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7. (木曜日) “무용無用"

사진

<졸참나무 숲 수도원>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트리히 (1774-1840)유

유화, 1810, 171 cm x 110.4 cm

베를린 Alte Nationalgalerie

2022.3.17. (木曜日) “무용無用"

대선이 지난 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질될 것같은 불안감에 휩쌓였다. 에머슨이나 소로와 같은 초월주의자들과 니체가 왜 국가와 국가라는 정체가 현대의 ‘최악의 우상’이라고 주장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다양한 집단들을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돈과 성공이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미디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젊은이들을 공장의 기계처럼 양성하는 학교들, 그리고 국민들의 삶과 운명을 다수결이라는 폭력으로 결정하는 국가에 개인의 자유와 환희가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가 원하는 조직에 어울리는 국민을 교육하여, 개인의 자유보다는 개인의 충성과 순응을 덕으로 가르쳐왔다. 20세기에 등장한 국가와 그 전형적인 모습인 전체주위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소수의 권력자들이, 대중의 이름으로 작위적인 독재를 행사하고 있다. 푸틴과 그 일당들은, 우크라이나를 물건으로 여겨, 무력을 통해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다는 유물론의 비극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코로나가 인류에게 희망이라고 여겼다. 자신을 가만히 볼 수 있는 고요를 선물하는 절호의 기회를 수여했다고 생각했다. 100년 전, 프로이트, 융, 다윈, 그리고 니체가 꿈을 꾸었던 깨어난 개인의 시대인 현대가 코로나를 계기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줄 알았다. 혼자 있기를 불편해하는 인류는 오히려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자신들’을 여섯 만들어, 제어되지 않는 욕망을 그 안에서 배설한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우려한 디스토피아가 이젠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이름으로 가장하여 자리를 잡았다.

100년 전 현대를 선언한 예언자, 단테와 니체를 공부하면서, 코로나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모색하고 싶었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공부하면서, 니체의 간절한 마음과 그가 왜 고대 이란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등장시켰는지 알고 싶었다. 오래전 유학시절에 배운 고대 이란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다시 일깨워, 이란과 인도의 경전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도경전들을 내가 익숙한 서양 언어로 이해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동양고전’들을 탐구하고 싶은 욕망을 각성시켰다. 요즘 <창세기> 1-11장에 등장하는 ‘처음에 관한 이야기’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 등장하는 혼돈과 창조에 관한 이야기의 심오한 실마리를 장자와 노자의 혼돈과 창조에 대한 설명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 감정을 나만 느낀 것이 아니다. 오래전 아일랜드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허버트 가일스Herbert Giles가 번역한 Zhuangzi莊子의 번역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1890년 Speaker라는 잡지 2월호에 장자를 ‘매우 위험한 작가very dangerous writer’라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도덕은 물론 어렵다.

장자의 말대로 사람들이 도덕성이라는 것을 가지면서, 도덕이 맛이 갔다.

인간은 그때 즉흥적인 인간이 되기를 멈추고 직관으로 행동하기를 그만두었다.

인간은 아는 체하고 인위적이며 인생이 무슨 분명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여, 장님이 되었다.

그리고 곳곳에 정부와 박애주의자가 등장했다. 이 두 부류는 철지난 염병들이다.

정부는 사람들에게 선을 강요하여 인간들 안에 존재하는 자연스런 선을 파괴하였다.

박애주의자들은 어디를 가던지 혼돈을 야기시키는 성가신 바쁘신 몸뚱이들이다.

그들은 원칙을 만들 정도로 멍청하고, 그 원칙에 어울리게 사는 척할 만큼 불행하다.

그들의 마지막은 불행이다. 보편적인 이타주의는 보편적인 이기주의만큼 결과가 참혹하다.”

공공연한 탐미주의자였던 와일드도 장자(기원전 369-286년)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장자는 월트 휘트먼처럼, 풀잎과 같은 ‘무용無用’한 것을 찬양하고 명상의 삶이 가져다 주는 쾌락을 즐기고 대중이나 공공생활이 부여하는 모든 것을 비꼬며 신비한 괴물이나 날아다니는 현자들에 관한 우화寓話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 우화는 일종의 비유다. 예수도 비유가 아니라면 천국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장자의 그런 패기를 동시대 사람들, 특히 당시 지식인들이 반길 리가 없었다. 동시대 철학자로 알려진 맹자는 그를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공자주의자 순자(기원전 310-219년)는 장자를 ‘자연에 빠져 인간 삶의 영역을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한나라 사학자인 사마천(기원전 145-86년)은 <사기> 제63장에서 장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莊子者,蒙人也,名周。周嘗為蒙漆園吏,與梁惠王、齊宣王同時。其學無所不闚,

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故其著書十餘萬言,大抵率寓言也。作漁父、盜跖、胠篋,

以詆訿孔子之徒,以明老子之術。...其言洸洋自恣以適己,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장자는 몽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주는 일찍이 몽 지방의 칠원(漆園)이라는 고을에서 관리를 지냈다. 양 혜왕(梁惠王), 제나라 선왕(齊宣王)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의 가르침이 도달하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그의 학문은 노자의 말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10여만 자나 되는 그의 저서는 대체로 우언(寓言)으로 되어 있다.어부(漁父),도척(盜跖),거협(胠篋)편 등을 지어 공자를 비방하고 노자의 학설을 천명하였다.......그의 말은 자유분방하여 빛이 나고 거센 물결과 같았지만, 왕들이나 대인들은 그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았다.”

장자는 에머슨, 소로, 니체, 그리고 융과 같은 각성한 자들이 등장하기 거의 2000년전에 우화를 통해 내면으로는 깨어난 자로, 외면으로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왕으로 사는 삶의 기술을 알려주었다. 이전에 쓸모가 없다고 여겼던 것들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장자에게 감사한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