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양동이와 솔방울을 들고 있는 압칼루>
기원전 9세기, 님로드, 부조물
런던 영국박물관
*<책상 위 잣나무 솔방울>
2022.3.16.(水曜日) “솔방울”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를 반긴다. 눈보라가 불어도, 누가 그 가지를 꺾어도 혹은 톱으로 몸뚱이를 잘라도, 요지부동이다. 자신의 뿌리는 정확하게 지구의 중심을 향해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이 빛의 속도로 자전하는 지구라는 우주선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의 꼭대기를 하늘 끝을 향해 높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내려가야untergehen 올라갈 수übergehen가는 니체의 혜안을 오래전에 알고 있다.
산책 길가에서 잣나무 솔방울 하나를 발견하였다. 야산 산책길가에 낙엽, 도토리, 밤송이 곁에서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운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내는 솔방울이다. 아직도 눈을 머금어 축축한 솔방울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였다. 제비 크기다. 전체를 쥐기엔 크지만, 손바닥 온기 안에서 이 거친 박편薄片을 느낀다. 물에 적시면, 이 부드럽고 곡진 박편들이 거북딱지처럼 줄어든다. 그러나 서서히 말리면, 이내 거칠고 마른 타원형 공처럼 평창한다. 박편들의 사이가 멀어지면, 초콜릿 색깔을 띤 박편들이 갈짓자 무늬장식을 기하학적으로 보여준다.
솔방울의 전문명칭은 마치 공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과球果’다. 솔방울은 종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머금은 씨앗을 땅에 떨어뜨려 생명의 영원히 회기라는 자연섭리에 동참한다. 가운데 배주胚珠의 바깥에 원을 그리듯 붙어있는 종린種鱗에 씨앗 두 개가 들어있다. 잣나무의 끝은 하늘을 향해있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최적의 타원형으로 가지를 펼친다. 그리고 씨를 저 대지에 떨어뜨린 후, 자신의 임무를 마친 솔방울도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돌아간 장소로 달려갔다. 그래야, 수 십년 후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둥치를 틀 수 있는 잣나무가 된다. 책상위에 있는 솔방울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나무는 씨앗을 이미 대지로 보낸 후, 땅에 추락하여, 추운 겨울을 지내며 나의 손길을 기다린 것이다.
하강과 상승은 하나다. 하강과 상승에 관한 가장 오래된 신화는 기원전 22세기 소위 ‘우르 제3왕조’ (기원전 2112-2004년)에 기록된 ‘인안나 하강신화’다. 하늘의 여신인 인안나Inanna는, 최근 남편과 사별한 여동생이자 죽은 자들의 여왕인 에레시키갈Ereshkigal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다음과 수메르어로 기록된 그 첫 오행 음역과 번역이다:
1 an gal-ta ki gal-šè geštúg-ga-ni na-an-gub
안갈타 키갈쉐 세슈툭아니 나안굽
“위대한 하늘로부터 위대한 땅으로 (하강하기로) 그녀는 마음먹었다.”
2 digir an gal-ta ki gal-šè geštúg-ga-ni na-an-gub
딩길 안갈타 키갈쉐 세슈툭아니 나안굽
“위대한 하늘로부터 위대한 땅으로 (하강하기로) 여신은 마음먹었다.”
3 d.Inanna an gal-[ta ki gal-šè] geštúg-ga-ni na-an-gub
인안나 안갈타 키갈쉐 세슈툭아니 나안굽
“인안나 여신이, “위대한 하늘로부터 위대한 땅으로 (하강하기로) 마음먹었다.”
4 nin-gu10 an mu-un-šub ki mu-un-šub kur-ra ba-e-a-èd
닌구 안 무운슙 키 무운슙 쿠라 바에아에드
“나의 여신이, 하늘을 버리고, 땅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하강하였다.”
5 d.Inanna an mu-un-šub ki mu-un-šub kur-ra ba-e-a-èd
인안나 안 무운슙 키 무운슙 쿠라 바에아에드
“인안나 여신이 하늘을 버리고, 땅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하강하였다.”
솔방울은 경계와 정화의 상징으로 신-아시리아 궁궐(기원전 865-860년)에도 등장한다. 님로드에 있는 아수르바니팔 2세 신전엔 신전문지기 괴물 압칼루Abkallu가 서 있다. 압칼루는 수메르 이름 ‘압갈𒉣𒈨’의 차용어다. 독수리 머리와 날개, 그리고 인간의 손과 몸을 지닌 괴물이다. 왼손에는 정화수(mullilu)가 들어있는 양동이(banduddû)를 들고 오른 손엔 솔방울을 들었다. 솔방울은 기하학적이며 정교하다. 그리고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다. 앞으로 곁에 두고 공부해야할 성물聖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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