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2. (土曜日) “화化”

사진

<알라스카 늑대들>

일본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1948-)

1994,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to Dibond, 119.4 × 210.8 cm

스위스 취리히 CHRISTOPHE GUYE GALERIE

2022.3.12. (土曜日) “화化”

요즘 내 삶을 지배하는 화두話頭는 변화變化다. 오래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주도한 적이 있다. 학교 교수 10명을 선정하여 매주 토요일, 교도소안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진행하였다. 이 과정이 유명해져 3년내내, 신청한 재소자들이 많았다. 30분과 함께, 열 차례 공부했다. 3년동안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교정TV에 방영이 되어 10만 재소자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이 수업 내용을 담은 <낮은 인문학>(21세기북스)이란 책도 출간되었다.

내가 사는 설악면에서 남부교도소가 있는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있는 서울남부교도서까지의 거리는 90km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사회를 보며, 강사를 소개하는 일을 맡았다. 오전 9시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위해, 7시30분경 집을 나서,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일주일의 삶을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난 일주일 인간과 다른 인간인가? 나는 변화했는가?” 이 질문은 그후에 내 삶을 변화시키는 만트라가 되었다. 나는 재소자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수업을 이렇게 시작하였다. “당신은 일주일 전과 다른 인간입니까?” 내가 변화해야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가 ‘매일묵상’이란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나아 지셨습니까?”

만물은 변화한다. 산천초목도, 동물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한다. 인간만이 그 변화를 거부한다. 쓸데없이 커진 신피질로, 이성이 커져, 약육강식이 삶의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우리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덕지덕지 쌓인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진부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에게서 악취가 나는 것을 모른다. 이기심이 습관이 되고 탐닉이 된 후, 그의 오감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주위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아는데, 정작 자신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삶에 불행이 있다면, 이 무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남부교도소를 가기 위해 토요일 아침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간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이지만, 동시에 천지개벽이다. 변화는 함부로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저지르지 않게 실타래로 입을 꽁꽁 꿰매는(䜌) 용기다. 침묵하지 못해 안달하는 자랑하고 싶은 나를 막대기로 사정없이 칠 때(攵), 변화變化하기 시작한다. 고요는 변화를 감지하는 원동력이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과거의 자신(人)에 비수(匕)를 꽂아야한다. 화는 ‘과거의 자신을 살해하여 죽는다’란 의미와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마아트’라고 지었다. 마아트MAAT는 고대 이집트어로, 인간으로 태어난 동물이, 자신의 생애가운데 반드시 발견하고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다.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신들은 죽은 자에서 묻는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위해 최선을 경주해 보았습니까?” 최선은, 실패와 성공을 초월하는 숭고한 가치다. 최선자체가 이미 그 사람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월계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을 경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손안에 든 핸드폰에서 다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훔쳐보다가 정작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응시는 항상 내 삶에서 부질없는 것들, 특히 체면이나 추종에 의해 나의 일부가 된, 영적인 암 덩이를 발견하게 유도한다. 그것을 매일 매일 제거하는 삶은, 제가 정한 에베레스트 산 등반을 위해, 내가 배당에 가져온 것들을 산 아래 두는 행위다. 나는 오늘 어제와 다른 인간인가? 나는 어제의 나를 거꾸로뜨렸는가(匕)?