신을 말, 글, 그리고 행위로 표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우라가 ‘authority’, 즉 ‘권위’다.

워스워스는 진정성이 없는 영국인들을 세속에 너무 빠져있다고 고백한다. 다음은 그가 1802년에 쓴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라는 제목의 시와 그 번역이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late and soon,

Getting and spending, we lay waste out powers;

Little we see in Nature that is ours;

We have given our hearts away, a sordid boon!

This Sea that bares her bosom to the moon,

The winds that will be howling at all hours,

And are up-gathered now like sleeping flowers,

For this, for everything, we are out of tune;

It moves us not.--Great God! I'd rather be

A Pagan suckled in a creed outworn;

So might I, standing on this pleasant lea,

Have glimpses that would make me less forlorn;

Have sight of Proteus rising from the sea;

Or hear old Triton blow his wreathed horn.

우리는 세속에 너무 빠져있습니다. 쓸데없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벌고 쓰느라 우리는 우리의 힘을 소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인 자연에서 보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을 내동댕이칩니다. 마치 더러운 선물이라도 되듯이!

달을 향해 젖가슴을 드러낸 이 바다,

언제나 울부짖는 바람,

이것들은 잠든 꽃처럼 지금 움추려 있습니다.

이것, 이 모든 것을 즐기지 못하도록 우리는 망가져 있습니다.

우리는 감동하지 못합니다. 오, 위대한 신이시여!

나는 차라리 낡은 교리를 빨아들이는 이교도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 즐거운 풀밭에 서서,

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 풍경들을 볼 것입니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프로테우스를 보거나,

늙은 트라이튼의 꽃을 두른 소라 나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