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4. (月曜日) “혼연일체渾然一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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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 반려견들>

2022.3.14. (月曜日) “혼연일체渾然一體”

‘나’라는 의식은 ‘정신’이고 그 정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집은 ‘육체’다. 육체와 정신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몸이 아프면 신경과 정신이 동원되어, 그 아픔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나는 육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또한 ‘영혼’이다. ‘나’라는 존재는, ‘너’와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볼수 없는 그(녀)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내가 본적이 없는 어떤 씨가 등장하여, 장구한 진화의 세월을 거쳐 나라는 존재를 지금-여기에 배태시켰다. 사람들은 그 존재를 흔히 ‘신’ 혹은 ‘빅뱅’이라고 부른다. 태고에 알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여 영겁의 순환을 거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기원전 10세기,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한 시인은 우주창조보다는, 인간창조에 관심이 많았다. 이스라엘이이제 막 국가를 건설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터키에 있던 히타이트, 시리아에 있었던 해상강국 우가리트, 지중해 너머 미케네와 미노스로 멸망하였다. 블레셋이란 민족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와 예루살렘, 아슈켈론, 단과 같은 도시에 자리를 잡았지만, 사울과 다윗과 같은 군사영웅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이 나름대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아시리아, 바빌론, 그리고 이집트로 각각 국내문제로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독립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시인은 그들이 신봉하는 ‘야훼’신이 인간은 손수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고 상상하였다. 그(녀)는 인간창조를 다름과 같이 ‘인간 창조’를 기록하였다: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와이쩨르 야훼 엘로힘 에쓰-하아담 아파르 민-하아다마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와이파흐 버-아파이브 니슈마트 하임 와여히 하아담 러-네페쉬 하야

“야훼 엘로힘이 홍토의 먼지로 사람을 손수 지으셨다.

그는 그의 코에 살아 숨을 쉬게 만드는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살아 숨을 쉬는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 2.7

인간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유대 시인은, 상상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은 인간경험이기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은 원인과 결과라는 공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우주라는 현상이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혹은 어떤 대상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과정을 이해하려할 때, 인간은 상상에 존재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신이란 추상을 만들어, 피조물의 등장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든다.

기원전 10세기 유대인들을 신을 자신들의 신명인 ‘야훼’와 신을 일컫는 일반명사인 ‘엘로힘’을 합성하여 ‘야훼 엘로힘’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야훼는 신이다’라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야훼’라는 이름의 원 의미는 ‘생명’ 혹은 ‘생명을 부여하는 분’이란 뜻이기 때문에, “생명이 깃든 모든 존재는 신의 지문을 품고 있다”라는 파격적인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야훼 엘로힘은 홍토를 가지고 인간 모형을 만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흙덩이의 콧구멍을 내고 자신의 숨길을 불어넣었다. 이 숨길은, 그 존재를 매 순간 살아 숨기게 만드는 신 그 자체다. 호흡은, 내가 살아있는 존재이며, 태초에 신이 동물과 식물에게 부여한 신성이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붉은 흙덩이’라는 뜻으로 육체를 의미하고 ‘니슈마트 하임’은 ‘살아 숨쉬게 하는 기운’으로 정신과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다. 인간은 육체, 정신, 그리고 영혼을 지닌 온전한 일체가 되었다. 산책길 야산 꼭대기 편편한 곳에 예쁜이, 샤갈 그리고 벨라가 망중한을 즐긴다. 각자 자신이 취하고 싶은 모습에 몰입란다. 이들은 혼연일체의 화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